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유정 Dec 24. 2021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얼마 전 스티븐 호킹의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원제 Brief Answers to the Big Questions)을 읽었습니다. 요즘 브런치 글 읽느라 책 읽기를 게을리한 탓에 한참 걸렸습니다.


역자인 배지은 님은 제목부터 난관에 부딪히셨을 것 같습니다. 'Big Question'이 내포한 의미가 워낙 크다 보니, '본질'이나 '근원' 같은 의역도, '큰 질문' 같은 직역도, '장문단답' 같은 축약도 잘 안 어울립니다. 게다가 암만 봐도 출판사의 고집 같은 '호킹의'까지 넣어야 하니, 아마 저 제목은 차차선 정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호킹 선생님의 과도한 겸손에 제 의미를 잃은 '간결한' 대답들을 읽으며 존재의 본질을 곱씹어봅니다. 신, 우주, 시간, 미래, 그리고 인공지능까지 참 생각할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답이 없는 질문이든 아직은 답을 알지 못하는 질문이든, 결국은 우리 자신을 향하는 것은 똑같은 것 같습니다.


우주는 넓고 모르는 것은 많습니다. 아무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도 너 틀렸어, 하고 혼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중력과 원심력을 저리 치워 놓고, 시간이 지날수록 모습을 바꾸는 한 행성을 상상해 봅니다.




이 행성은 처음에는 다른 행성들처럼 동그랗습니다. 하지만 공전도, 자전도 하지 않고 태양 근처에 머뭅니다. 태양으로부터 무한한 에너지를 공급받고, 따끈따끈하고 조용하며 소행성과 충돌하지도 않는 안전한 태양계에서 점점 모습을 바꿉니다.


뽈록뽈록 돌기가 솟아나서는 길어지고 갈라집니다. 움푹 패이는 곳도 생기고, 동그란 구슬도 생기고, 점점 단단해지는 곳도 생깁니다. 그때쯤 이 행성은 지구의 초음파 망원경에 포착됩니다. 망원경 조작과 이미지 해석의 달인인 한 선생님이 이렇게 선언합니다.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


저 멀리 다른 우주에 작고 귀여운 배아 행성이 자라고, 어느 순간 웜홀을 통해 뿅 하고 아내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상상을 합니다. 이곳은 엄마별 아빠별 두 개의 태양이 지켜주는, 원래 있던 곳보다 더 따뜻하고 안전한 곳입니다. 열 달만 기다리면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 곳에서 자전도 하고 공전도 하고 다른 별 구경도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은 어디에서 오는가? 언제, 어디로 오는가? 호킹 선생님은 자세히 다루지 않았지만 이 또한 빅 퀘스천입니다. 고민해 본 결과 이 질문에 대한 간결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저 넓은 우주 어딘가에서는 배아 행성이 생겨나서 순간이동을 하는,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기는 황새가 물어다 주기도 하고, 엄마 아빠가 손만 잡고 자도 오기 때문에 다양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많이 모르고 적게 아니까 틀렸다고 확신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이전 05화 태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