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
10) 황칠고목나무 수난 목포(1942)
‘황칠나무’는 남서 해안에서 자라는 토종식물이다
자생한 자리를 옮겨 심으면 살아나지 못한다
해안선에서 자라는 남 서해 토종 식물이다
동백숲속에 서로 넝쿨을 얼크렁 덜크렁 얽혀가며 자란다
해풍 속에 자라는 나무는 꽃도 붉고 건강하며 아름답다
황칠이 고목을 일본으로 가져가겠다며 파내었다
가지를 치고 묶어 기차 길 옆으로 이동했다
바위 틈새로 불어오는 간간한 해풍을 먹던 토종들이 뽑혔다
나무숲 속 위에 터줏대감 ‘동박새’ 딱따구리 파랑벌새
들의 둥지가 나딩그러 졌다
잡목을 태우며 수많은 새 둥지도 탔다
그 옆에 자라던 ‘백동백’도 파였다
작은 벌새 들 과 이별이다
살리지 못한다고 도민들이 서툰 일본말로 번역을 해도
기어코 파 내어 뿌리 가지를 찢었다
식민지 땅 나무도 고향을 떠나 죽게 되었다
사람이나 황칠이나 똑같은 신세다
황칠이는 마을사람들과 새들과 이별했다
황칠이 꽃에 앉던 벌새,꿀벌.들도 둥지 잃고 허공을 떠돈다
황칠이를 끌어 내리면서 동백 숲 은 깔아 뭉개어졌다
황토 흙을 한 방울 씩 떨구며 기차에 실렸다
천년고목들도 베어냈다
천년송, 해송,과 오리고목, 들 작은소나무 는 덤으로 베어졌다
흰 꽃. 분홍 꽃. 사과나무. 언덕마루 하늘수국. 붉은 수국.들도
모두 파 헤쳐졌다
‘학’이 놀던 소나무, 백송, 해안 송, 묘아자 나무 등
다 뽑히고 잘리고 짓밟혔다
나무 한그루가 마을 지킨다는 당산나무 ‘노송’들도 잘려
마을경치는 변형되었다
아첨꾼들은 타고난 충성심에 깊은산 옹달샘도 물이 없다
명산이 발가벗고 새들도 죽었다
나무도 산도 사람도 수치를 잃고 마르고 뒤틀렸다
몰골이 흉하게 찟긴 나무는 속살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황칠이 금분에 미쳐 황질이 껍질을 벗겨 기름(칠)
을 받아 오라며 깡통을 나누어 주었었다
황칠 진액 은 먹물에 섞어 갈면 먹 금분 이 된다
진상품이나 고가의 가구를 만들 때 옻칠과 같이 사용
하면 금색을 내는 ‘도료’ 이다
먹물과 같이 갈아 넣어 금색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그 액 의 양이 많지 않아서 더 귀한 것이다
금분 황칠에 미친 일본은 나무를 뽑아 일본에 심는다는 계획이다
온 갓 산을 헤집었다
그 후 황칠은 남 서해 에서 거의 멸종이 되었다
야만적인 욕심은 황칠나무는 그렇게 멸종되었다
고목의 묶여 비스듬이 기차에 실려 갔다
황칠이 실려 가는 모습을 동희 그림으로 그렸다
‘고흥 황칠나무,1942’ 라고 나무에 써 붙였다
나무 아래 흙을 대 여섯 가마를 고흥 흙을 같이 실었다
일본총독부에서 나온 헌병은 칼을 차고 총을 들고
주민을 앞세워 황칠이 를 찾아 숲 을 수색했다
구멍 푹 페인 황칠이 자리에 잡초만 우거졌다
거센 바람을 가리워 주던 보호 숲이 없으니 황량한 바람만
불어온다 낯 선바람이다
자생묘목들은 모두 뽑혀 고향을 떠났다
고향의 흙짐과 같이 기차를 탔다
마을 어르신은 황칠의 그루터기에 막걸리와 물을 주며
한 뿌리라도 움터 달라는 기원했다
황칠은 그렇게 남 서해에서 거의 50년 넘어서야
작은 나무들이 발견되었다
친일들의 아부는 일본인이 되려고 극에 달했다
유창한 일본말로 돈벌이로 축척하고 자식들을 가르켰다
서양인 병원을 공유했다
나약한 민초는 그들에게 아첨 해야만 이 약을 구했다
친일들은 선조들의 당했던 일들을 들먹이며 일본인으
동족을 멸시하며 온갖 행패와 만행을 부렸다
11) 늙은이 수염 (1916년 강화 기와집)
일본헌병에게 상납할 손녀딸을 감추었다는 죄목으로
인삼밭 주인의 상투 자르고 수염을 잡고 끌고 다녔다
수염 잘린 노인은 치욕에 떨다가 심장이 멈추었다
죽은 노인의 눈을 감길 수 없어 그대로 묻었다
며느리가 딸 대신 끌려가 사라졌다
인삼밭을 제배하는 기와집은 폐허가 되었다
그 집 에는 서재가 있었다
해마다 지은 인삼 재배법과 농사법 그날의 일기
나라 임금님께 ‘인삼’을 진상한 기록들이다
중국인들이 인삼을 사고 매매한 서적들이다
대를 이어농사를 지은 강화 인삼집 이였다
삼대가 모두 일본 놈 칼에 인적이 끊긴 텅 빈 집에서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들렸다
-글을 읽던 선비들이 정자에 모여 글 읽는 소리가 들린다
-흰 두루마기를 입고 죽은 아들이 마을을 떠돌았다
일본 놈 들은 그 집 에 불을 질렀다
기와장이 하늘높이 솟아 튀었다
인삼 집에서 일하던 이웃들도 불타는 집을 보며
대성통곡 을 했다
슬픈 강화의 이야기로 오래오래 기억 한다
일본놈 들 의 명령으로 인삼을 재배하려다가
몇 년을 실패한 후 인삼밭은 잡초만 무성했다
유령조차 머물지 못하게 하던 그 원한을 어찌 할까
천벌이 있다면 분명 받을 것이다
손녀의 행방은 독립군으로 들어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12) 원자탄’2발째
천황의 항복 하라는 소리가 라디오에서 메가폰으로
계속 또렷하게 들린다
“일본은 항복했다 전쟁은 끝났다
일본인은 모두 항복하고 본국으로 귀향하라!
