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

21)~29)

21) 청진역 여름

기차에서 내리자 낯선 바람이 얼굴에 닿는다

약초향이 진하게 훅 들어왔다

청진의 산천초목 속으로 기차가 장난감처럼 들어왔다

울창한 숲을 뚫고 달려온 기차는 높은 적송 숲 에 쉬고 있다

울창한 적송 숲 은 겨우 하늘이 보인다

상상도 못할 굵은 나무들이 가득한 산천이다

송화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숲에 가려진 틈으로 하늘은 조각처럼 보인다


순천은 아직 여름인데 청진의 공기는 싸늘했다

겨울처럼 두껍게 입은 사람들이 오간다

‘광장역 시장’은 백두산 이라는 표지가 있는 곳

지게꾼들이 높은 짐을 내리려 작대기로 받힌다

이름 모를 약초,버섯,산나물 등 이 쌓였다

꿩.과 새매. 는 닭처럼 흔하게 길에서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싸여있다

산 짐승,들과 털로 만든 조끼 같은 옷‘목도리‘모자’ 귀마개‘

발 토시‘ 등을 집에서 솜씨를 내어 만들어 내어왔다

청진의 추위는 짐승 가죽만이 추위를 막는다


백두산 새끼호랑이가 포수에게 잡혀와 청진역 바닥에

 혀를 내밀고 죽어 있었다

송화는 아이들과 처음으로 호랑이를 보았다

그 ‘포수’들은 죽은 호랑이를 들어 올려 크기를 확인했다

차림세 가 험하고 거친 모습이 무서웠다


일본인들은 연례행사로 백두산호랑이를 사냥한다고 했다

‘조선포수’들을 앞세워서 노숙을 하며 호랑이를 잡았다

백두산 ‘호포’는 겨울 산 호랑이 사냥꾼으로 유명하다

호랑이 전문 포수를 앞세워 한 달 씩 노숙을 했다

 긴 총과 권총을 자랑하며 사냥을 떠난다 

 그들이 구입하는 먹이와 옷들로 청진시장은 번화하다


 새끼 호랑이를 잡아 ‘대호’를 유인하기도 한다며

사내들의 거친 웃음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가 호령하듯 힘차고 강하게 들린다

호랑이를 잡으면 바로 가죽을 벗긴다

조선인들은 총을 든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가죽은 일본 놈 들이 가져가고 여러 부분은 말려서

신비한 ‘명약’으로 약재상 들이 가져 간다

오래된 버섯들이 크기가 우산처럼 켰다


 백두산 ‘산삼’이 파단처럼 묶어놓은 소매상이 있고

볏단처럼 묶어놓은 것은 장뇌삼이라고 한다 

 시장은 남자들이 손님을 기다렸다

옥수수도 씨종자가 크고 색도 여러 가지 였다

장날이 따로 없고 물건을 가지고 오면 그냥 자리에

놓고 간다

누가 누군지 그들은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생선전에도 큰 고기들이 많았다

어시장에도 생선이며 다리가 긴 ‘대개,는 처음이다

사람 키 만한 ‘수레미’ (오징어)를 보고 놀랐다

‘키’만 한 동태나 대구를 지개에 지고 와서 작두로

잘라서 판다

송화,는 딸들과 기차에서 내려 광장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서너 번 이나 다녀간 청진 역 은 넓고 황량 하였다

딸들이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코를 막는다

순천을 출발해서 오는 동안 내내 입이 마르고 갈증이 났다

긴장 한 탓이다 

입안 헐고 허기가 진다

시큼한 냉면국물이 먹고 싶었다

그렇지만 딸 아이들과 같이 먹으려고 국수 한 대접을 샀다

국수의 육수는 생선과 육 고기를 푹 고아서 만들었다

그 뽀얀국물 에 국수를 넉넉히 넣어준다

한 방울 도 남김없이 아이들과 맛있게 먹었다

‘청진포목점’주인 여인이 송화를 보고 달려온다

‘순천 에서 온 아지매요“

“기찮아 도 매~ 밖을 보고 기다렸습메다”

아 어메가 가 을라 들 데리고 올끼 라는 기별은

듣고 서리 혹 이때저때 눈 안떼고 기다렸습메다

기린데 참말로 이렇게 이쁜 얼라들 이랑 같이 왔습메!~


 기차오는 소리가 들려서 집에서 매 뛰어 왔음메 ~

참 말로 기다렸습메다“

먼저 온 포목장사가 말을 해 두었던 모양이다

포대기로 위장한 광목은 두어 필쯤 되었다

치마 속바지 까지 벗어주고 아기는 낡은 포대기로 둘렀다

청진 여사장은 아이들을 보며 돈을 넉넉히 주었다

몇 번만 더 청진을 다녀가면 송화의 꿈을 이룰수 있다

학교 옆에 아담한 집을 사서 떡장사 라도 해서

딸들 학교도 보내고 오순도순 살 고 싶었다

순천에서 청진은 그 당시 ‘이천리’ 정도

먼 거리다 아이들과 다녀오면 십 여일이 걸린다

시어머니는 양반 집안에 떠돌이 장삿꾼 며느리로 들어와

집안망신이라고 ‘드센 년이니’ 고집이이니‘ 팔자 세다는 둥’

뭔 짓을 하고 다니느냐며 막말을 하신다

순천 포목 값 갚고 쌀 두 가마 정도가 남았다

점점 용기가 생겼다 

가난한 개으른 양반 남편과 마주앉아서

헛소리로 얽혀 싸우는 일상이 진저리가 났다

어린 딸들에게 괜히 버럭버럭 남편과 시어머니를

마주 하는 게 더 싫다

‘송화’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여인이지만 ‘청진’에서 보아온

것들과 ‘포목장사’를 하며 터득된 것은 용기이며 희망 이였다

두려움도 있고 숨죽이 듯 겁도 났다

집안에서 꽃도 기르고 바느질도 하며 오순도순 살림도하고

싶었지만 왜놈들 탓에 아무것도 안되었다 

남편도 의지가 되지 않았다

송화는 장사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청진에서 흔하지만 순천에는 귀한 물건을 교환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화물까지 는 너무 이르다

잘못하다 지금포목장사 도 모두 빼앗기고 만다

더구나 약초는 냄새가 강해서 금방 발각 될 것이다

예쁜 미투리를 사서 딸들에게 신겼다

예쁜 옷 한벌 과자 한봉 먹이지 못하고 말만 풍년든

허풍선 식구들이 마주하기 싫어 자꾸 피했다

송화는 

두렵지만 용기를 낸 탓에 눈에 보이는 것이 많았다

낯익은 청진 길이 조금 익숙하게 들어왔다

산천초목을 구경하며 딸들과 색다른 지역의 음식을 사먹고

두려움 이상으로 자유로웠다

일본 놈 들 없어지고 내 나라 사람들끼리 기차를 타고

장사하며 화려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녀는 기차에서 꿈을 꾸었다

화물칸 한칸 에 ‘순천포목’을 가득 싣고 다니는 꿈을 꾼다

돈을 손에 쥐어보니 세상에 모든 것들이 모두 다 돈으로

만들 수 있는 재료들로 보였다

‘청진여인’ 들은 허리가 가늘고 얼굴이 갸름하다

옷맵시 좋은 포목주인은 흑공단 비단저고리를 입었다

항상 머릿수건을 쓰고 키가 한 뼘 정도 큰 것 같다

수건에 가려진 머리 단 은 숱이 많았다

저고리가 아래 허리에 감은 치마 말기가 넓었다

그녀는 가는 허리에 치마를 잡아 휘어 감았다

발편이 좁고 엉덩이가 오똑하다

남자들도 체구도 순천 사람들 보다 크지 않았다

‘게다’(조리)를 신은 일본여인들이 냉면집을 오갔다

감자냉면과 전 국수집도 옥수수로 만든 국수가 구수 했다

김치나 반찬은 순천과 조금 달랐다

그러나 맛은 신선하고 싱거운 듯 심심 했다

아버지에게서 매운 글자 몇 개가 눈에 들어온다

이럴 때 를 생각해서 공부하라 하신 아버지 시다

약방이라고 크게 쓰인 옆에 신약이름이 써 있다

남쪽 보다 일본인들과 자유로워 보였다

순사(경찰)나 역무원 에게 잡히면 압수당한다 

다시는 포목 장사를 할 수 없다

일본 ‘역무원은’ 자주 얼굴이 익은 송화에게 꼬치꼬치 물었다

아이들 친척이 ‘청진’에서 많이 산다고 둘러댔다

청진의 여름은 짧고 덥지 않다

잠깐 덥다가 백두산에서 얼음 바람이 불어온다

그 틈에 긴 겨울을 보낼 양식들을 저장해야 한다

나무나 풀뿌리 까지 조금씩 달랐다

기온의 차가 심한 것을 같이 느낄 수 는 없지만

이치에 맞게 살아가는 삶들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신 양복쟁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서양식 양모 옷으로 바꾸어져 갔다

