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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o Jan 02. 2024

원하는 대로 얻을 순 없다고 동백이 말했다

진천교 동백

지난 가을.

내 정원에 동백을 품었다.


동백나무가 처음 나에게 왔을 때, 운 좋게도 동백의 꽃망울이 세 개 달린 걸 확인하고 기뻤다.

잘 키워서 동백꽃을 보리라.

동백 중에 진천교 동백으로, 꽃잎이 아주 많아 생긴 모습이 마치 만든 꽃같기도 했다.

진천교 동백을 모르고 동백을 논하지 말라 한다니, 더욱 기대가 되었다.

그러니 그 동백 꽃망울을 내가 얼마나 애지중지했겠는가.


겹겹의 꽃이 활짝 펼쳐지는 날, 얼마나 대견하고 예쁠까...

그 상상과 기대를 하면서 세 달 넘게 동백이 맺힌 봉오리를 돌보았다.




세개의 꽃 봉오리가 있었다.


다른 꽃의 몽우리를 보는 것과 동백의 꽃망울을 들여다보는 마음은 좀 달랐다.

몽우리 끝에 붉은 기운이 드는 걸 시작으로,

더디게 더디게 몽우리 끝이 터지고, 두 달을 매일 들여다봐도 변화가 더뎠다.

마치 출산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얘 지금 꽃 한 송이 피워내려고 꽃몽우리를 품고 온 힘을 다 쏟고 있구나.

응원하게 되는 마음.



어디선가 읽은 적 있다.

동백은 생육 환경이 맞지 않으면 스스로 꽃망울을 떨궈버린다고.

그 얘기조차 뭔가 신비스럽게 느껴졌었는데...

( 설마, 내 동백이 그러지 않길 바랐었는데... )


두어 달 전, 어느 날 정성껏 물을 주다, 툭 떨어지는 봉우리 두 개를 보았다. ㅜㅜ

봉오리가 떨궈져 버린 자리엔 이가 빠진 자리같이 남았다.

이제 동백의 봉우리는 하나만 남겨졌다.


꽃을 피우는 일에 훨씬 많은 햇빛과 물이 필요한데,

나는 그걸 알아채지 못했던 모양이다. 많이 속상했다.

품던 새끼를 잃은 양 속상했던 마음에, 잃은 자리가 너무 허무했더랬다.


지금 보니, 왼쪽 봉우리 색도 건강해 보이지 않는 걸 이제 알겠구나


동화 속 주인공처럼 셋이었으나 모두 떠나고 한 개만 남아있는 봉우리.

난 이 마지막까지 잃고 싶지는 않다.

더욱 소중해진 동백 한 송이를 볼 수 있으리라.


보통이 동백보다 잎이 많다 보니, 이리 더디게 피울 수밖에 없는 거구나.

겹겹을 들여다볼수록 꽃 한 송이 피우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겠구나 헤아리게 된다.

이 아이는 말 그대로 꽃을 피우기 위해 진통을 앓고 있다고 여겨졌다.








내가 이 글을 여기까지 써오고 서랍 속에 간직하고 있던 이유는,

마지막에 남아있는 한송이가 피는 날을 기록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나의 동백이 피어줬다고 말하고 그날의 감회를 간직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제 동백에 물을 주면서 잘 피어달라고 말하던 순간,

동백의 마지막 봉우리 마저 힘없이 떨어져 버렸다.


...................


두 개의 봉우리를 잃었을 때, 나는 생각했었다.

많은 욕심을 가지지 말라고 하나의 봉우리가 남나 보다.

난 올해 꽃 한 송이만 보아도 만족할 수 있어.


그런데, 하나의 꽃송이 마저 떨어져 버리고 나니.

한송이를 보겠다는 것도 내 욕심이라는 거야?

왜 한 개도 허락하지 않는 것인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동백이나 인생이나 똑같다.

속상한 마음에 화가 났다가 아쉬웠다가 동백 앞을 떠나지 못했다.

나는 하나의 꽃송이를 보고 싶은 건 욕심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동백은 아니라고 했다.


동백의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한 걸 확인한 지 세 달 만에... 꽃망울을 모두 잃었다.



'내 정원의 고귀함: 진천교 동백'이라 적어두었던 제목을 바꾼다.

원한다고 얻을 수는 없다.

동백은 나에게 그 말을 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도...

동백아, 지금은 아니더라도.

우리 내년을 기약할 수 있겠지?

내가 이번에 기다린 게 충분하지 않았다면 말이야.

사계절을 돌아서 우리 꼭 만날 수 있길 바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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