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한 울타리
'언니, 나 요즘 엄마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어. 엄마가 살아온 날들을 기억하고 싶어서. 근데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쓰다 보니 아버지 삶도 궁금하더라고. 근데 난 아버지하고 산 게 10년이라 별로 기억나는 게 없네.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 사진첩 있잖아, 그거 보면서 쓰고 있지.'
'정말? 그랬구나. 멋지다.. 아버지는 집에 들아오면 현관에 신발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걸 좋아하셨지. 그래서 퇴근 시간이 되면 정신 차리고 정리해 놓곤 했었거든...'
전화기 너머에서 언니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아련하게 떠올리고 있음이 느껴졌다. 가끔씩 이렇게 느닷없이 아버지를 가슴속에서 꺼내 보는 것이 아버지를 추억하는 방법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기억하고 있을 걸. 내 기억 속에 많이 남겨 놓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다.
엄마네 정원에서 베고니아를 분양받아 왔다.
'이거 가져가서 키워볼래?' 엄마는 막내딸도 반려식물 키우는 즐거움을 알기 바라시나 보다.
'얘네들 매일 물 줘야 하지? 여름에 날벌레 생기면 어떻게 해. 지난번에 가져간 거 다 말라죽었잖아. 아직은 자신 없어. 다음에 주셔.'
나는 책임질 수 없겠다 싶은 일을 쉽사리 벌이는 성격이 아니라 식물 한줄기 가져오는 것에도 이렇게 너그럽지 못하다. 집에 와서는 엄마가 주시는 걸 그냥 받아올걸.. 하고 후회하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엄마가 주신 식물들은 무조건 받아와 키우기'라는 규칙을 정하고 엄마가 '키워볼래?' 하실 때 '아니'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스스로 입단속을 했다. 그렇게 한두 개가 모이더니 이제 우리 집 정원(이 역시 아파트 발코니이다)이 자그마하게 생겼다. 우리 집은 발코니 확장을 안 했다. 굳이 발코니를 확장해 더 넓게 살 이유도 없었거니와 각 공간은 그 공간만의 쓰임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지금 발코니엔 오종종한 화분 몇 개와 홈트 기구가 치지 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엄마처럼 반려식물 정원을 만들게 되려나. 나이 탓인지 나도 조금 변했다. 식물들이 커가는 것이 대견하게 느껴지고, 날벌레가 날아다녀도 '너도 살아라'하는 마음의 여유까지 생겼다.
평생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고 있는 우리 엄마는 킹왕짱 슈퍼우먼이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엄마표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고, 식빵과 파운드케이크, 호빵 같은 간식을 때마다 만들어 고픈 배를 채워주셨고, 재건축한 아파트에 입주했을 땐 방마다 노란 종이 장판을 붙이고 니스칠도 손수 하셨다. 우리 삶에 엄마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런 엄마가 세월이 지날수록 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엄마도 우리도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그 아픈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괜스레 큰소리도 치고 먼저 선수를 치며 딴소리를 하기도 한다. 막내딸도 쉰이 넘었는데도 엄마는 여전히 딸들을 걱정한다. 예전엔 쓸데없는 걱정이 듣기 싫어 뭐라 하기도 했는데 가끔은 엄마 걱정이 듣고 싶어 엄살을 부리기도 한다는 걸 엄마는 아실까.
'엄마 울타리 속에서 잘 살았어요. 딸들도 울타리 튼튼하게 지었으니 이제 걱정 놓으셔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