일본 여학생들이 세라복 과 주름이 가득 잡힌 찰랑거리는

나일론치마를 입고 지났다

송화는 딸들도 잘 기르고 싶은 희망이 있었다

청진에서는 이남의 쌀이 최고 상품이다

감자 국수나 냉면은 별미이지만 쌀 은 최고의 값을 받는다


순천 이남의 농사꾼들은 일 년 내내 논바닥에 살아야 한다

한 겨울에는 퇴비를 만들고 가마니를 짜고 농사철에 필요한

연장들을 정리 한다

모내기를 마치면 농부는 종일 피살이(잡초)하느라

논에서 벼를 만들기 위해 혼신을 바친다

가을의 햇살은 온 산천의 쌀과 곡식을 익힌다

햇살은 기막히게 과일과 곡식을 익힌다

부지런한 농부의 손길과 가축의 거름 여름의 비

가을의 햇볕을 잘 먹어야 알곡이 나온다

그렇게 힘들여 지어놓은 곡식을 공출로 빼앗긴다

죽지 않고 살아나려면 내어놓아야 한다

청진의 주식은 옥수수.나 감자. 수수. 잡곡.들이다

명절이나 조상의 제사를 쌀밥으로 드린다

송화는 포목을 넘겨주고 평양행 기차를 기다렸다

평양.에서 서울. 대전. 솜리. 에서 순천. 구례.로 가야한다

기차 시간이 좀 여유가 있었다

22) 청진 부부

송화는 ‘녹두나물’ 을 처음 보았다

부부가 지개에서 내린 콩나물과 녹두담긴 동이를

 나란히 놓는다

부부가 오누이같이 다정했다

송화도 남편과 다정하게 살고 싶었다


여자에게는 ‘서방 복’ 이 제일 이라는데 이미 포기했다

모든 여자들은 남자의 보호를 받으며 사는 줄 알았다

중매꾼 말에 송화 아버지가 때가 전쟁 시기라며 떠 밀었다

가난한 것은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송화나 아이들에게 막 말하는 버릇이 진저리가 났다

양반이라 좋은 집안인줄 속았다 

남편 시구들은 모두 ‘귀먹은 청개구리’ 다

후회하기는 이미 늦었다

어린 여자들은 위안부 노역으로 일본 놈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조기 결혼을 시켰다

그렇게 왜놈들을 피해서 일찍 시집을 간 여인들은 임신과

가난한 살림살이에서 늙어간다

송화도 매일 반복되는 일상들이다

겨울에 개울물을 깨서 빨래를 한다 

얼어버린 손과 발은 동상에 얼어터지고 피가 줄줄 흘러도

침뿐이 바를게 없다

고달픈 일상에도 여인들은 아기를 낳는다

생리가 흘러도 막을 천 조각 하나 없는 여자들의 애환은

죄가 많아서 여자가 되었다는 말을 만들었다

여인들은 남편에게 시달리다가 영양실조가 된 몸으로

아이를 낳다가 죽기도 한다

청진 역 아래 개울이 흘렀다

올챙이 국수집 옆에 디딤돌로 내려갔다

졸졸 흐르는 개울에 앉아 송화는 발을 씻고 딸들도 씻겼다

기차역 뒷길로 아이들과 걸었다

흰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학생들의 기차역에서 재잘 댄다

등줄기로 땋아 내린 긴 머리가 윤기가 흐른다

청진은 일본학생들과 같이 공부도 하고 자유로웠다

아이들을 데리고 기차를 오르고 내리는 두렵지만

집에 있으면 더 답답하다

가족인데 왜 서로를 괴로운지 알 수 없다

가족이 서로 괴로운 인연을 맺어 사는게 답이 없다

그리고 아이가 생기고 아이의 엄마아빠가 된다

그러나 살아야 한다 

송화는 친정아버지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오시면 늘 방에서 연기를 방안 가득하게

담배를 쉬지 않고 피우시고 한숨만 쉬셨다

담배 살돈으로 밀가루라 한 근 이라도 사오시면

수제비라도 해서 먹으련만 할 수 없다

쌀 한줌 없는 집구석에서 남편은 밥을 하라고

소리를 지른다

아마도 송화를 친정 에서 보낸 쌀을 기대 하는 것이다

그때 그 쌀이 다 떨어질 때 까지 며칠을 시댁시구들이

들끓었다

송화는 “아버지는 그건 왜 그걸 지고 오셔서”~

좋던 아니던 삶은 모든 것이 문제가 되었다

청진역 냇가에서 송화는 앉아서 앞날을 생각했다

열차 시간이 되자 기차를 타려고 사람들이 몰렸다

청진역 광장 녹두나물 장수 부부가 딸 재순이 를 보고 웃는다

송화는 기회를 엿보다가 말을 걸었다

다음번 에 전라도 순천 쌀 을 좀 가져다 드릴 테니

녹두 나물 키우는 것을 좀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녀는 사투리를 쓰며 설명해 주었다

“이거 벨거 아님메”~!

하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 설명을 한마디 한마디를 잊지 않으려고 엮어가며 기억했다

아버지가 가르켜 준 기억법이다

23) 삼팔선 (마지막청진)

 그 여름에는 작은딸 하나만 데리고 갔다

일본 놈 들은 원자탄에 항복을 하고 조선에서 사라졌다

일본의 잔재는 동족간의 의심과 적대감만 남았다

‘친일이냐 아니냐’ 도 중요하지만 우선 굶주리고

시달렸던 빼앗긴 땅들을 되찾고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고

살아야 한다는 게 우선이였다

조선사람 들은 예의가 바르고 순수한 인성은 변해있었다

스스로 놀랄 정도로 변질된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상대방도 그 변질을 이해하는 마음이 교차 된다

일본인들이 떠난 후 기차안은 좌익우익으로 더욱 살벌했다

송화는 일선에서 그들의 전쟁을 몸으로 느끼면서도

겁 없이 기차에 오르내렸다

기차에 역무원들도 바꾸어졌다

조금 큰 짐은 조선인 경찰이 풀어서 조사를 했다

기차는 시간과 상관없이 계속 연착이 계속되었다

해방이 되어 자유보다 더 무서운 동족이 되었다

청진 역 에 내리자  약초 짐꾼들이 짐을 풀지 못했다 

그리고 술렁거렸다

포목 집 여인은 포목을 가지고 얼른 값을 치룬다

‘녹두남편’은 송화에게 소련군이 밀고 백두산 아래로

내려 오고 있다고 했다

이미 기차선로가 끊어지고 길이 막혔다고 했다

얼른 아이를 데리고 ‘순천’으로 가라고 한다

송화는 잠시 생각했다

청진에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큰딸만 데려왔으면 청진에 눌러 살았을 것이다

송화는 녹두 부부는 와 인사를 했다

“따듯한 고향에서 잘살기요”

서로 뒤돌아 갔다

기차는 이미 쇠 덩어리 가 되어 서 있었다

역전은 역무원 도 없고 텅 비었다 매표소문도 막았다

아련하게 총소리가 들렀다 겁이 좀 났다

이제 기차는 움직이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딸을 업고 큰딸이 있는 순천으로 향했다

말 마차가 있으면 타기도 하고 날이 어두우면 남의 집

신세를 지었다

돈이 있어 든든한 것도 있지만 업은 딸 아기가 있어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없었다