세계 에 있는 일본으로 귀환하기 바란다~
모든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라
본국으로 귀향하라!“
우리는 전쟁에 완전 항복했다~
초라한 조선인들은 하나둘 거리로 나왔다
믿기지 않지만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거리를 메웠다
13) 군산항 1945년8월초
들녘에 곡식이 익어가고 있었다
일본 놈 메가폰소리는 톤을 높여 발악 거렸다
그 소리에 움찔 놀라는 조선인들은 어리둥절하다
배에 오르려는 일본인들의 배낭을 지고 양손에 짐을 가득 들고
불안하지만 설마 하는 굳은 얼굴로 서있다
한여름 땡 볕에 줄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옷을 많이 껴입고 짐을 가득 들었다
일본 놈 한놈이 나무 하꼬짝(상자) 올라서서 악을 쓴다
“잘들어! 조센징 빠가야로!!(메가폰)
우리천황은 미군(원자탄) 에게 항복한 것이다
조센징 너희들에게 패한 것이 아니야!!
우리는 다시 너희를 지배하러 다시 돌아올 것이다
너희는 미개인들이다
조선은 천황이 계시는 일본이 있어야 한다
모든 조선의 회사나 기계 물건들은 우리 일본이 있어야
움직인다“
군산 항구 미군(키 큰 군화와 철모)
메가폰을 든 미군이 총을 메고 배를 타려는 일본인
에게 명령 한다
“모든 물건이나 무기는 양 옆에 내려 놓아라”
명령에 불복하면 사살 한다“!~
일본으로 가져가려는 짐들이 군산 부두에 가득 뒤섞여 있다
미군의 지시로 알몸 수색을 하는 곳도 있다
“명령에 복종하라”
일본 국왕은 이미 항복했다
너희는 이제 전범포로다
본토로 돌아가려면 명령에 복종하라!
모든 물건은 바닥에 놓아라
손에 아무것도 없이 배에 타라”
미군은 일본인들이 혹시 자폭 보복테러나 그들의 근성인
망국의 충성심으로 할복이 있을 염려로 짐을 철저하게 풀어
검사 한다
여름인데도 옷을 껴입고 몸 안에 숨긴 소지품은 모두 미군에게
압수되었다
미군이 일본 장교의 모자를 벗겨 모자를 바닥에 버렸다
모든 수색은 거의 알 몸 이였다
일본 놈 들은 하루 만에 포로가 되었다
쫓겨나는 포로가 되어 발가 벗겨졌다
미군과 한국군은 군법의 규칙을 따라 포로를 보내려고
검무하고 있었다
천황의 종자들이 ‘빤스’만 걸치고 수색을 당한다
망국으로 죄인이 되어 배 안으로 가득 이송 되고 있었다
일본 아이들과 여자들의 따로 분리되었다
인형 을 안고 있는 아이들과 개 들은 통과 시켰다
겁에 질린 일본여인들이 밖을 살피고 있었다
남편을 찾는 듯 했다
그녀들도 일본 배 를 탈 때 는 소지품만 들어야 했다
‘일력거’ 에서 내려서 물건을 더 집으려 바둥 거렸다
미군들은 일본인들을 추방하려고 서둘렀다
총독부 도장이 찍힌 물건들은 압류하고 항구로 몰았다
군산항구‘곤도라’는 정지 되어있었다
일본딱지가 붙은 통나무들은 가공된 나무판들과
김제 금‘은’옥‘도자기’징‘과 괭과리. 자루빠진 도끼
호미, 삽, 낫,쇠붙이 들 저울의 추 까지 묶여 ‘곤도라’
아래에 있었다
마지막 실어가지 못한 조선의 물건들 이었다
군산시 양쪽에 일본놈들이 노획한 물건들 배로 가지고 들어가지
못한 짐들이 양 옆으로 가득했다
‘삽살개’가 짐 속 에 낑낑거렸다
허리가 긴 미국 군인은 짐 속 에서 개를 꺼네어
군산 거리에 놓아주었다
14) 해남의 옥광산 1940년쯤
해남 황산면 옥매산 은 산 전제가 보석산 이였다
그 광산을 캐어내려고 학자들과 일본군과 헌병들이 차를 타거나 배에서 내렸다
‘고바이시’ (사장)는 머리좋은 사업가였다
그는 ‘아사다 화학공업 회사’와 연결하여 1400명의 조선
광부들을 모았다
그 광물은 무기를 만드는데 쓰이는 여러 가지 가 함유된
질 좋은 광물 이였다
세계대전을 이르켜 자신들의 제국을 설계하고 무기를 만들었다
세계를 무기로 제압하고 살육을 일삼는 일본에게는 황금 같은
발견한 광산 이였다
그 무기로 세계 모든 나라를 찢어 살육의 만행을 저질렀다
옥매산 봉우리에서 케어낸 광물을 산 아래로 바로 부어
내리는 구조물을 만들었다
옥광산 은 시멘트로 터널 길을 만들어 빠른 방법으로 배까지
이동했다
산에서부터 직선으로 아래까지 운동장 같은 콘크리트길을 깔았다
광부들은 쉴 틈 없이 산을 폭파해서 등짐으로 날랐다
‘화공약품’이 담긴 드럼통 들여와 산에 부었다
