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친구에게 선물받은 선인장을 열심히 키운 적이 있습니다. 술잔 같은 작은 화분에 살면서 또 가시 속에 스스로를 가둔, 손가락보다 짧은 녹색 생명체에 홀렸던 것 같습니다. 삼사 년쯤 직접 키운 듯 합니다. 아는 것도 없는 채 첫 입양을 해서 키우고 싶은 대로 키웠으니, 잘 큰 것은 온전히 운이었습니다.
스무 살에 처음 고향을 떠나면서 집에 두고 왔습니다. 그 후로 녀석은 몇 년을 못 버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좀 많이 슬펐던 기억이 납니다. 풀떼기들을 원래 좋아했지만 내 무식과 게으름이 그들에게 독이 될까 무서워 가까이 두지는 않았었습니다. 떠난 선인장 때문에 더더욱 집에 들이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취직을 하고, 첫 부서 이동 후 회사 근처로 이사 오면서 스파티필룸과 작은 염자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출퇴근길에 매일 꽃집 앞을 지나치니 옷소매를 푸른 잎끝에 붙잡힌 것입니다.
둘 다 무던한 편이어서 오래 함께 지냈습니다. 특히.스파티필룸은 포기나누기를 몇 번을 했는지, 새 화분을 여기도 놓고 저기도 놓고 여기저기 선물도 하고 수경도 하고 품을 많이 들였습니다. 그러다 더 이상 꽃이 피지 않은 지 몇 년 쯤 지났던가, 줄기에 못난 관절이 여럿 생긴 마지막 녀석을 떠나보냈습니다.
하필 이 때는 좀 힘들 때였습니다. 잠시 볕이 잘 안 드는 집에 지내는 동안 몇 년을 모은 다육이들이 떼를 지어 떠난 이후였고, 살아남은 녀석들은 전에 없던 깍지벌레한테까지 괴롭힘을 당하던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화분 갯수를 열 개 전후로만 하고, 더 늘리지는 않고 있습니다. 관리나 잘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나마도 잘 못하는 것 같아 자존감이 좀 죽고, 그간 잘 키웠던 시간이 그저 우연의 산물 같아 미안하고 슬픕니다.
지난 가을쯤, 옛 생존자들인 몇 년째 키가 안 크는 월동자, 십이지권과 들인 지 얼마 안 된 선인장 하나를 회사로 이사시켰습니다. 다육이는 까매지고 선인장은 누래져서, 햇빛이 부족한가 싶어 회사로 데려가 햇살 쨍쨍한 창가에 두었더니 낫기는 커녕 나 죽는다 하길래 당황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마침 농업에 대한 글을 보느라 구독했던 작가님* 글에서 팁을 얻어 책상 밑에 꽁꽁 숨기고 수용성 비료 좀 챙겨 줬더니, 다행히 금방 정신을 차립니다. 최근 책상 위로 올라왔는데, 몇 주 더 요양시킨 뒤에 조금씩 밝은 곳으로 옮겨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쓰는' 스타일의 작가님입니다. 특히 유기농의 어두운 뒷면을 보고 싶으시면 더욱 추천합니다.
https://brunch.co.kr/@hyukyee1122
연휴라 그런지 두고 온 녀석들이 걱정됩니다. 올해 만두꽃을 몇 번이나 터뜨려 주신 호야나 땡글땡글 눈꽃선인장 등등 건강한 녀석들 걱정은 아닙니다. 간호사 없이 요양병원에 갇힌 녀석들은 전화도 못 하고 걷지도 못하는데 어쩌나 싶습니다.
이제 연휴도 이틀 남았습니다. 녀석들이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육이와 선인장 간호가 끝날 때쯤엔 커다란 맥주잔에 싱고니움을 수경으로 심어볼까 합니다. 빨리 봄이 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