시어머니가 큰 딸을 억지로 떼어서 데리고 갔다

이런 것이 운명일까 딸을 데리고 오지 않았기에

청진에 있을 수 없었다

청진에서 평양 쪽 으로 걸었다 차를 타기도 하고 

마차를 타기도 했다 

산천을 구경하며 걷고 걸었다 

낮 익은 지역들을 따라서 아래로 내려왔다  

거의 보름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총소리가 더 크고 가깝게 들렸다

거의 20일 걸려서 아이를 업고 순천에 도착했다

가을이 다 되었다

하얀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들이 논길을 따라

나들이 하는 모습이 편해 보인다

송화는 오직 녹두나물 키울 생각만 가득하다

전쟁 중 에도 남과 북이 갈라져도 먹여야 한다

내 동포들끼리 싸우는 것은 언젠가는 끝이 날것이다

일본 놈들만 사라진 조선은 천당이나 다름없다

짐승 취급을 받으며 죽이고 잡아가고 실종되어

온 조선이 몇 십년 동안 온 나라는 초상집 이였다

죽지 않은 댓가 는 큰 죄었다

거기에 겨우 살아난 여자들은 남의 집으로 시집가서

다른 가문과 마찰은 시집살이로 고통이다

그리고 아기가 생기면 입덧이라는 고통과 생리적인

것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남자들은 상상도 못하는

고통이 여인들에게 있다

젓이 나오지 않고 아기가 죽으면 다 여자탓이다

몸에서 흐르는 전류는 표현 할수 없는 고통이다

견뎌낸 여자들의 구조는 그것도 말로 펴보지 못한다

전쟁 중 에도 남녀는 아이를 낳는다

먹을 것이 없으니 젓이 나오지 않는다

아기 울움 에 애간장이 녹는다

아기와 여인의 몸의 통증은 때로 죽음으로 간다

그리고 생이 반복된다

평생 후련하지 않아서 찬물을 마신다 한이다

송화는 머리에는 한줄기 빛이 지나간다

24) 순천시장 (녹두나물)

시행착오가 몇 번 있었다

녹두를 물에 불리는 팔꿈치 온도를 맞추었다

청진에서 배운 대로 ‘녹두나물’ 에 온 정성을 다했다

빛 이 들어가지 않도록 검은 보자기로 옹기 동이를

덮어준다

시간을 정해놓고 하루 다섯 번씩 신선한 물을 내려준다

‘작은 알맹이 안에서 싹이 나오고 하얀 실 같은 줄기는

기적 같은 쑥쑥 올라온다

콩 껍질을 벗고 노랗게 싹이 터서 통통하게 자랐다

‘토굴 흙 담장 콩나물 방’ 은 불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검은 천을 덮어주어야 한다

녹두 한 되로 키운 분량이 옹기동이로 하나 가득하다

콩이 채소나물이 되는 과정이다

거기에는 물이 중요하다

물이 녹두 싹을 타고 아래 받침 동이 흘러 떨어진다

그녀만이 알 수 있는 건강한 물의 냄새이다

흙벽돌 움막에서 길러낸 숙주와 콩나물 은 구수했다

어느 음식에 넣어도 시원한 맛을 내는 재료였다

송화는‘청진댁’이라 불리웠다

친척들이 기르는 법을 배워갔다

새 집을 사고 콩나물 방도 다시 지었다

남편은 술만 취하면 청진에서 몇 놈하고 놀아났느냐

며 주사를 부린다

온 갓 욕과 험한 말로 송화를 괴롭힌다

남편과 싸워가며 아이들을 키웠다

남편에게 자전거 사주며 달랬다 

그리고 콩나물 배달을 시켰다

수금한 돈 절반은 술을 마셨다

술집 앞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몇 대를 잃어버렸다

콩나물 수금한 돈의 절반은 남편의 술값 이였다

불 담긴 ‘화로’를 던지고 콩나물 단지를 박살냈다

옛 어른들 말씀에 “사람은 절대로 고쳐서 못 쓴다”

라 는 말이 있다

송화는 ‘팔자’를 고칠 용기도 없고 이기지도 못하니

그 꼴을 봐 야 한다

송화 아버지 는 늘 말씀 하셨다

“‘일부종사’해야 고생을 덜 한다

자식 이 있으면 ‘제가(결혼) 가면 안된다

만약에 팔자를 고치면 인생누더기가 붙어서

기구해 지는 것이다

인생은 늘 고달프고 애가 타는 것이다

잘 견디고 살아내면 좋은날이 오는 것이다

집이라는 곳에는 꼭 엄마가 있어야 한다

송화 시어머니는 또 담배를 들고 호통을 쳤다

큰 손녀 딸 에게 청진에서 있었던 일을 캐물었다

그 당시 많은 남자들이 죽거나 행방불명이 되었다

건장한 남자들은 전쟁에 죽거나 강제 북송 후

아이가 여럿인 여인들은 생과부가 된 것이다

혹시 이북으로 넘어가서 간첩이 되어 오지 않을까

나라는 이중 삼중으로 남편이나 자식 잃은 과부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런 과부 앞에서 자기 남편 자랑하는 여자들이 꼭 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맞다

또 다른 과부는 아이를 고아원에 버렸다

오직했으랴 죽이지 않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자식을 굶기지 않으려고 노인의 첩이 되기도 했다

그냥 좀 도와주면 좋으련만 꼭 첩을 만들어서야 

그러나 친척이나 이웃은 없었다

참 야속한 것이 세상이다 

23) 송화 순천을 떠나다

시어머니 발길이 뜸하셨다

송화 남편이 ‘과부장가’를 갔다는 소문이 났다

‘노랑저고리’ 입은 여인이 시어머니 집에서 남편이랑

같이 산다고 했다

송화는 또 어떤 착한 여자가 속았을까 한심하다

자전거를 가져가 며칠을 오지 않더니만 !~

그 소문을 들은 후 송화는 이사를 준비했다

떠나고 싶었던 시댁을 버릴 기회 였다 

송화는 ‘묵 장수’ 에게

콩나물 기르던 기구들을 모두 팔았다

배가 만삭 이였다

송화는 ‘군산’을 늘 동경했었다

언젠가 빨간 구두를 신고 인형을 안고 있는 여자아이를

본 후로 순천보다는 군산이 아이들 기르기 좋은 곳이라 

늘 동경했다

순천을 벗어났다

군산으로 와서 크고 좋은 우물이 있는 집 세를 얻었다

일본 놈 들이 살던 나무로 지은 집 이였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산파가 아들이라며 탯줄을 끊어 주었다

아기 낳고 바로 방 한쪽에는 콩나물을 키웠다

송화는 청진 생각만 하면 기운이 났다

콩나물은 물이 좋아야 맛이 좋다

큰 우물이 있는 학교 터 였던 곳에 자리를 잡았다 

송화는 콩나물이 동이 숫자를 늘렸다

‘불량콩’ 을 가져다가 메주를 만드는 여인들이 도왔다

빈집이 나면 창고로 늘렸다

아기 기저귀나 흰 빨래가 뽀얗게 색을 냈다

우물이 있는 집은 군산‘개복동’학교였던 터 였다

군산 변방에서 하루 벌이 노동자들이 오밀조밀 살았다

우물은 암반에서 물이 솟아난다고 한다

두레박으로 퍼내면 싱싱한 물이 다시 고였다

하루 다섯 번 콩나물에 물을 내려야 하기에

송화의 주선으로 도르래를 달아서 물을 사용했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없으니 몸도 마음도 편안했다

조금 한가하면 장항‘서천’장날 에 맞추어 콩을 구입했다

촌부들이 지은 건강한 콩은 색을 보면 알았다

아들을 업고 콩과 녹두.를 사서 머리에 이고 다녔다

콩나물 창고를 흙 담 따로 지을 계획도 했다

약하던 딸 둘과 아들도 건강했다

작은딸 재영 이 가 열병으로 얼굴에 흉터가 생겼다

열이 내리지 않고 늘 병치레를 했다

어느 날 남편이 군산으로 찾아왔다

시어머니가 위독하다고 했다

젖먹이 아들과 딸들을 데려간다고 했다

송화는 작은딸이 입원치료 중이고 열이 나니

다음에 데려가라고 했다

‘홍역’이 번지고 있었다

아들이 예방주사 맞고 열이 있어 업고 있었다

남편은 송화가 업고 있는 아들을 흘끔 본다

남편은 큰 딸만 데리고 순천으로 갔다

큰애가 아이들을 잘 돌보아주었는데

학교 다니는 아이를 데려가다니 싸우기 싫어서

‘딸‘을 달랬다

아빠랑 같이 며칠 있으라고 달랬다

콩나물에 물을 주는 일을 거르면 잔뿌리 가 난다

잘 키운 청진댁 콩나물은 소문이 났다

군부대‘ 교도소’등 단체식당‘ 잔칫집’ 에서 주문을 한다

사람이 매일 콩나물을 동이로 사러 왔다

시어머니는 며칠 후 큰딸 재순과 오셨다

‘독한 년‘ 이라며 욕을 하며 담배를 꺼네며 들어오셨다

송화는 “아이들이 열이나니 방에서 담배피우지 마세요 !~”

