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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정 Dec 17. 2021

태몽

개꿈을 자주 꿉니다. 이상한 꿈이 아니라 정말 개가 나오는 꿈입니다. 강아지와 고양이 모두 좋아하는데, 고양이는 안 나오고 이상하게 개만 나옵니다. 아무 개연성 없이 뜬금없이 나타나기도 하고, 같이 모험을 떠나기도 하고, 아무튼 자주 나옵니다. 개똥 꿈도 꾼 적 있는데, 로또는 꽝이었습니다.




한참 산부인과 다니던 시절, 뭔가 조금만 특이한 꿈을 꾸어도 혹시 태몽인가 하고 기대하곤 했었습니다. 태몽 하면 뭔가 신비롭고 특별하고 그래야 할 것 같은데, 그런 꿈은 없으니까 그냥 조금만 기억이 생생해도 이거 태몽 아닌가 하고 기대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품으셨을 때 방 안 가득 황금빛 고추씨가 환하게 빛나는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그저 그런 아재가 된 걸 보면 빛났다는 건 좀 착각 아니었나 싶지만, 어쨌든 태몽이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태몽이 다 아름다운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 친구에게 특이한 꿈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태몽을 꾸셨다는데, 털실로 곱게 옷을 두 벌 짰더니 한 벌만 완성되고 나머지 한 벌은 실이 모자랐답니다. 나무에 올라가 커다란 열매 두 개를 따 한아름 안고 왔더니, 하나만 속이 꽉 찼고 하나는 속이 텅 비었더랍니다. 그리고, 쌍둥이 중 한 아이를 유산했다고 합니다. 신기하면서 또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 얘기를 떠올리면, 어차피 못 품을 거라면 태몽 따위 안 꾸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도 합니다. 기적처럼 잠시 왔었던 내 새끼, 뭐가 그리 급한지 엄마 뱃속에서 후다닥 떠나버린 내 새끼를 생각하면, 그 때 태몽을 꾸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빠 안녕, 잘 있어, 이런 말이라도 했다면 평생의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른 세상에 있는 우리 자식놈은 어찌나 아빠를 배려해 주는지, 연락 안 하는 것으로 나름 효도를 합니다.




요즘도 별 꿈 없이 개꿈이나 꾸고 삽니다. 가끔 땅에서 50cm 나는 꿈이나, 우산 잡고 날다가 내려와 버스 타는 꿈이나 꾸고 삽니다. 그래도 눈 뜨면 항상 옆에 아내가 있으니 좋습니다.


아가, 어딘지 몰라도 너는 거기서 잘 살아라. 아빠 무서운 꿈 꾸게 하지 말아라. 나중에 만나거든 같이 잘 살자. 그 정도로 만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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