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안다는 것

아버지를 알기엔 너무 짧은 시간

by 파드마

아쉽게도 난 아버지의 삶을 잘 모른다. 아버지와 지낸 시간이 고작 10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10살 되던 해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손수 만든 사진첩에서 공군사관학교 생도 시절과 군복무 시절의 아버지 젊은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스크린샷 2025-06-20 오후 1.05.49.png 아버지가 만든 젊은 날의 사진첩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 몇 가지를 하려고 한다.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했다. 친구들과 장사를 해 돈을 벌겠다고 리어카를 끌고 가다가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그분이 학비를 대신 내줄 테니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한다고 하면서 아버지를 설득하고 이끌어 주셨다. 아버지는 생전에 그분을 찾아뵙지 못한 것을 많이 후회하셨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와 공군사관학교 중에 학비를 생각해 공군사관학교를 선택했다. 당시 공군사관학교는 진해에 있었는데 한겨울 새벽 1시에 훈련 사이렌이 울리면 일사불란하게 집합해 팬티만 입은 채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나오는 극기 훈련을 했다. 훈련 중에 얼어버린 팬티가 허벅지에 쓸려 피가 나기가 일쑤였다. 아버지는 못하는 운동이 없는 강인한 체력을 가진 군인이 되었다.


아버지는 공군이었지만 파일럿 아니었다. 공군이라도 다른 업무를 하는 팀이 있게 마련이니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무심코 엄마한테 물었다. '아버지는 공군인데 왜 파일럿을 안 했을까? 엄마는 알아?'하고. 뜻밖에도 엄마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어.. 외할아버지가 가정이 있는 사람이 비행기 타는 일은 위험하다고 그랬지.' 아버지는 외할아버지의 말씀을 새겨듣고 파일럿을 그만두고 통신분야와 시설분야로 지원해 일을 배웠다. 이제와 이런 얘기가 무슨 소용이겠냐만, 아버지가 파일럿을 했었다면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외할아버지 말씀을 새겨들은 또 한 가지가 있다. 아버지는 공군사관학교 친한 동기들 중에 가장 먼저 결혼했기 때문에 틈만 나면 친구들이 신혼집에 놀러 왔다. '없는 사람이 친구들이 너무 많은 것도 곤란한 일이다'라는 외할아버지 말씀에 그때부터 저녁마다 엄마와 산책을 다니며 친구들을 피해 다녔다. 친구들이 있어서 나는 아무 걱정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만큼 친구 좋아했던 아버지가 친구들을 멀리하리라 마음먹었을 때 그 청년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스크린샷 2025-06-21 오후 12.36.08.png 파일럿을 꿈꾸었을, 그리고 친구 좋아했던 아버지

친할아버지와의 일화도 있다. 우리집은 딸이 넷, 딸부잣집이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출근하는 아버지한테 족보에 딸들은 안 올리겠으니 그리 알라고 했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아들 부럽지 않게 잘 키우면 된다고 늘 얘기해 오던 터였다. 아버지가 그 말을 듣고 휙 돌아서니 마침 쓰고 있던 모자가 빨랫줄에 걸려 벗겨지며 툭 떨어졌다. '딸들 안 올릴 거면 나도 빼세요!' 그러고는 모자를 집어 쓰고 쌩하고 나갔다. 엄마는 그 장면을 생생히 기억하고 웃으면서 여러 번 얘기한 적이 있다. 남아선호사상이 여전히 팽배한 그 당시에 감사하게도 우리 부모님 두 분은 생각이 달랐다. 그래서 우리 성씨 족보에 우리 대부터 딸들 이름이 올라 있다. 아버지는 1958년부터 1980년까지 23년간 참군인의 삶에 종지부를 찍고 민간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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