라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담배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하루 이틀 순천으로 가시지 않았다

아이들을 돌보아 줄테니 돈을 달라고 하셨다

남편도 집일을 거든다면서 눌러앉았다

송화는 일손이 항상 부족했다

그래도 집에 아빠와 할머니 라는 사람이 있으니

남보다는 마음이 놓였다

‘노랑저고리’는 몇 달을 살다가 집을 나갔다고 했다

의지할곳 없었던  여인

그녀는 속절없는 세상 탓을 하며 울었을 것이다

시어머니는 가끔 노랑저고리 말을 꺼네었다

순하고. 솜씨가 좋고.예쁘고.하시며 송화의 속을 뒤집었다

딸의 죽음

작은 딸 재영이도 12살 되던 하늘나라로 갔다

송화는 난생 처음으로 그렇게 많이 울었다

콩나물 방 에 들어가 멀어져 간 딸 이름을 부르며

아기 때부터 등에 업고 객지로 끌고 다니던 딸이다

분신 같은 딸 아기 체온과 미소가 눈에 밟힌다

가슴을 후벼 목에서 피가 났다

병원입원도 시키고 살려보려고 무당 굿 도 했다

삶에 몸부림치는 엄마의 가슴에 안겨 까만 눈으로

웃음을 주던 딸 이였다

딸에게 사준 작은 미투리만 남겼다 

딸은 엄마의 희망 이였다

청진행 기차 안에서 엄마의 침으로 버무린 콩가루를

먹이면서 그 시대를 키웠다

꼭 대학을 보내고 좋은 옷도 사 입히는것은 당연했다

체온이 식은 딸은 안고 흔들며 불러도 딸은 눈을 뜨지 않았다

송화는 술을 한잔씩 하기도 했다

일을 하려고 허기진 배에 막걸리 한 사발을 부었다

청진의 국수국물이 생각났다

콩나물에 물을 수시로 주어야 했기에 옷은 젖어 있었다

힘이 빠지면 앉아 쉬면서 담배도 피웠다

담배 는 그녀에게 다시 힘을 주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하던 일 을 계속해야했다

눈 오는 겨울날 국밥에 막걸리 한잔 마시고 싶다

그러나 저녁  무렵 집으로 향한다

콩나물 동이를 두 개 겹쳐 머리에 이고 한 개는 한쪽 어깨에 끼고

한발 한발 버겁게 언덕을 넘어 온다

콩나물 동이를 수거해야 다음날 콩을 넣을 수 있다

술 고래 남편은 늘 믿을수 없어 원망 스럽기도 하다  


그녀는 자식들을 엄하게 키우는 편이였다

“돈벌이 할 것이 신작로에 널렸다”

가난은 벗으려고 해야지 벗어 진다“!

가난하게 사는 것은 인간 중에 가장 미련해서 그러는 거여“

‘똥장군’도 일거리가 생기면 감사하게 알고 해야지

똥통으로 들어가서 똥도 퍼내는 일이 가족을 위한 일인데

뭐가 더러워!~

열 식구들을 못 먹여 살리면 못난 사내다~

그래야 하늘도 감동해서 잘살게 해준다!

송화가 옛날 노인이 하던 이 말이 너무나 맘에 든다

청진댁 이 자손들에게 기준이 되는 말을 했다

일생의 유언이다

“징역(교도소)만 안가 면 된다”

“어떤 일이든 양보해라 형제고 남이고 싸우지 마라“

“나라에서 내놓으라는 땅과 세금은 즉시 내거라”

청진댁은 비교적 너그럽고 지혜롭다

글은 읽지 못하고 자기 이름 석자 겨우 쓴다

그녀는 늘 현명하게 아이들에게 납득시켰다

그녀의 후손은 3녀 4남을 두었다

그녀는 60에 뇌출혈로 쓰러지고 몇년을 앓았다

그녀가 세상을 뜬 다음날 

마을길이 온통 꽃길(화환) 이었다

그 자식들은 동내마당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술과 홍어국, 홍어무침, 조깃국,등을 삼일동안 대접했다

군산 서해바다가 보이는 곳에 묻혔다

25)여자들의 성(은숙엄마)

전쟁 후 모든 조선인은 섞여 있었다

고향을 떠나온 피난민들은 통일되면 고향으로 간다면서

본토 사람들과 잘 섞여지지 않았다

같이 학교를 다니는 친구 들고 색이 달랐다

교육열이 높은 사람들은 자식들을 가르켰다

그리고 온갖 희생을 다했다

난민들이 장사를 하며 억척 같이 살았다

생활력 강한 남자들은 참새 덧을 놓고 폭약으로 참새를

잡아서 포장마차에는 번데기, 참새, 개구리, 등을

구워서 팔았다

송사리며 미꾸라지 강물에서 목숨을 잃기도 했다

메뚜기, 개구리, 뱀 ,등을 잡아먹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한집에 아홉 열 명씩 태어났다

골목에는 아이들 소리로 시끌 거렸다

아이들을 영양실조로 몸에 부스럼이 많이 났다

소금국에 풀떼기 죽 이라도 먹이려는

부모들은 들로 산으로 공장으로 일을 다녔다

바닷가 뻘 일은 수입이 좋다

그러나 어린것들 때문에 종일 뻘 밭 으로 나가지 못해서

몸을 파는 여자들도 있었다

전쟁이 휩쓸린 상처가 가장이 된 여자들의 몫이 되었다

마차짐꾼 들이 다니는 길목에서 성욕을 채워주고 양식을

얻었다

산 아래 숲 근처에서 여인들이 숨어 있다가 단골

말 마차(리어카)지나가면 치마를 슬쩍 올리며 신호를 한다

밀가루나 보리 한 되 가량의 화대를 받는다

홀아비나 ‘마꾼’들의 소문은 금방 소문이 퍼졌다

길거리에 여자들도 점점 늘어났다

‘마부’들 지나는 비탈길에서 치마를 들어 올린다


김 마부 는 비탈길에서 단골 과부가 있었다

가슴 큰 그 과부는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았다

밀가루 한포대를 받고 다른 마부의 정부가 되었다

그 여인들은 서로 섞여 싸우기도 했다

굶주리는 아이가 있는 어미들은 점점 억세 지고

수치는 그다음이고 그날그날 아이들과 죽이지 않으려고

삶은 극을 달렸다

어떤 과부는 늙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산다

시부모에게 끼니를 거르게 하는 것이 자식을 굶기는 것보다

더 괴로웠다

그 여인은 가장이 되어 보리와 밀가루를 얻었다

뻘 밭에 나가 해산물을 팔아 시부모를 공양했다

36년 그리고 이념의 6,25 전쟁 중 에도 여인들은

임신과 출산은 계속되었다

병든 남편을 간병하면서도 아이들은 생겨났다

헐벗어도 여자들의 배는 늘 불러 있었다


나라의 장정들과 친일들과 하나로 뭉치자고 했다

정치 지도자들은 벽보를 붙이고 술집에서는 늘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너 같은놈이 감히 양심이 있냐 없냐”

음식은 나누어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이념으로 각인된 배신과 친일을 덧입힌 후손들은

오래 오래 잘 섞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세월에 씻기면서  잘 먹고 잘살았다

잘 배우고. 유학가고. 잘사는. 것에 복 없는 신세로

씁쓸한 서운함으로 묻어 굳히며 늙어간다

원수가 잘사는 것을 이해 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정치의 리더가 되는 것은 결사 반대였다

그러나 돈으로 하는 일은 뭐든 안되는게 없었다

그들이 가는 길은 오직 권력과 정치를 쥐려한다

은숙이 엄마는 마꾼들을 상대하다가 임신이 된 것을 알고

낙태하려고 독한 약을 먹었다

오남매를 남겨 두고 뱃속의 아이와 숨을 거두었다

시어머니가 손자 들을 키우셨다

은숙 이내 오빠 는 장손 이였다

할머니가 손에서 자라면서 종손 몫을 해야 한다며

‘장손장손’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은숙 작은아버지는 그 집을 팔고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작은집에서 그 형제 다섯은 헤어졌다