옥배산은 다이나마이트 괭음으로 흔들렸다
해남을 날리듯 부수었다
그 산에서 자라던 천년 노송, 해송,적송.등 온갖 해남의
나무들도 잘리고 토막을 내어 일본 바지선에
덤으로 실었다
전설과 이야기가 담긴 명산은 뒤집히고 소나무 숲은
황토 흙이 물과 약품이 섞여 피처럼 바다로 흘렀다
붉은 ‘옥’ 과 ‘명반’이라는 광물을 폭파하고 케었다
광부들은 총칼 앞에 시달렸다
화공약품을 산에 부었다
해발170.8m 고지 산을 20c깍고 헐어낸 흙이 독물과
섞여 산 아래 마을로 흘려 내렸다
옥매산 은 살점이 떨어져나간 얼굴이 되었다
점점 그 흉터 는 커져 갔다
독 물줄기는 골짜기와 개울물로 내려왔다
무지개 색 얼룩물이 마을로 논밭으로 흘러 내려갔다
개울 옆 풀꽃들은 산발한 머리처럼 검게 말라버렸다
염전은 패쇄 되고 염전 지기도 어비도 아들과 노역으로
끌려갔다
몇 년 동안 모아놓은 소금염전도 모두 오염되었다
강제 동원된 양민들은 독이 몸에 퍼지며 피부색이
변하고 힘줄이 튀어 나왔다
갱에서 죽어서 나온 사람들의 몸을 확인하는 일본 놈 은
구두신은 발로 검게 변한 시체를 ‘툭툭’차며 죽음을 확인했다
맑은 물만 마셔도 해독되어 살 수 있었다
광부들의 신음소리는 헛 구역질 과 온몸이 뒤틀렀다
‘부모‘자식’아내‘의 품속에 가려는 희망은 버렸다
굶주림 과 약중독 이 겹쳐 죽음기 만 기다렸다
산다 해도 정상이 되기 어려웠다
1945 광부들은 식사라고 소죽 보다 못한 것이였다
토하고 바지에 오물을 싸고 죽은 동료의 시신을 안고 울며
약물을 씻기고 묻었다
8월15일 오전이 지나도 일본 놈 들이 보이지 않았다
‘고바이시’는 해방 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지만
늘 그 독립군들을 다 잡혀서 심한 고문을 했다는
보고를 듣고는 했다
그러나 오늘은 다급히 일본으로 귀환 하라는 소리와 전화선이
끊겼다 전화소리 는 그를 긴장 시켰다
몇 십년동안 지배하고 군림하던 이 땅 의 여유였다
제국주의 일본에서 살았던 어수선한 모든 삶들이 가라앉고
조선에서 자신이 누릴수 있던 자유 그리고 많은 복을
가진 특별한 존재로 늘 천황에게 감사를 했었다
일본의 생활은 상상 하기도 싫었다
조선인은 하인 이였고 일본은 천황 국이다
해방이라니 말이 안 된다
몸에 베인 만행이 앙금이 치솟아 올라온다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인정받고 수탈의 최고포상까지
받은 천황폐하의 자랑거리이던 ‘해남의광산’이다
조선의 산을 하나씩 헐어가며 일본을 부 강국으로 만들어
대대 손손 충성가문의 특혜를 꿈을 꾸었던‘고바이시’다
그는 잠깐 외출 하듯 짐을 꾸렸다
군산상업은행과 조선은행에도 들려야 한다
채권도 정리하고 수탈로 인정해준 ‘동양척식회사’의 거래한
금융권과 자질구레한 것들도 환산해서 뭉치를 줄여야한다
그러나 다음으로 미루어야 될 것 같다
전화선이 끊긴 것은 일본인들이 아닐 것이다
정갑에게 맡길까 그는 믿을만한 조선인 이였다
그리고 일본으로 가져갈 물건이 너무 많다
만감이 교차했다
후덥지근한 해풍이 불어 끈적인다
한 여름이지만 주머니 많은 옷을 겹겹이 입었다
‘니쿠사쿠’ 배낭높이 짐을 올려 메었다
양손에도 들을 것 들도 묶어놓고 (해남고바)라는 이름을 헝겊
깃발을 만들어 철사 끈 으로 짐에 엮었다
일본에 갈 때 까지 미스꾸리(짐묶음)표시 를 했다
정갑이가 해안까지는 가져다 줄 것이다
군인과 회사직원 들이 부두로 줄지어 내려간다
덥기도 하지만 찌증도 나고 어찌해야 모를 일이다
그는 ‘옥광산’을 발굴하여 긴 시간에 충신이 되었다
조선총독부를 거처서 특별히 보낸 천황이 훈장과
나무로 깎은 명패가 방에 걸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기생과 술 로 즐겼다
그는 사업가로써 군인처럼 잔인하지는 안았다
여인들과 인연을 맺고 기생들과 놀던 일들이 허망하다
독한 술 탓이 라고 떨구어 내려하지만
일본에 있는 본처보다 더 오래 즐기던 여인들이다
처음 해남에 와서 소개 받은 ‘녹동’의 소녀가 있었다
‘녹동’에서 데려온 소녀는 간강 을 당하고도 끝까지 저항했다
‘고바이시’ 도 작은 그녀의 당돌함에 놀랐다
그녀 자신이 죽음을 자초 한 것이다
