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경험소비자 어때

by 파드마

나는 네 자매 중 엄마와 제일 오래 같이 살았다. 나는 결혼이란 걸 하지 않고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말 마음을 다해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면 혼자 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조금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언니 둘은 그 시대 결혼 적령기에 엄마 곁을 떠났고, 언니 하나는 30 중반에 출가했고 나는 엄마와 40여 년을 함께 살았다. 엄마와 함께 산 세월을 돌아보면 나와 엄마는 비교적 잘 맞는 파트였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전적으로 나에게 맞춰 주었지만 엄마도 나도 서로의 영역을 잘 알아주었다. 때로는 내가 어른이 되어 엄마를 보호하는 것 같아 스스로 든든하기도 했고, 때로는 그 일을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정말 두렵기도 했다.


나는 40이 넘어 결혼을 결심하면서 마음 한편에 엄마 혼자 남겨두고 어떻게 떠날 수 있지 하는.. 떨쳐 내기 어려운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가 마음을 다해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사는 것이 엄마가 바라는 일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다른 생각은 안 하기로 마음을 굳게 먹어야 했다.

나는 결혼식을 의례적인 행사가 아닌, 엄마와 재미있는 경험으로 만들고 싶었다.

"엄마, 내가 돌아다녀 보니까 드레스가 너무 노출이 많고 화려해. 비싸기도 엄청 비싸구. 맘에 드는 게 없어. 내가 입고 싶은 스타일이 있는데 엄마가 만들어 줄려?"

"그래? 어떤 스타일인데..? 그래도 괜찮을까..?"

적당히 파인 네크라인에 주름 없이 심플하게 발목까지 오는 드레스, 그리고 면사포는 안 하고 싶었다. 신부 대기실에서 꽃같이 앉아 있기보다는(꽃 같은 나이가 지났으니 그럴만하다) 엄마가 만들어 준 드레스를 입고 하객 맞이도 하고 진행도 직접 하는 결혼식, 나는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다행히도 내 단짝이 흔쾌히 동의했다. 매일 퇴근하고 돌아와서 드레스를 입어보고 수정하고 몇 날 며칠을 이렇게 저렇게 다듬으면서 나만의 웨딩드레스, (엄마의 제안으로) 갈아입을 드레스까지 2벌이 탄생했다. 엄마와 동대문 시장에 가서 옷감과 레이스를 고르고 재봉질하고 수정하고 했던 그 시간이 엄마와 나의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우리 결혼식에 온 후배들이 그랬다. "차장님 어머니가 만든 드레스, 유럽풍으로 너무 예뻤어요. 결혼식이 여유롭고 분위기 넘 좋았구요. 저도 차장님 같은 결혼식 하고 싶어요"


나는, 돌아보건대, 엄마의 피 땀 눈물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엄마는 625 전쟁 피난길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잃었지만 사람들 따라 남쪽으로 휩쓸려 내려가지 않고 큰 아버지댁을 애써 찾아가 가족들을 찾았다. 엄마는 결혼과 함께 겪은 거칠고 힘든 삶의 시간을 놓아버리지 않고 고비를 넘기며 살았다. 엄마는 아버지를 잃었을 때 다른 선택을 하지 않고 엄마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엄마는 막내딸의 삶을 닦달하지 않고 나 스스로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켜주셨다. 엄마의 정성이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지금과 같은 고귀한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이냐는 물음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기꺼이 경험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나는 엄마가 지켜주신 생명이 이 세상에 쓰임이 있고 자기 삶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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