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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정 Feb 01. 2022

풀떼기 간호사의 연휴 걱정

어릴 때 친구에게 선물받은 선인장을 열심히 키운 적이 있습니다. 술잔 같은 작은 화분에 살면서 또 가시 속에 스스로를 가둔, 손가락보다 짧은 녹색 생명체에 홀렸던 것 같습니다. 삼사 년쯤 직접 키운 듯 합니다. 아는 것도 없는 채 첫 입양을 해서 키우고 싶은 대로 키웠으니, 잘 큰 것은 온전히 운이었습니다.


스무 살에 처음 고향을 떠나면서 집에 두고 습니다.  후로 녀석은  년을  버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많이 슬펐던 기억이 납니다. 풀떼기들을 원래 좋아했지만  무식과 게으름이 그들에게 독이 될까 무서워 가까이 두지는 않았었습니다. 떠난 선인장 때문에 더더욱 집에 들이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취직을 하고, 첫 부서 이동 후 회사 근처로 이사 오면서 스파티필룸과 작은 염자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출퇴근길에 매일 꽃집 앞을 지나치니 옷소매를 푸른 잎끝에 붙잡힌 것입니다.


둘 다 무던한 편이어서 오래 함께 지냈습니다. 특히.스파티필룸은 포기나누기를 몇 번을 했는지, 새 화분을 여기도 놓고 저기도 놓고 여기저기 선물도 하고 수경도 하고 품을 많이 들였습니다. 그러다 더 이상 꽃이 피지 않은 지 몇 년 쯤 지났던가, 줄기에 못난 관절이 여럿 생긴 마지막 녀석을 떠나보냈습니다.


하필  때는  힘들 때였습니다. 잠시 볕이   드는 집에 지내는 동안  년을 모은 다육이들이 떼를 지어 떠난 이후였고, 살아남은 녀석들은 전에 없던 깍지벌레한테까지 괴롭힘을 당하던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화분 갯수를 열 개 전후로만 하고, 더 늘리지는 않고 있습니다. 관리나 잘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나마도 잘 못하는 것 같아 자존감이 좀 죽고, 그간 잘 키웠던 시간이 그저 우연의 산물 같아 미안하고 슬픕니다.


지난 가을쯤, 옛 생존자들인 몇 년째 키가 안 크는 월동자, 십이지권과 들인 지 얼마 안 된 선인장 하나를 회사로 이사시켰습니다. 다육이는 까매지고 선인장은 누래져서, 햇빛이 부족한가 싶어 회사로 데려가 햇살 쨍쨍한 창가에 두었더니 낫기는 커녕 나 죽는다 하길래 당황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마침 농업에 대한 글을 보느라 구독했던 작가님* 글에서 팁을 얻어 책상 밑에 꽁꽁 숨기고 수용성 비료  챙겨 줬더니, 다행히 금방 정신을 차립니다. 최근 책상 위로 올라왔는데,    요양시킨 뒤에 조금씩 밝은 곳으로 옮겨 가면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쓰는' 스타일의 작가님입니다. 특히 유기농의 어두운 뒷면을 보고 싶으시면 더욱 추천합니다.

https://brunch.co.kr/@hyukyee1122




연휴라 그런지 두고  녀석들이 걱정됩니다. 올해 만두꽃을  번이나 터뜨려 주신 호야나 땡글땡글 눈꽃선인장 등등 건강한 녀석들 걱정은 아닙니다. 간호사 없이 요양병원에 갇힌 녀석들은 전화도  하고 걷지도 못하는데 어쩌나 싶습니다.


이제 연휴도 이틀 남았습니다. 녀석들이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육이와 선인장 간호가 끝날 때쯤엔 커다란 맥주잔에 싱고니움을 수경으로 심어볼까 합니다. 빨리 봄이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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