그녀는 잡혀온 날 강간을 강하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을 저항했다 그리고 혼자 죽어있었다
군인과 헌병은 죽은 녹동녀를 ‘도라무통’(드럼)에 넣고서
광장에서 끓였다
그녀에게 배신당한 고바이시 의 분풀이를 해주었다
그러나 술만 마시면 그녀의 얼굴이 떠 오른다
그녀의 혼이 고바이시의 눈 앞 에서 떠나지 않는다
취하지 않는다 무섭지도 않다
다만 드럼통에서 끓여진 그녀가 눈을 뜨고 지켜보는 그 얼굴이
또렷히 고바이시를 바라 보았다
녹동녀의 죽음을 본보기로 여인들을 겁박하고 유린했다
순순히 말을 듣지 않으면 그 물을 펴 먹이겠다며
머리가 둥둥 뜬 녹동 녀 끓인 물을 펴서 뿌렀다
‘고바이시’의 녹동녀 사건이 발단이 되어 반 미친 듯 했다
저녁이면 여인들에게 분풀이를 했다
고바이시는 두려워 지기 시작했다
다른 외국 부대에서도 여자들 문제가 보고가 있다
위안부 여자를 토막 내어 끓였다는 군인들이 보고를
받았지만 고바이시 는 일반인이다
‘녹동녀’ 후로는 밤새 불을 켜고 정갑이를 불러댄다
‘아시다 회사직원’이 아기가 딸린 아녀자를 농간했다
아이엄마는 사정하며 애걸했다
그녀는 일본 놈 몸을 맡기느니 녹동녀 물을 마시고 죽겠다고
저항했다
드럼통에 있는 녹동녀의 물을 퍼다 강제로 먹였다
그녀는 젓을 먹이는 아이 엄마였다
가슴에서 젖이 불어서 흘러 나왔다
그녀는 울며 아이를 데려다 달라고 사정했다
다음날 헌병이 칼로 그녀의 목을 그었다
고바이시 는 ‘상패’를 올려 다 본다
매일 출퇴근 시간마다 거수 을 붙이는 상패다
천황은 상패와 포상을 보내어 조선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사기를 돋우었다
고바이시 는 직접 사람을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 모든
것을 보았고 군인들의 칼들은 조선인의 피로 늘 젖어 있었다
그가 어디를 가나 녹동녀의 얼굴이 눈앞에 붙어 다녔다
그녀가 나타날 때면 칼에서 피비린내 가 난다
‘고바이시’ 는 이제 본국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다
문지방 의 ‘상패’를 떼었다
제주 ‘모슬포’로 보낸 광부 들을 떠올렸다
그들을 모슬포로 보내며 약속한 계약서와 서류에 지키지
못한 이름들만 서류에 남아있다
고바이시는 책상에 가지런히 놓았다
‘아시다’ 가 약속한 도장이 찍힌 서류이다
그들이 모슬포에서 돌아오면 임금 보상 서류이다
필요할 것 같아 태우지 않았다(그들의 귀향 참고)
일본 놈 들은 온갖 가축을 다 잡아 먹은 탓에 가축이나
소가 없었다
해남의 바다는 파래 미역조차 오염으로 먹을 수 없었다
광부들은 맨 땅에서 자고 고된 노동에 굴에서 나오지 못했다
목숨이 붙은 광부는 화학 독약 물 을 맨손으로 저었다
‘다이나마이트’ 를 연결하고 달려 내려오다 떨어져 죽었다
옥배산은 칼로 자른 듯 숲이 뚜껑이 열린 듯 드러내었다
거기에 구멍을 뚫고 계속 독약을 부어 약이 빛을 내는
반응을 보고 각자 지시대로 분리해서 레일이 있는
광물을 부어 내렸다
쥐와 독벌레들이 우굴거렸다
굶주림과 시달림은 죽기를 기다렸다
모두 병 이 들었다
‘고바이시’는 상패를 깊이 넣었다
나라위해서 죄의식을 갖지 말라고 했다
낯선 비행기 소리가 자주 들린다
믿기지 않았던 미국 원자탄 소식을 듣고 항복한
미국의 비행기다
조선 하인 ‘정갑’에게 전날 당부 했다
화학공업 회사에서 보낸 약품들과 광물더미 들이 옥동부두에
‘주인선’(그렇게불림) 이 일본인들을 태운다
‘고바이시’는 해남의 문서들을 모두 불에 태웠다
자신의 앞으로 돌렸던 서류들과 온갖 낙서 장 들
붉고 검은 도장이 찍힌 부적 같은 문서를 태웠다
‘동양척식’에서 인정받은 조선의 재산문서들 이다
불티가 날려서 ‘고바이시’ 옷으로 붙었다
정갑이 는 그의 옷깃의 불티를 털어 주었다
정갑의 친절에 ‘움질’ 낯설음을 느낀다
정갑이 는 모든 일 을 다 알고 있을텐데 말이 없다
그는 그날 정갑의 도움 없이 부츠를 단단히 묶었다
새로 지은 창고 속에 가득 찬 광물과 백옥,청옥, 홍옥,
의 창고열쇠를 마루에 놓았다
정갑이 “저 것 들은 어찌 할까요”물었다
정갑의 유창한 일본말이 낯설게 들린다
고바이시 는 “기다려 손대지 말고!~
‘모슬포’로 빼 내어간 젊은 광부들이 떠난 뒤 일이 늦어졌다