아래 어린 아이 둘은 양자로 보냈다

은숙이 와 동생 둘은 작은집에 살고 있었다

구박과 설음을 겪다가 ‘종손’은 작은집을 나왔다

‘종손’은 주방 일하며 흩어진 동생들을 모두 데려왔다

거기서 은숙 종손은 동생들과 같이 처음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의 제사를 드렸다

방이 작아서 상을 차려놓고 절을 할 공간이 없었다

무릎을 굽히고 머리만 숙였다

종손은 가슴에 벅찬 절을 드렸다

절을 하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저 ‘종손’입니다 절 받으세요”


비열한 동물 중 최고는 인간이다

시기와 질투로 동족과 사람을 죽인다

‘흉’과 간교함은 대를 물려 흉거리 가 끈질기다

지독한 식민지와 전쟁을 벗어나 만세를 불렀다

모든 국민의 개인들의 머리에 각인된 생각은 

언젠가 방위처럼 나온다 

흉과 비열함은 서로 하등급 시킨다

그것이 인간이다

모진세월 삶이 조금씩 안정이 되어갔다

인간은 우선 먹어야 정신이 돌아온다

효자자식으로 키우겠다고 기르는 여자는 없다

부모는 자식이 늘 안쓰럽고 측은하다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어미가 자식을 굶기는 것이다

어떤 여인은 아이들을 네 명을 데리고 후처로 갔다

그집은 아내 없다고 했다 

자식들 굶는 것이 너무 가여워서 자청했다

그 시어머니는 며칠 만 에 그녀를 쫓아냈다

그 집 남자가 그녀에게 아이들과 함께 평생 책임을 지겠다

아내가 되어 달라고 사정했었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아이들 너무 먹어서 살림이 거덜 낼

것이라며 아이들과 그녀를 내 쫓았다

그 남자는 말리지 않았다

며칠 밤 그놈에게 당한 놀이개감 이 된 듯 분했다

그래도 며칠은 새끼들을 먹일 수 있었다

그리고 울지 않고 아이들이 잘 잤었다

용남 엄마는 자식이 아홉 이였다

남편이 전쟁때 실종 된지 10년이다 그런데 

막내가 일곱 살 이다

소득이 생긴다면 남자를 상대 했다

그녀만의 방법으로

아홉을 가진 여인의 시간에 세상을 헤쳐 나갔다

굶고 있는 어린 자식들과 큰아이 ‘기성회비’를 내야 했다

그날도 ‘일수쟁이’ 남자를 피해서 골목으로 오고 있었다

얼른 갚으려 했지만 빚이 눈덩이 같았다

몇 번 치마를 걷었지만 그놈 일수쟁이는 그녀를

이중으로 괴롭혔다

그런데 골목길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누가 어린 간난 아이를 버렸다

구경꾼 들은 고아원으로 데려가야 한다고 했다

그녀의 자식도 여덟인데도 강보에 싸인 용남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 당시 34세 였다

아이를 버릴 때 그 사람의 마음은 오죽 했으랴

아가야! 옴마나 세상에나!~

하면서 아이를 끌어안았다

‘일수쟁이’를 피한길이 하늘이 뜻이있다면서

형제처럼 잘 보살피자고 자기 자식들에게 말했다

그 아이 이름을 ‘용남’이라고 지었다

용남이 는 소아마비였다 허

약하고 금방 죽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의형제안에서 아이는 살아났다

언젠가 그 친 어미가 찾아 올 것이다

하며 자기 자식들 틈에서 같이 사랑을 먹이고 키웠다

그녀는 늘 돈을 벌러 시장과 거리를 누비며 살았다

닥치는대로 허드렛일을 하며 자식을 키웠다

용남이 잔병치레를 많이해서 허약하지만 

공부도 잘하고 명랑했다

좀 크더니 절룩이면서 공사판 심부름도 하고

못을 줍고 못을 펴고 연장을 정리하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용남이 는 철물점을 차렸다

친구들은 모두 군인으로 대학으로 마을을 떠났다

군인을 가지 못하니 어머니 곁에 있었다

그는 그 집 형제 모두를 부자로 만들었다

용남이 는 그 집안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형들이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도 주었다

용남이의 친부모는 평생 그를 찾지 않았다


26) 금의 환향 (보길도 넙도) 1975

명절이면 섬마을 학교에 특별한 제사를 드린다

바람이 불기만 하면 학교를 결석한다

부모를 도와가며 험한 물길을 오가며 공부를 하던 못난이

청년은 명문대를 졸업했다

정신이 조금 이상한 어머니와 매일 화만 내는 아버지

그런 부모와 바다만이 청년의 학창 시절 이였다

그 청년이 한국의 대표회사 에 취직이 되었다

동네 못난이청년의 출세는 마을에 자랑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부모님은 빨리 돌아가셨다

한이 가슴에 맺혔다

명절이면 늘 부모님 사셨던 곳에 다녀 간다

곱게 차려입고 배를 타고 뱃전에 나와 있다

부두에 나오시던 어머니,그 자리에 눈이 간다

섬마을 이 보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혈육들이 살던곳 ‘금의환향’ 이다

선물을 풀어놓고 어르신들을 초대한다

출세한 친구들 이름을 달고 ‘프랭카드’가 휘날린다

“언젯적 건데” 그는 픽 웃는다

부모님 발자국 이 남겨져 있는 곳 이다

마을 아낙들은 힘을 모아 합동제사를 준비해 준다

초등학교 교단에 차례 상 앞에 자기 부모님의 성함이

쓰인 곳에 모여 서서 합동으로 절을 한다

그리고 사당들과 섬을 돌며 ‘성묘’를 했다

남사 당 패들이 고깔 모자를 쓰고 돌며

마을의 악귀를 몰아 낸다

아프고 병든 사람들도 모두 나와서 동참 한다

바람과 안전을 위한 풍어를 기원하는 잔치는

초사흘 날 다시 이어진다

27) 대장장이 후손( 순천 1940~)

‘덕순’ 아버지는 순천 시장 안에서‘대장장이’였다

술에 취하면 늘 하는 말이 있다

자기 혈통은 이순신 장군님 곁에서 나라에 공을 세운

충신 집안 이라며 선조를 자랑했다

임진왜란 때 칼과 창을 만들어 이순신 장군님과 다니면서

많은 무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께 친히 공헌자로 ‘상’과 칭찬을 했다며

자랑이였다

전쟁 중에도 몇 대가 걸쳐온 그자리에서 농기구를 만들었다

소문난 대장간이다 

일부러 부엌칼을 사러 먼곳에서도 온다

그러나 술에 취하면 문제가 많다

여수 진남관 을 지을때. 선소. 세검정 에서 일을 했고

이순신님을 따라다니며 ‘거북선’과 ‘판옥선’을 정비하고

‘철갑’ 과 ‘노’ ‘고정고리’등을 제조했다고 자랑 이였다

쇠를 녹이고 무기를 제조한 조상이 남긴 설계도가 있었다

이 순신장군 의 친필 상장이 있다고 늘 자랑하였다

일제시대 누구나 도망 다니면서 목숨을 지켰다

‘이 순신 장군’ 후손 이라는 소문을 들은 일본 놈들이

대장간을 수색하고 ‘고만석’이는 일본으로 끌고갔다

텅 빈 대장간을

이웃 ‘아제’ 가 대장간 대신 맡아서 운영 했다

그 ‘아제’는 눈 너머로 배운 기술로 좋은 쇠를 들여와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리뽄또’를 만들어 돈을 벌었다

‘고덕순’ 아버지 ‘만석’ 이는 일본으로 끌려가면서

아내에게 딸들과 ‘군산’으로 가서 살고 있으라고 일렀다

‘만석’이는 꼭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했다

‘덕순과 다복이’ 엄마의 뱃속에 ‘유리’ 가 있었다

엄마는 술에 취해 늘 울면서 팔자를 한탄을 한다

“그놈의 술 이 원수여!~ 이 순신예기만 안했어도 흑~

술자리에서 꼭 그 예기 를 꺼내니!

