저는 Day Lily입니다
원추리 꽃은 보면 볼수록 예쁩니다. 각종 나리꽃들과 비슷하면서 또 다릅니다. 백합이나 나리꽃의 매끈한 매력은 없지만 쪼글쪼글 말랑말랑한 느낌이 나름 매력 있습니다.
원추리는 새싹이 또 그렇게 귀엽습니다. 통통하고 새파란 잎이 옹기종기 모여서 봄이다!! 하고 외칩니다. 여기저기 돋은 새싹들을 보면 꼭 유치원 같기도 합니다.
원추리의 고난은 이 새싹 시기를 지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한여름이나 되어야 꽃이 피는데, 그 전까지는 잎만 길쭉해지고 뭐 하나 달린 게 없어서 밍숭맹숭합니다. 그래서 초여름 대대적인 제초작업 때 가차 없이 희생됩니다. 잡초로 오인받기 싫으면 색으로라도, 열매로라도 나 내버려 두라고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침묵만 지키기 때문입니다.
운 좋게 제초기 칼날을 피하고 뜨거운 여름을 맞으면 드디어 꽃을 피우고 제 목소리를 냅니다. 사람도 대체로 이렇지 않을까 합니다. 일찍부터 꽃을 피우는 사람은 원래 소수입니다.
사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대기만성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원추리의 영어 이름은 Day Lily입니다. 매일 새 꽃이 피어서 그렇습니다. 꽃이 여러 송이 피니까, 매일 보는 사람도 그냥 원추리가 저기 있구나, 할 뿐 새 꽃이라는 것은 모릅니다. 나태주 님의 <풀꽃>에서처럼, 매일 새로운 원추리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여기서 일신우일신, 매일 더 노력하자는 결론부터 떠올리는 꼰대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매일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매일 새로운 사람일 수 있음을 기억하려 합니다. 알아채는 것은 전적으로 보는 사람 몫입니다. 전달을 잘해야 될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은 좀 이기적입니다. 너 보라고 피운 것도 아닐뿐더러, 애초에 잘 알아보는 것도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새 꽃을 피워도 새 꽃인지 모르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모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습니다. 모르면서 너는 그냥 원추리야, 하지 말고 조금만 더 자세히 보면 좋겠습니다. 그 전에, 길쭉하니 못났다고 덜컥 베지 말고 기다려주면 더 좋겠습니다. 놔두면 꽃을 피웁니다. 그것도 매일매일, 새롭게.
https://brunch.co.kr/magazine/pensees-y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