연구해야 하는 광물과 옥은 따로 분리해 두었다
책상에 놓여진 옥을 바라보며 조선이 온통 자기 땅 인냥
매일 흐믓 하게 지켜보던 옥 돌 이다
그가 ‘청옥’보다 좋아하던 벽돌 크기의 ‘홍옥’과 ‘백옥’을
짐 안에 넣었다
창고 문 의 열쇠꾸러미를 마루기둥 ‘못’에 걸었다
늘 정갑이에게 주어 걸었던 열쇠꾸러미다
철커덕 그가 거는 소리에 정갑이가 놀란다
항상 정갑의 손으로 넘겨주던 쇠 문 꾸러미 였다
‘고바이시’는 약간의 두려움이 있는 얼굴이다
고바이시 는 정갑 를 일본으로 데려가고 싶다
일본으로 오라고 하고 싶으나 ‘녹동녀’가 막았다
군인과 아시다 직원들이 해안으로 내려 간다
제법 빠른 걸음으로 ‘옥동’해안 배가 기다린다
짐들을 손에 많이 들려서 걸음들이 휘청 거린다
해남에서 몇 년 동안 약탈 수집한 것들을 ‘미스꾸리’(포장)
해서 직원들이 들고 배안으로 들어선다
아시다 회사 직원들과 살림하던 여인들이 마중 한다
임신한 여인들도 두어명이 서 떠나는 배에 손을 흔든다
정갑이도 고바이시 짐을 들고 내려가 간다
고바이시는 정갑에게는 식민지 하인으로써는 넉넉하게
배풀어 준 사장 이였다
광부 하나가 광산 위에서서 크게 소리친다
“해방 대한 독립만세 대한독립 만세”목 놓아 소리친다
하던 일을 계속하던 광부들은 연장을 놓았다
그 자리에 풀썩 앉았다
광산에서 하나 둘 밖으로 나와서 허리를 폈다
그래도 몸을 추수 릴 수 없어 마실 물 을 찾았다
인부들은 고향집으로 찾아 갈 기운도 없었다
몰골이 말할 수 없이 처참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해남의 광부들 2천명이 끌려와 죽어갔다
아시다 직원과 일본군인들 삼백여명 이였다
해남은 황매산 뿐 아니라 섬 주민의 생활 반경을
시멘트로 물줄기와 숨통을 막아버렸다
이름모를 여인들이 잡혀왔다
아녀자들은 농간을 당하고 따라온 어린이를 죽였다
여인들 더 이상은 여인으로 살수 없었다
몸과 마음 그리고 굶주림에 피폐해져 시체 같았다
8월16일 해남에 항에 비행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화공약품을 내리려면 몇일 이 걸린다
그 배로 그냥 일본으로 가야 했다
다급하게 선장은 하늘의 비행기를 가르켰다
‘아시다’호는 그날 옥동 항 을 떠났다
300명과 많은 짐 을 실은 ‘주인선’은 일본으로 향했다
한 시간 후
‘아시다’화물선은 폭음과 검은 연기로 불에 휩싸였다
‘아시다호’의 ‘해골마크’는 조선을 벗어날 무렵 서서히
해남과 부산 가운데 에서 가라앉았다
검은 연기는 하늘을 막았고 밤까지 계속 불이 올랐다
비행기의 폭격 소리보다 화공약품 드럼통 폭팔 하는
소리 더 크게 계속해서 들려 왔다
15) 손자들과 할머니
일본 놈 사라진 세상이 왔다
독립의 희망은 영영 끊어져 버린 줄 알았다
독립된 나라는 빠르게 회복되어갔다
36년 동안 몸도 마음도 병들었던 시간만큼 이중인격들이
뒤섞였다 동기간들도 모두 삶이 달라졌다
일본 놈 치하에서 어찌 어찌 살아온 만큼 변질된 조선인
과학과 문명을 배운 자녀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다
일제와 섞여서 살았던 오해와 복수로 연결되었다
인정은 하지만 이념은 늘 “난 친일”아니야
일본 말을 쓰며 조선말들도 모두 어눌 했었다
섞일 듯 섞이지 않았지만 교차되어야 살 수 있었다
가장들이 실종되었거나 죽었기 때문에 원한은 가난과 한으로 대를 이었다
가장들이 돌아오는 집도 있었다
그들은 기다리고 헤매었다
아이 많은 여자들은 가장이 되어 억척스러워 졌다
작은 다라이(양은그릇)머리에 생선을 이고 노점상을 했다
막노동 건설하는 일꾼들은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문제는 인물 좋고 유식한 친일파들이 공직자 자리에 앉아서
공무를 보았다
그들은 무지한 자들의 대변자가 되었다
일본 놈 에게 배운 기술로 회사를 차리고
국회의원이 되었다
하지만 우선 먹고 살아야 하기에 할 수 없이 살아갔다
할머니는 손자가 다섯이나 되었다
아들은 끌려가고 며느리는 어린아이를 놓고 사라졌다
장애가 있는 어린손자도 있다
할머니는 손자들은 힘을 합쳐서 집에다 국숫집 을 차렸다
기름집, 두부집, 오뎅집, 생선집.이 생겨났다
