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다."
'가지가 많으면 바람에 잘 흔들려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듯
자식 많이 둔 부모에게는 걱정이 그칠 날이 없다'
사전적 의미는 그러하다.
내게도 12명의 아이가 있다.
교실에서 나는 그 아이들의 부모가 된다.
그러므로 교실에서 나의 걱정은 그칠 날이 없다.
한 아이의 울음이 교실을 뒤덮었다.
우리 학급은 드물게 통합 학생 반, 특수 학생 반씩 차지한다.
1,2교시는 국어 시간으로 일반 아동들과 수업을 하고, 3교시가 되면 특수반 아이들까지 함께 참여한다.
그래서 난 2교시 쉬는 시간이 되면 마음의 준비를 한다.
와다다다.
늘 10시 30분쯤 되면 2교시 종료를 알리는 한 아이의 발걸음 소리가
복도를 건너 온다.
아 왔구나.
역시나 문을 벅차고 ‘선생님!’ 외치는 우리 반 한 아이. 역시나 너였다.
‘으늘 밥 비느브을 바 머고 ㅈㅓㅁㅅㅣㅁ’
와다다다 달려와서는 나를 부르더니 외계어를 말한다.
어느새 한 달차. 이정도 해석은 껌이다.
‘오늘 점심 먹고 비눗방울 한대요.’
어제 못했다는 비눗방울을 오늘 하나보다. 수업 시작하자. 어, 그런데 한 아이가 보이질 않는다.
‘00이 어디있니?’
다 왔는데, 한 아이만 아직 특수반에 남아 특수반 선생님과 같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 곧 오겠지~ 싶어 난 다음 수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아이들과 즐겁게 퀴즈를 풀고 있을 때였다.
‘흐어어엉!!'
설마 싶어 뒤돌아보니 뒷문이 반쯤 열린 채 누군가 서럽게 울고 있다.
고녀석. 우리 반 금쪽이의 등장이었다.
하. 무슨 일일까.
난 아이에게 다가갔다. 왜 울어. 질문에도 서럽게 운다. 떠나가라. 아주 크게.
계속 울 거면 밖에 있고 그친 다음에 들어 와.
한 마디에 그제야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교실에 들어온다. 이럴 때 조목조목 묻는 것보다 무관심이 답이다. 난 모른 척 아이들과 수업을 이어나갔고. 아이는 제자리에 앉으며 천천히 울음을 삭히고 있었다.
네 이야기는 나중에 쉬는 시간에 들어줄게. 지금은 수업 시간이니까 수업 활동하자.
달래며 책 펴고 활동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색종이에 스티커붙이고… 아이들 따라 잘 하는 듯 싶었는데….
‘흐어어엉’
분노에 찬 울음이 들려온다.
또다른 울음.
금쪽이가 다른 친구 물건을 막 빼앗고 달라고 하니까 싫다고 그러는 것이었다.
금쪽이는 자꾸 친구 것을 뻇는다. 그래서 친구 물건을 빌릴 때 먼저 써도 되는지 묻고 하는 거야, 거듭 말한다. 학기 초라 거듭 말해도 아직 시간과 훈련이 더 필요한가 보다.
악을 쓰며 우는 친구부터 교실 옆 빈 교실로 들어갔다.
어제 배운 ‘화를 풀게 하는 방법’ 을 상기시키며
‘때리는 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때리는 건 절대 안 된다.’ 와
‘화가 날 때 때리기보다 심호흡을 해라. 심호흡을 하니 기분이 어때?’ 물었다.
아이는 금방 웃으며 시원해, 답했다.
겨우 진정되었나 싶어 다행이다 안도도 잠시. 나가려는데, 아이 발에 그만 문이 부딪히고 말았다.
찧어서 아프다며 아이는 또 엉엉 울어댔다.
나는 아이에게 스스로 진정할 때까지 시간을 주었다.
강제적으로 뚝뚝만 외쳐봤자 더 울기만 할 테니 지그시 쳐다만 보았다.
괜찮아, 말만 반복하면서.
이 아이를 달래느라 나머지 애들을 신경 못 썼다.
나는 활동 끝낸 아이들에게 다시 가봐야 했기에 스스로 눈물 그치면 오라고 했다.
수업 막바지라 활동 마무리까지 하고 청소를 시작했다.
알아서 척척 빗자루 꺼내서 청소 시작한 아이들.
그틈에 난 금쪽이를 불렀다.
‘친구 물건 빌릴 때 어떻게 하기로 했지?’
먼저 약속을 상기시켰다.
아이가 답한다.
‘묻기로 했어요.'
‘왜 빼앗았어.’
‘선생님이 혼냈어요.’
동문서답이다.
특수반 선생님께 혼이 나서 서럽게 울었다는 말을 왜 하는 걸까.
속으로 네가 혼날 짓을 했으니 혼냈지, 라고 생각했지만 (이럴 때 보면 나도 선한 사람은 못 되나 보다.)
아이의 마음에 공감해준 뒤 ‘하지만 친구 거 뺏는 건 안 되는 행동이야’ 두어 번 말했다.
‘묻고 빌려’ 여러 번 말했다.
그리고 두 친구를 다시 불렀다.
저학년은 아직 역지사지 능력이 부족한 단계이다. 자기 위주로 생각한다. 콜버그 6단계 중 ‘착한 아이 정향’ 과 ‘상대적 쾌락주의’ 사이에 있다랄까. 저학년은 타율적 도덕성이라는 피아제 이론이 옳았다.
저학년 아이들에게 ‘배려’와 ‘공감’을 일깨우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아이들 입에서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사과와 용서를 바라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 할 수 없지. 알려주는 수밖에.
‘ 00아 사과하자’ ‘미안해’
‘자, @@이도. 사과를 하는 건 용기있는 행동이야. 그 사과를 받아주는 건 더더욱 멋진 행동이지.’
입을 안 여는 아이가 ‘알겠어’ 한 마디 했다.
용서를 강요하는 건 아닐지 순간 생각이 스쳤지만 두 아이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곧 점심 시간. 두 아이는 줄 서며 싱글벙글 얘기 나누고 있었다.
저학년선생님은 어렵구나.
사과와 용서.
얼핏 보기에 아름다운 단어 같지만
사실 꽤 잔인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용서하고 싶지 않은데 용서를 안 하면 나만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용서를 안 하는 게 죄는 아닌데 말이다.
또 자칫 '미안해' 이 말이 형식적으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먼저 살피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걸 아는데 저학년에게는 특히 실현하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고마우면 고맙다고.
그래서 우선 그런 '말'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고,
입밖으로 꺼내는 훈련부터 시작하고 있다.
갈 길이 먼 저학년이다.
이 아이들이 언젠가 마음에서 우러나온
사과와 용서를 느끼도록 그 방법을 계속 고민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