그런 멍청하고 무식한 인간 일본놈 원수인 이순신

자랑을 하다니 미련하고 흐 흑~

“바보 천치 같은 인간 흐흑”

나 혼자 내 새끼들은 어찌 살라고~ 어찌 살어~흐흐

다 자기 맘처럼 착한 줄 알고 흐흐흐!~

아내는 남편을 고자질한 사람을 안다

대장간을 오가던 사람들중 늘 이것저것 묻곤했다

짐직한 그 사람이 노리고 있다가 대장간을 헐값으로 샀다

덕순 아버지가 애지중지 간직했던 것들이다

덕순과 다복이

덕순은 엄마는 어린 딸들과 군산으로 왔다

덕순 엄마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다꽝’집에서 일했다

그리고 6.25도 지났다

군산에는 소라산업이라는 정종과 소주공장이 있었다

공장과 연결된 다꽝.과 .나나스키. 공장이 있었다

술 정종을 걸러낸 찌거기 는 양분이 많다

‘울외’ 를 소금과 같이 담가 놓으면 쌀 찌기에

남은 양분을 흡수하여 장아찌가 된다

‘울외’에 간이 들면 연한 갈색이 되어 쪼글쪼글 맛이 깊다

요정이나 고급 요리집 에서 내어 놓는 반찬이다

덕순 은 동생 유리를 늘 업고 다녔다.

덕순 은 엄마가 일하러 가면 종일 동생들을 돌보았다

그러나 덕순이 볼 때 엄마가 임신을 한 것 같다

배가 불러오고 있었다

덕순 은 엄마가 걱정되었다

엄마는 어느 날 덕순 등에 있는 유리를 빼앗듯 업고

아빠를 찾아오겠다며 집을 나가셨다

덕순 과 다복은 갑자기 고아가 되었다.

책욕심 많은 서점

해방도 6/25도 끝이났다

덕순 은 처음에는 고서적 책방에서 책 정리를 했었다

책 욕심 많은 서점 주인은 책을 지개에 지고 와서 서점에

쏟아놓았다

그렇게 놓인 어수선한 책들을 시키는 데로 정리 했다

덕순은 많은 책을 접할 수 있었다

순하고 착한 덕순 은 15살이 되었다

술 취해 우는 엄마 없고 동생유리도 없으니 덕순은 

책을 많이 읽었다

모르는 글은 책방주인에게 물었다 

엄마는 아빠를 찾으러 가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아빠는 꼭 오실 것 같다

덕순 은 늘 엄마가 걱정되었다

서점주인은 책 욕심이 많았다

모르는 한문이나 글의 뜻은 서점 주인에게 물었다

무뚝뚝한 주인은 지게를 지고 종일 책을 찾아 다녔다

덕순은 종일 서점에 있는 게 일과였다

동네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이야기 꺼리를 많이 만들어 동네 아이들과 동생에게

들려주고는 했다

동생 ‘다복’은 자라면서 인물이 눈에 띄게 고왔다

언니 덕순 과 는 성격도 달랐다

가난과 고아지만 인물이 그걸 뛰어넘었다

모두가 한번 더 쳐다보고 지나 간다

‘유리’도 예쁜 아기라고 소문이 났었다

동네에서 예쁜 아이네 집이라는 소문이 났다

‘다복’이를 동네사람들은 예쁜아!~ 라고 불렀다

덕순 과 다복이는 이웃을 의지하며 바로 옆집

대포집 아주머니가 엄마처럼 챙겼다

서점에서 번 돈으로 살림에 보태었지만

바로 술집 아주머니 일도 도와드렸다

집 사정을 잘 알기에 두 자매를 잘 살펴주었다

야채를 다듬고 설거지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하고 다복이랑 밥을 얻어먹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봄날 ‘방정환’선생님이 정한 어린이 날이다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라는 프렌카드 가 학교 걸려 있다

그런데 어린이날 다복이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며 5학년

가방을 버렸다

“어린이가 나라의 보배라고? 어른들은 다 거짓말 쟁이야!~

그리고는 입에 담지 못할 쌍 욕을 선생에게 했다

그리고 학교를 폭파 하겠다며 사나워 졌다

돈을 모아서 폭탄을 사겠다며 계획을 세웠다

군인이 지나가면 “혹시 폭탄 만들줄 알아요”?

하며 오직 폭탄에 집중되었다

덕순 은 다복을 감당할 수 없었다

다복이는 거친 남자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했지만

부모님은 학교를 그만둔 다복이랑 노는 것을 반대했다 

왕따가 되었다

그 이유는 학교에서 예쁜 어린이 선발을 했는데

다복이가 가장 예쁜 어린이로 뽑혔다

전주에서 열리는 ‘어린이잔치’에 참가하는 대표였다

전국에 모인 아이들과 같이 하는 잔치였다

그리고 방송국 구경도 하러 가는 것이다

다복이가 그 ‘예쁜 어린이’ 대표 모델이 된 것이다

그런데 전주방송국 까지 가려면 부모님이 동행해야 했다

참가비등 학교에서 지불하는 것은 고사하고도 개인에게

들어갈 돈이 많았다

새 옷과 구두도 사야했다

학교 측 에서는 여러 가지 논의 끝에

두 번째로 당선된 ‘천희’ 가 대신 전주로 갔다

천희 는 ‘전주방송국’으로 가서 상을 많이 받아왔다

TV에도 나왔다

천희 는 학교의 자랑꺼리였다

예쁜 필통과 색연필 크레파스 친구들이 만져보고 

몹시 부러웠다

천희를 보러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다복은 완전 밀려났다

꽤 죄죄 한 다복이는 자신의 모든게 싫었다

그런 상황을 이해는 하지만 분하기도 억울하기도 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천희 가 상 을 받고 방송국에서 본 이야깃거리를 하며

그 말을 들으려고 아이들에 둘러 쌓여있었다


다복이는 너무나 분통터지고 억울하였다

친구들도 다복이가 일등인 것을 다 알 터 인데

다복 를 가난한 집 아이로 외면당했다

서러웠다

그저 죽고만 싶었다

언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이불을 쓰고 울었다

다복이는 이제 학교가 싫었다

그리고 돌을 집어서 학교 담벼락에 매일 던졌다

그래도 답답한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기어코 가방을 버리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입을 꾹 닫고 동네 어른들을 에게 인사도 안했다

엄마를 찾아 나설까 도 생각했다

그러나 언니가 혼자 남겨질 생각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불을 쓰고 며칠을 누워 먹지도 않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학교를 폭파 하는 것이 목표 었다

그러나 그녀가 만들려는 ‘성냥폭탄’제조도 만만치 않았다

긴 유서도 써 놓았다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은 그녀의 표현이였다

그 후 로 

다복이는 자기를 놀리고 지나가는 남자애들도 때렸다

남자애 부모들이 집을 찾아와서 다복이의 뺨을 대신

때리고 갔다

어른이 후려친 다복이 뺨의 손자국 은 오래 남았다

덕순 은 다복을 얼굴을 만지며 눈물을 흘리며 달랬다

낡은 가방은 5학년 책으로 머물러 있었다


군산 성당 성모자상 앞

덕순 은 들꽃이나 나무십자가를 성모 발아래 놓는다

덕순 은 성당 마당 성모상 앞에 두 손을 모았다

돈이 생기면 꼭 헌금하겠다고 성모님께 약속 했다

“은총의 성모님 저예요!~

성모님 내 동생 다복이 요

원래는 착하고 이쁘고 노래도 잘하고 똑똑한데

지금 학교를 몇 달 을 안가고 깡패처럼~

예쁜 어린이 로 방송에 못가고 나서 후!~ 훌쩍

학교에 불을 지르겠다며 흐흑

제발 불을 지르지 않게 해주세요 흐흑

그리고 선생과 학교에 쌍욕 좀 안하게 해 주세요

원래 착했던 그 맘으로 되돌려 주세요

착하신 성모님 기도 합니다

아멘“!