구호물자들이 들어왔다 북적댔다
구호물자를 싸게 사들여 파는 사람도 있었다
새벽부터 생선장수 두부 장수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그렇게 벌어서 손자들을 가르켰다
할머니의 말씀은 손자들에게 귀에 딱지가 붙도록
배움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구걸을 해도 배워서 해라”
할머니의 명언이다
16) 송충이
매일 반공 방첩 휘보가 벽보에 나붙었다
독립이 되고 6,25를 겪고 동족이념 정치 갈등으로
안정되지 못한 조선의 땅에서 농사지을 남자들이 없어
흉년으로 이어졌다
조선인들은 뼈만 남은 몰골로 보릿고개 넘기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산하는 ‘송충이’에게 시달렸다
민둥산이 된 산에 여린 나무도 송충이의 먹이였다
해방이 되던 해 종자 씨 없어서 보리도 심지 못했고
풀뿌리 케려 는 들판은 굶주린 여인들은 혈안이 되었다
논 에서 쌀이 나오려면 몇 달을 더 버텨야 했다
풀 뿌리,송피 로 연명했다
독이든 버섯을 먹어 창자가 부었다
변을 보지 못하고 배가 부풀어 죽었다
그런 삶속에서 아이를 지켜가며 여인들은 살아갔다
겨우겨우 살아난 사람들은 온갖 벌레들에게 시달렸다
송장애벌레에서 나온 초록 파리들은 윙 소리를 내며
사람이나 짐승에게 달라 붙여 피를 빤다
‘송충이’들은 회초리 같은 나무에 다닥다닥 붙어서
나무진을 다 빨아댔다
‘송충이’ 더듬이를 치켜 올리면 새들도 놀라 퍼득였다
송충이 털은 피부와 눈에 붙어 병이 생겼다
송충이가 성충이 되면 긴 손가락만한 마디마디
눈알이 달려있다
붉고 검은 털 에 누리 한 몸통, 배 는 많은 다리를 달고
몸을 구푸렸다 쭉 펴서 점프로 나무를 옮겨 다닌다
새까만 털 달린 성충은 나무에 빈틈없이 붙어 즙을 빨았다
학교에서는 소풍으로 온 학교가 송충이를 잡았다
소풍가는 날은 송충이를 잡는 날이다
새들은 나무 높이 올라오는 송충이 옆구리를 쪼아 떨어지는
찟어 삼켰다
그런 속에서 이념과 정치 정권다툼은 나라는 시끄러웠다
데모와 군인들의 훈련으로 세금은 거두었다
17)기술이 무섭다
전기선 본선에서 집으로 선을 연결해 주는 두꺼비 집을
달아서 번쩍하고 전기가 들어오게 연결했다
어둡던 집을 밝혀주는 것은 기술 이였다
친일들 일본인들이 남겨둔 기계의 기술자로 일했다
그들이 없으면 전기가동 할 수 없고 제지 공장이나 전기
작동기계는 일본제작자들을 통사정해서 돈을 주고 초청해 왔다
그 들은 수입품을 사먹고 차를 가졌다
가전제품을 일본산으로 들여와 호화롭게 잘 살았다
학용품과 가방도 일본산으로 학교를 보냈다
그리고 명문대 대학을 보냈다
가난한 사람들은 공업고등이나 상업학교를 보냈다
18) 친일 두창섭 1919
‘에라우찌’ 가는곳 마다 첩을 두었다
에라우찌는 두창섭 과 회현 들녘의 소득을 자가 소유로
만들었다
중국에서 적 벽돌 을 들여와서 농수로를 만들었다
단단한 시멘트로 농수로를 만들어 수문을 만들었다
두창섭 은 일본인 군복을 입고 부츠를 신었다
동족들에게 언짢은 기색이 들면 그 들의 논에 들어가는 물코를
열어 주지 않았다
거의 90%가 빼앗기는 농사이지만 노 부모님과 자식과
살아나가려면 비위를 맞추어야 했다
농사에는 물이 있어야 하므로 농민은 그에게 굽신 거렸다
두창섭 은 조선 동족에게 더럽고 미개하다며 멸시했다
일본에서 들여 온 약을 중간 상인 으로 갑부가 되었다
그의 상술은 일본인들도 속았다
해방 과 전쟁이 끝나고 두창섭은 사라졌다
일본인이 되어버린 그가 동족에게 저지른 만행으로 고향에
살수 없었다
에라우찌와 같이 일본과 중국을 드나들며 일본에게 충성했다
독립 후 야반도주해서 서울로 이사를 갔다는 설이 있다
혜택을 누리고 잘 살았던 친척들도 점점 사라졌다
많은 혜택과 문화시설 자동차로 드나들었다
자식들을 해외나 일본으로 대학을 갔다
그렇게 부모덕에 배운 학문으로 세계 문명인이 되었다
전쟁후유증의 원수도 복수도 현실에 밀렸다
아픈 사람은 병원치료를 받아야 했고
자동차를 빌려 타야 했고 약이 필요했다
그들 중 하나는 택시회사를 했고 운수사업을 늘려갔다
과거를 따질 때가 아니였다
그렇게 슬프고 악랄한 과거는 묻혀 지고 있었다
고아원에는 아이들이 넘쳤다
