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왔습니다. 대설주의보라더니 기상청 설레발이었나 봅니다. 그래도 차 위엔 꽤 두껍게 쌓여서 쉬폰 케이크가 됐습니다.
빨갛게 가지만 남은 흰말채나무에도 눈이 하얗게 묻어, 평소와 달리 정말로 '흰' 말채나무가 됐습니다. 흰말채나무와 멀찍이 떨어진 곳에 멀뚱히 서 있는 이름표는, 눈이 하얗게 수정테이프로 가려 버렸습니다. 얘는 흰말채나무 아니잖아요, 하는 것 같습니다.
잘 보이던 이름표는 가려 놓더니, 안 보이던 것은 또 잘 보이게 표시해 놓았습니다. 보도블럭 틈에 파고든 눈에 또 눈이 쌓여, 마치 흰 돌을 깎아낸 양각 작품 같습니다.
대설주의보 치고는 눈이 너무 조금 왔습니다. 남은 눈은 내 마음 속에 쏟아 주면 좋겠습니다. 아픔은 가리고, 기쁨은 드러내 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