덕순 의 얼굴에서 뚝뚝 눈물 이 흐른다

기도 부탁드린 것이 너무 많아서 성모님도

귀찮으실 것 같다

들꽃 몇가지 로 부탁하는 것이 편치 않다

맘 편하게 기도도 못 드린다

그러나 성모님 아니면 어디에 하소연 할 곳이 없다

성모님은 덕순 을 가엽게 내려 다 보신다

덕순 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다복이는 어릴 때부터 춤도 잘 추고 용감했다

동네 오빠들이 부르던 팝송을 따라 부르고

팝송 ‘딜라일라’를 원어로 하면서 학교에서도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엄마가 없으니 고아나 다름없다

덕순 은 엄마가 다니던 반찬공장을 지나오며 또 울었다


다복이는 엄마가 떠나던 신작로를 바라보며 중얼중얼

거렸다

“약속도 안 지키고씨!~ 언제 온다는거야”!~

다 재수 없어 오든지 말든지!!~

어른들은 다 이상해 약속을 안 지키켜 이상해 씨~

혼자 중얼중얼 거리며 외톨이가 되었다

다복이의 점쾌

학교를 그만 둔지도 몇 년 친구들은 중학교이 되었다

다복이는 여자깡패 로 소문이 났다

남자애들도 그 길을 피해 다녔다

학생들만 보면 멀리서 돌을 던지고 숨었다

하는 일이 없으니 집 흙 담을 발로차서 헐었다

그 담벼락에 매일 돌을 던지고 무너지면

다시 흙에 물을 발라 담을 메꾸었다

덕순 키가 부쩍 커가는 다복을 말릴 힘도 없다

덕순 도 꿈이 있다 서점주인이 되는 것 이였다

그 기도 는 성모님께 감히 드리지도 못했다

덕순 은 다복에게 ‘화투’ 한목을 사주었다

다복은 너무 좋아했다

대포 집 아주머니에게 화투점보는 법을 배웠다

그 후 다복이는 화투에 빠져 담에 돌을 던지지 않았다

화투놀이 저속어를 배워서 쌍말을 하며 방석을 오가며

혼자 자작극을 하느라고 종일 중얼거렸다

(영감 죽고 첨 이네,이런 싹 바가지 확 삶아 먹어 버릴 까~!

달밤에 산뽀 를 가서 님 을 만나서 얼레리 꼴레리 뭔 짓을 혔을까!~ 국수를 먹는데 비가 와서 재수 옴 붙었네!~ 등)

저속어에 쌍욕에 액션까지 곁들였다

착한여자가 되기는 이미 틀린 것 같다

덕순 이 다복에게 못된 말이나 욕을 하면 화투를 버린다고 했다

덕순이 부록으로 가져온 월간 책 은 뒷전 이였다

윗목으로 밀어버렸다

화투 목 몇 개 샀다 그녀만의 맞추기 놀이를 했다

화투를 방석에 딱딱 내려치며 무엇인가 원하는 게 맞으면

환희의 괴성도 지르고 시끄러웠다

덕순 은 서점일 을 마치고 오는 길에 가끔 고구마를 사온다

덕순이 동생에게 고구마를 쪄서 소쿠리에 담아 주면 늘

“헛 따 뭔 일여 영감죽고 첨일 이네

해가 서쪽에서 뜨것네 이!~

몇 년 만(어제 먹었어도) 에 맞을 보는겨!~“

하며 고구마 소쿠리를 땅겨 가지고 문을 꽝 닫는다


어느 날 다복이가 커가면서 조금 잠잠해진다

이유가 있었다

덕순 은 다복에게 단단 히 일렀다

불을 지르거나 남에게 해코지 해서

그 일로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을 경우에는

언니와 너는 헤어지고 영영 이별이라고 했다

‘교도소 감방’에 갇혀 얼굴도 못보고 만약에 아빠엄마

유리가 찾아오면 식구들 모두가 ‘채포’ 된다고 했다

나쁜 짓을 하면 결과는 엄마 아빠가 돌아오시면

만날 수 없다고 했다

다복이는 조금 마음을 누그러졌다-

그 후 로는 잠잠해 지고 애들에게 돌을 던지지 않았다


15세 다복이

어느 날 다복이는 ‘시집’(결혼)을 가겠다고 했다

‘부잣집’이라고 한다

만약에 자기를 속이면 그 집도 중매쟁이 도 모두 폭파 한다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단단히 일렀 단다


다복이는 언니에게 요즘은 어쩐지 매일 ‘화투점’이 딱딱 잘

 나온다며 신 의 계시라 했다

시집가서 잘 먹고 잘 살 거라고 겁 없이 큰소리다

시집가서 매일 어묵탕 과 어묵볶음 을 먹고 살거라 했다

흙집에서 벌레들과 살기 싫다면서 허락해 달라고 한다

덕순에게 잘살겠다며 보내달라고 졸랐다

말도 안 되는 짓이다

좀 철이 드나 싶더니 뜬금없는 시집 예기로 덕순을

심란하게 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다복이는 화투만 가지고 논다

화투 여러 목 을 가지고 개임을 한다

덕순 의 머리꼭지에 앉아서 협박까지 한다

다방에 취직 할 거라고 했다

언젠가 ‘영화동’(미국군인들이 다니는길)을 지나가는데

다방 언니가 같이 일하자고 했다고 한다

심심 하면 언제든지 다방에 놀러 오라고 했다고 한다


덕순 은 성모님 앞에 앉았다

“성모님 저예요!~

동생을 말릴 수 없어서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겠어요 흐흐”

다복은 포기 하지 않았다

덕순만 보면 시집을 가서 좋은 집을 지어주겠다고 했다

덕순은 시집은 18세가 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언니는18세 인데 왜 시집을 안 갔느냐며 빨리

시집이나 가버리 라고 덕순 속을 뒤집었다

15살이면 알건 다 안다면서 자기만 믿으라고 한다

옛날에는 더 어린 나이에 다 시집을 갔다며 예를 든다


화투만 가지고 노는 다복이가 집을 나가서 다방이나

다른곳으로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덕순은 늘 불안 이다

성모님은 말이 없으시다

시집을 간다고 해도 그 집 골칫거리가 될 것이 뻔하다

매일 먹기만 하고 빈둥거리는 동생이 어느틈에

언니인 덕순 보다 덩치가 더 크고 키도 컸다

다복의 설득은 매일 반복 되었다

덕순 에게 냄새 고약한 서점에서 고생하지 말고

자기를 부잣집으로 시집보내라고 한다

덕순 도 이제 지쳤다


흙담집의 함석대문의 기적

중매 아주머니가 요란하게 웃으며 녹이슨 함석 대문을

 요란하게 두두리며 열고 들어선다

“언니 집에 있는가 !~

뒤따라 젊은 남자가 꽃과 선물을 들고 들어선다

“안녕하세요 저는 다복씨 친구 입니다!~


다복이는 방에서 화투를 높이 들어 능숙하게 고르다

남자 의 목소리에 손을 멈춘다

“드이어 올 것이 왔구나”

내 점쾌 가 신의 계시라니깐 아 !!~

하며 화투를 쎄 게 내리 친다

그의 나이 16세 에 결혼 한다


28) 군산서점 (5년 후)

서점 앞에 사람들이 북적 인다

덕순 은 서점 안 에서 아기를 안고 있다

노오란 수입 유모차(그 당시)에 간난 아이가 자고 있다

엄마는 보랏빛 벨벳 홈 웨어 를 입었다

긴 ‘지라시 퍼머’(켄디머리) 를 한 켄디가 바로

다복이다

다복이는 정말 부잣집으로 시집을 갔다

덕순 언니 의 소원인 서점도 차려 주었다

군산서점 앞에 신간 들이 들어오고

다른 책을 찾는 사람들이 북적 댄다

다복이 그리워하던 엄마 아빠와 전화로 만났다

엄마 서울에서 유리와 배안에 있던 여동생을 키우며

다시 재혼을 했다고 한다

아빠도 일본에 가정을 꾸렸다는 소식을 전화로 들었다

얽히고 메어 조선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존경을 받는 칼 장인이 되었다고 한다