전쟁 고아들은 호적을 만들어 모두 학교를 다녔다
정이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산골 집으로 돌아왔다
홍역이 퍼지고 있었다
피부가 벗겨지고 얼굴이 얽은 곰보 병이 돌았다
‘고아원’에서 예방약 주사나 ‘항생제’으로 치료를 받았다
아들 잃은 아버지의 통곡이 저무는 하늘에 울렸다
젖 먹이 를 잃은 여인은 정신병이 되어 보따리를 안고 길을
떠돌았다
전쟁 후 겨우 살아난 사람들도 질병으로 시름시름 죽어갔다
19)백정 노서방(순천시장) 1968
‘노 서방’ 은 다리하나가 없다
열심히 돈을 모아 판자로 정육점을 지었다
그의 가게는 유성기판 노래 소리가 가끔 흘러 나온다
부모가 그리워 애뜻 한 노래들을 허공에 부러댄다
전선야곡.한많은 대동강등 절절한 가사들이다
임진으로 시집간 ‘선주’ 친정인 순천으로 돌아왔다
선주이 시댁식구들이 모두 흩어지고 남편행방을 모른다
혼자 어찌하여 38선을 넘었다
선주 아버지는
일본 놈들 먹잇감이 되지 않게 일찍 시집을 보냈었다
딸의 소식을 들을 수 없어서 애가 탔던 부모님은
선주의 귀향에 고생을 생각하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러나 선주는 달라졌다 억척이 되었다
노부모님도 선주를 따라 다니며 활기를 찾았다
선주는 국밥집 을 차렸다
친정 노부모님과 정성껏 국물을 끓여냈다
고기를 삶고 선지를 데치고 뜨거운 국물을 퍼서 옮겼다
친정아버지는 돼지머리 삶는 아궁이에 불을 지켰다
‘양반상놈, 할 것 없이 살았냐 죽었냐 안부였다
‘진지는 잡수 셨는지요’ 가 인사였다
모두들 자식들을 늦게 라도 학교에 보냈다
선주도 말이 없지만 어린 자식을 잃었다
아이만 보면 엉하니 생각에 잠긴다
선주는 부모님 과 친정집을 가게로 넓혀갔다
친정어머니 김치와 반찬을 만드셨다
순천 장독행상 에게 독을 사들여 장도 담갔다
슬픔이 조금씩 잊혀져 갔다
노부모는 딸과 같이 밭에도 많은 것을 심고 가꾸어도
피곤한 줄 모르셨다
선주와 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진다
장날이면 ‘흥’타령 노래소리가 들린다
식민지로 밟힌 애뜻한 사랑,
잃어버린 가족과 죽음과 생 이별
생사를 모르는 부모님 형제 온갖 사연을 담은 가사로
사랑을 노래를 만들었다
조선인으로 거의 40여년 동안 에도 정체성을 찾아갔다
장 마당은 애간장을 녹였다
목에서 끌어 오르는 소리는 절규어린 한 많은 노래였다
“산홍이라는 기생은 나라를 연인생각하고 부른 노래다
너 없는 가슴은 눈 오는 벌판이요
달 없는 사막이고
불 빛 없는 항구다
선주의 이 노래만 흥얼 거린다
나라 사랑의 마음을 절절하게 만든
기막힌 사랑노래이다 (참조)
노 서방 정육점도 점점 육간이 커져갔다
‘가거라 삼팔선’ 남인수 가수들의 노래를 늘 들려주는
노서방 이다
또래였던 친구들은 독립운동가로 만주, 용정,간도,로 떠난 후
타향에서 죽어간 친구들 소식을 조국 잃은 자들의
젊음시간들을 객지에서 떠돌다가 초개처럼 날려버리고
고향으로 오는 소식을 기다린다
전하는 이도 전해오는 이도 없어 노서방은 고향이라도
지켜 소식을 전하려 한다
목발을 집고 장사를 하는 노 서방 아내는 평범한 여자다
임진댁(선주) 을 눈엣가시로 보았다
선주를 바라보는 노서방의 따듯한 눈빛이 자신에게는 없다
노서방 은 선주 부모를 자기부모처럼 존경하며
의지했다
노서방 은 점심은 꼭 선주 친정아버지와 겸상을 했다
그 옛날 꽃다운 선주가 아니라 억척이로 변했다
국밥집 주모로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는 파란만장했던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선주는 엄마에게 슬쩍 한마디 말한 적이 있다
선주가 “가수들은 뭘 알지도 못하고 노래만 한다”고
노래 가사에 선주는 가끔 따라서 흥얼거린다
1980 순천시장 안에 선주 국밥집이 있었다
20) 포목장사 송화 1943
초여름이다 꽃 들이 피려고 몽오리 를 맺혔다
풀들은 어느 틈 속 에서도 꽃을 피어나게 한다
채송화의 친정은 오수라는 시골이다
몸집이 작은 송화는 16세가 되자 아버지가 순천으로
시집을 보냈다
조선은 ‘조선총독부’라는 명칭으로 일본이 되었다
