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o Dec 05. 2023

돌보는 내가 좋다

무대 뒤의 베란다 정원

잘 정돈된 정원을 가꾸기 위해 매일 돌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고, 누가 부르지 않았는데 발걸음이 자꾸 그곳으로 향하는 건

내가 좋아서가 아니면 못 할 일일 것이다.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행여라도 꽃 봉오리가 맺힌 화분이 얼어버릴까 걱정되어,

한밤중에 일어나 화분을 안으로 들여놓은 적도 있다.


안방에 딸린 베란다로 향하는 문에는 올리브 문양 가리개를 걸어두었다.

가리개를 젖히면 나만의 정원이 빼꼼 나타난다.


따라라라 딴~~

올리브 나무를 탐내고 있긴 한데, 지금은 이 가리개로 대신 만족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베란다 정원의 무대로 입장한다.

주인공은 식물들이고, 나는 무대 뒤의 스테프이다.



정원에 입장해 작은 스툴에 앉아 내가 하는 일은,

을 열어두고, 물을 주고, 시든 잎을 따주고, 떨어진 것들을 줍는다.

이런 돌봄이 있어야 내 베란다의 생명들이 사랑을 받는 걸 알겠지 라는 생각으로 일일이 눈길을 준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정갈히 하는 것이 나의 맡은 바 역할이리라.



식물은 온도에 민감한 생명이므로, 정원 안의 온도를 꼭 살펴주는 것도 물론이다.

급하게 내려간 날씨에 베란다 온도가 20도 아래로 내려갔다



식물이 지고 난 흔적들을 한데 모으는데, 난 이 모아진 통이 좋다.

이 통에 모아진 것들이 나의 보람이고 무대 뒤의 내 역할 같아서 이것들을 쓰레기라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이 통을 쓰레기통이라고 부르지 않고 싶다. ㅋㅋ)



행여나 누가 대신 나의 정원을 돌봐줄 테니 너는 그저 예쁜 꽃과 화초를 보너라~라고 한다면,

(아무도 그럴 일이 없겠지마는)

아니요!  괜찮습니다.  

저는 지금 돌보는 나를 즐기고 있어요 :) 할 것이다.


"언제까지 내가 이 역할을 잘 해낼지 궁금하거든요.

 나 스스로 작은 행복을 찾아냈고, 지금 한창 그것에 매료되어 있으니

지금은 내가 맡은 이 소임에 충실하고 싶어요."


몇 번의 겨울이 지나고, 몇 번의 새봄을 맞고 나서

조금 더 베란다 정원의 가드너로 배움이 쌓이고 났을 때에는 이 열정이 사그라질 지도 모를 일이겠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 역할이 나의 보람임엔 틀림없다.





어여쁨을 뽐내는 꽃도 싱그러운 화초도 내 보람이지만

그것들 뒤에 숨은 역할도 나의 즐거움이란 걸 누리고 있다.

이 꽃이 꽃이기 전의 처음을 내가 몰랐다면, 이 꽃은 나에게 특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성을 다하고 다정을 부어줄 대상이 있으니 그저 즐겁고,

화초들이 그 애정을 마다하지 않으니 그 또한 다행이다.











이전 05화 나눔의 정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