다복은 정말 부잣집 으로 시집을 가서 남매를 낳았다

언니 서점에 와서 ‘신간’을 가장 먼저 사서 본다

그 안에서 덕순은 아이 들과 행복한 이모가 되었다

좋아하는 책들 속에서 책 박사가 되어 매일 행복하다

‘성모님’은 덕순 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셨다

덕순 하루 종일 책속에 파묻혀 늙어간다

고서들을 보관하고 분리하고 정리하는 일에 덕순은 일생을

보냈다

식민지 로 굶주리고 분단을 겪으며 사라져 갈 유산들이다

모두 소중한 것들이다

그 문서들도 집을 잃어 버려지거나 타버린 가문의 족보나

가보였다

그것들은 늘 덕순 에게 늘 말을 건다

일본제국주의 때 책들을 살려내어 보관도 한다

허위 날조 된 책들과 문서들도 다 식별하여 소중하게 년도

별로 정리 한다

일본서적들이나 문서들을 찾는 분들이 있다

그는 고서에 묻혀서 달인이 되었다

서울로 동대문을 다니며 낡고 귀한 책 을 사기도 하고

진주나 부산으로 고서적이나 책을 사러 가기도 한다

일본놈 들이 짖밟은 것들도 소중히 관리한다

그리고 찾는 분들에게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

어느 날 아버지의 자랑에 그래서 일본으로 끌려간

‘이순신’ 장군의 ‘친필’을 발견해서 만나기도 했다

그는 그 글 앞 에 눈물이 났다

지금 살아가는 것이 그분이 남겨준 유산이라니

이분이 덕순 집안을 풍비박산을 내신분이라니

덕수 이씨 집안이라고 큰딸을 덕순 이라고 지었나

혼자 생각이다

삶의 생각은 고정되지 않는다

삶에 부댓끼면서 깨달아 가는 나날들이 계속 이어진다

진주 에 가면 생각이 바뀌고 부산에 가면 또 바뀐다

덕순은 늘 글과 이야기 한다

몇 백년 이 지났는데도 이순신 장군의 글이 말을 건다

애통터져 피를 토한 이순신의 글을 보며 삶은 이렇게

아리고 쓰리고 시린 것이 였다 는 것을 알았다

시시 때때로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은 계절마다 바뀐다

글로 적는 것만이 흔적이 된다

덕순은 아버지가 자랑했던 몇 가지를 글로

남겼더라면 온 집 식구들이 흩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이 그립다

늙을수록 더 그립다 

씁슬한 미소를 지어본다

군산 시장 근처 양지바른 서점 앞에 하얀 머리 덕순이 유리창

앞에 안경을 쓰고 앉아있다

그리고 다복은 폭파도 불도 지르지 않았다

시장 저편에 그가 폭파하지 않은 학교가 있다

성모님은 덕순 의 기도를 다 들으셨다

29) 1960년 알박기 집안 며느리

도시가 재건되고 거리는 신작로가 넓게 공사를 했다

대통령은 고속도로 가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든다는

특별담화문을 국민에게 내 보냈다

온 국민들 에게 약속하며 호소 했다

하루하루 가 달라졌다

건설로 산업화로 일자리가 많아졌다

오랫동안 묵은 집 들이 헐렸다

도시계획으로 땅은 대토를 받아서 이사를 해야 했다

전쟁 상흔과 일제 잔재 들이 베어있는 삶들을 회복하는

세대였다

그리고 6,25를 겪었다

의심과 적개심으로 전쟁 같은 정치싸움이 잦았다

국민은 누구 말이 옳은지 분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 학교 보내고 키우는 것이 우선 이였다

모두 사람 들의 몰골은 꼴이 아니었다


삼팔선으로 생이별을 한 부부나 고아들 몫은 오롯이

고생으로 남겨졌다

식민지 동족전쟁의 상흔으로 짓밟힌 삶은 넝마 가

되어버렸다

이념으로 또 한번 의 모진 정치와 젊은이들의 굽힐 줄

모르는 배움으로 인한 올바른 것들은 모두 맞아죽거나

대모로 끌려가고 심한 고문에 시달렸다

이새대 의 세파에 자식 잃은 부모 들은 치를 떨린다

일본 놈 없는 세상에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본다

그래도 독립자유국가 가 된 후 로 허리를 폈다

얼굴을 하늘에 올려 숨을 쉴 수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 옥수수 가루 배급이나 구호물품

들이 들어와서 빵과 우유를 먹었다

격동기 살았던 모진고통은 하나씩 둘씩 세월이라는

무심한 물에 씻겨갔다


고속도로가 서울부산 왕복 하루길이 되었다

서울부산을 몇 시간 내에 갈수 있다고 한다

새마을 대통령님은 문명국이 되자고 한다

매년 유공자들에게 포상을 하고 장애를 입은 자들에게

특혜도 주었다

학생들에게 아버지나 오빠가 나라위해 죽은 자들에게는

회비를 면제 해 주었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대학까지 면제라며 아이들의 사기를

돋우어 주었다

산업화 하여 이웃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말씀이 라디오에서 말씀이 들린다

달구지들이 다니며 소 말똥들이 즐비하던 거리에

진흙먼지 자욱하던 길에 아스팔트가 깔렸다

마을마다 넓은 길이 생겼다

 집집마다 수도가 들어오고 백열등에서 형광등이

밤을 밝혀주었다

시골도 배우려는 통학생들로 새벽기차는 만원이다

거리가 새까맣게 교복학생들이 많아졌다

아내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산다는

흙 신작로에 아스팔트가 깔렸다

개울에서 빨래하던 사람들이 수돗물이 들어왔다

매일 아침마다 공중화장실 에 줄을 서던 남녀노소 들이

단독으로 집을 짓고 대문을 달았다

아스팔트길 위로 학생들이 까맣게 다녔다


정부공사는 도로건설계획으로 주민의 땅이 국유지로

들어갔을 경우에 대토나 땅값을 타협을 해야 한다

‘잡화상’ 하던 박씨 땅이 도시계획으로 들어갔다

박씨 는 터무니없는 돈을 요구했다

‘잡화상’은 고무신,바늘,학용품 까지 파는 

만물상 이였다


도시계획 팀 은 그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다시 설계를 하여 산을 뚫어 길을 내야 했다

인프라 변경으로 몇 배 힘을 더 들었다

하지만 나라는 법과 판례가 있기 때문에 그랬다

잡화점은 그곳에서 아들 장가를 들였다

새 며느리는 신식교육을 받은 직장여성 이였다

그녀가 들어온 후로 모든 것이 똑똑한 며느리 손에 들어갔다

 그녀의 논리는 박씨 영감보다 더 강했다

 남편은 그 여인 의 뒤만 따라다녔다

군산 시청에서는 그들 가족들은 유명했다

외톨이가 된 집에 수도와 전기를 단독으로 끌어달라고

매일 시청에 민주국민 한사람 의 주권을 주장했다

민주주의는 한 가족과 나라우선에 맞붙었다


두 세대가 지나갔다

눈비가 와도 천막을 치고 집을 수리하지 못한다

 김장철에는 이웃이 다 떠나고 혼자 남아 물을 길어다가

 김장을 했다


백화점과 마트 깨끗한 상점들과 쇼핑몰이 생겼다

건축 회사는 ‘알박이’ 주변을 시멘트로 둘러쌓았다

그 집 며느리가 일본 놈 씨라는 말이 떠돌았다

시청직원들은 일본 놈들 은 나라에서 시키는 일은

목숨도 내어놓는 족속들이라고 했다


그 당시 시청 청년이 였던 건축과 직원은 정년퇴직한 후에

그 성씨들과는 혼인도 시키지 말고 술자리도 하지 말라는

일화를 남겼다

그 직원은 제직당시 ‘알박이’ 집안을 평생 지켜보았다


잡화상 시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시청에서 화환을 보냈다

며느리도 70이 넘었다

그 천막에서 더는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천막 앞에 우편물만 쌓였다


그 집 손녀딸들이 커서 공무원이 되었다

헐값이라도 팔려고 했지만 법적인 문제와 집계후손들이

 많아져 더욱 복잡해 졌다

얽히고 설킨 세월의 벌금까지 눈덩이 같이 붙어 있었다

세월이 이제 5세대가 태어났다

잡화상 앞뒤로 건물과 아파트가 들어서 몇 번이 바뀌었다

50년이 넘은 지금은 집터가 쓰레기장이 되었다

그 집 조상들이 사용하던 장독대와 기둥들은 땅 아래로

주저앉아 흉물이 되어 있다

그 좋은 땅과 복떵어리 땅은 함몰 되었다

그 집안에 대해 연구한 사람이 있다

친일로 부를 누리던 집안의 딸 이였다

국가기관에 근무하던 며느리는 시집올 때 피아노를 사

가지고 왔었다

그 방음 없는 집에서 시도 때도 없이 피아노를 쳤다

거침없는 똑똑한 우등생 이였다

그녀의 삶은 앞날을 거침없이 달리는 우등생 이였다

그녀로 인해 모든 식구들은 모두 행복하지 못했다

망나니 우등생 이였다

그의 후손들은 그 알박이 집을 기증도 할 수 없었다

나라에 기증하면 그때 값으로 돈이 조금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성씨 받이 친지들이 소유권리로 아우성 이라고 한다

대물림은 알박이 로 한 시대를 풍자거리가 되었다

백년이(그때 법) 지나야 나라에 귀속 된다고 했다

주변 경관은 그 건물 을 피해서 발전했다

조상이나 후손이나 유산을 가지고 쓰지 못했다

알박이로 평생 욕 으로 남겼다

백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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