송화 의 친정은 농사를 짓는 지주 였었다
친정아버지가 일 년 동안 지어놓은 곡식을 공출로 빼앗기는
것을 보고 자랐다
남편은 양반이라는 성씨로 개으르고 무능했다
마을사람들 편지나 읽어주고 마을 상갓집 깃발 만사를
써 주고 오는 일이 전부이다
딸을 둘을 낳은 송화가 고생한다는 소문을 들으신
친정아버지는 송화의 집에 오셨다
중매쟁이 말에 속아서 보낸 딸 이다
‘지게’ 에 쌀을 지고 쌀 지게를 풀로 덮어서 오수에서
순천까지는 밤 길을 걸어서 산을 넘어 이틀이 걸렸다 한다
그 쌀로 밥을 해 드린 것이 딸 송화와 마지막 이였다
세상을 잘못만나서 뼈골 빠지게 일해서 다 빼앗기고
일본 놈 들의 치욕과 모욕을 견디시며 묵묵히
시시던 아버지 시다
아버지는 딸 다섯과 아들 셋을 집에서 공부를 시키셨다
좋은 세상이 올 것이다 하시며 글을 가르키셨다
아버지에 대한 일화가 있다
대나무 숲 귀신을 잡은 송화아버지
밤마다 귀신이 나온다는 대나무 숲 골짜기에는 밤만 되면
일본 놈 들도 무서워서 했다
채화용 씨 는 그날 밤 숲에서 귀신을 기다리셨다
달이 뜨고 밤이 으쓱해지고 자정이 가까웠다
아니나 다를까 듣던 대로 귀신이 손짓을 했다
귀신이 손을 흔드는 곳으로 가까이 가보니까
상여 가 지나갈 때 끝에 매달린 달린 상여종이가 대나무에
걸려서 밤이면 달빛에 반사되어 하얗게 나풀거렸다
그 모습이 마치 귀신의 팔과 손 같았다
귀신의 손모가지를 잡듯 상여 종이 걸린 대나무를 꺽어
대숲 길 을 내려 오셨다
자그마한 체구의 체화용 씨의 당당한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일본 놈 들도 귀신 잡은 할배 로 일화를 남겼다
‘밥 한 톨이 귀신 아흔아홉을 잡는다’는 속담이 있다
올바르지 않으면 헛것이 보인다고 하셨다
“귀신이 있다면 나와서 나라를 구해야지
왜 대 숲에서 숨어서 사람을 괴롭혀 !!~
귀신이 어딧어!~
“살아있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왜놈을 몰아내야지
귀신들이 뭐하는 것이여 나라도 뺏기고”
옛 말에 귀신이 제일 무서워 하는게 효자란다“!
마을 사람들에게 호통을 치셨다
송화내 집은 마을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여기 저기 기차역과 관사를 짓는 노역으로
남녀노소 송화아버지를 포함에서 모두 끌어갔다
아버지는 좋은 세상을 보지 못하시고 끝내 돌아가셨다
채송화는 가슴은 터질 듯 답답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는 더욱 우울 했다
누군가 귀 뜸 한 포목장사라도 해 보기로 했다
청진에는 순천 베 들이 비싼 값에 팔린다고 했다
광목세필 을 겹겹 누벼서 아기 포대기로 만들었다
자신의 치마와 속치마도 물을 들여 광목을 옷으로
위장을 했다 수수한 순천 아낙 이였다
딸 아이들 양식으로 콩과 보리를 볶아서 넣었다
청진으로 가기 위해 순천 역 열차에 올랐다
원래 청진까지는 기차로 사흘이 걸린다는 말을 들었다
전쟁중이라서
기차는 군수물자 기차가 우선 교차해야 하기 때문에
연착이 되면 하루나 이틀이 더 걸렸다
작은 딸은 광목포대기로 등에 업고 큰딸은 걸렸다
양식으로는 볶은 콩 계란 몇 개와 고구마 감자다
볶은 콩을 가지고 다니며 우물우물 씹어서 연하게
하여 딸들 입에 넣어 먹였다
기차역마다 일본글로 쓴 역에 정지했다가 다시 출발했다
기다란 기차는 조선의 반도를 달리며 긴 소리를 낸다
산천초목들을 뚫고 달리는 기차는 끝이 없는 길을 간다
우거진 숲과 들판을 지나면 다시 숲으로 이어진다
낯선 숲의 냄새가 난다
평양역에서 부터는 지역의 냄새가 달랐다
기차에 사람의 냄새들은 송진과 숲의 냄새로 바뀌어
올라갈수록 송진의 향이 강하게 풍겼다
이것이 다 조선을 땅인데 일본 놈 들 에게 빼앗기다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에 눈물이 난다
내나라 땅 오수 들녘에서 농사지으시던 아버지가 진지 드시던
모습이 떠 오른다
막걸리를 꿀꺽 꿀꺽 새참을 넘기시던 어버지 셨다
기차 안에는 일본사람 같은데 조선말을 섞었기에 시끄럽다
무역(장사)하는 사람들 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