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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o Dec 20. 2023

나를 칭찬하는 일

잘 걷는 나를 칭찬합니다!

몇 달째 걸어서 출근을 하고 있다.

늦여름에 걷기 시작하여 세 달이 약간 넘었으니. 자축하기 알맞게 100일 남짓 되는 날이다.


집에서 회사까지 편도 약 2.2km

알맞은 속도로 삼십 분을 걸으면 도착하는 거리다.


가을은 날이 좋으니 걷는 일도 즐거웠다.

내가 언제까지 걸어서 출근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시간이 흘러, 계절이 겨울로 가기 시작하자 조금 망설여졌다.

과연 한겨울에도 걸어서 출근할 수 있을까?


영하 8도의 기온. 체감온도 영하 11도.

겨울을 몸으로 직접 체감해 본지가 너무 오래되어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밤새 눈이 내리고 난 오늘의 아침.

엘리베이터를 내려 아파트 뒷길로 눈이 쌓인 걸 보았다.


밤새 눈이 내렸구나. 눈이 쌓일 만큼 소리 없이 왔구나.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눈이 내리다니...

밤사이에 나 모르는 동화가 펼쳐져있던 기분이다.



머플러와 장갑, 귀마개까지 하고 나선 길이므로 춥지 않았다.

얼굴에 맞닿는 차가운 공기만이 쨍하게 신선했다.

영하 10도를 몸으로 느끼는 거. 이 느낌이었구나~~!!



아무도 가진 않은 소담한 흰 길은 아니지만, 눈길을 걸으니 빙그레 웃음이 번진다.

조금 망설여졌지만, 영하의 한겨울에 내가 걸어서 출근을 하고 있다.



장하다, 나 자신.

기특하다 나야.




햇살이 좋던 가을날에 출근길은 날씨가 좋아서 행복했다.

그땐 주로 하늘을 보면서 걸었다.

감탄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에 감사하며.



가을이 깊어지니 바닥을 보며 걷게 되었다.

하늘에서 보던 잎들을 바삭바삭 밟으며 걷는 길이 즐거웠다.




겨울의 하얀 길을 걷는다.

무수한 발자국들의 그들도 이 길을 걸었구나.

많은 이들의 발자국이 정겹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걷는 걸 좋아한다.

내가 몸을 쓰는 행위 중에 가장 잘하는 일이 걷는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걷기를 좋아한다 해도, 여행길을 걷는 것과 일상의 출퇴근 길을 걷는 것은 조금 다르다.

여행길은 기꺼이. 즐겁게 걸을 수 있지만,

출퇴근을 걸어서 하는 것에는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마치 나의 성실성을 증명해 내는 것과 같은 기분.


아침마다 차로 출근하고 싶은 유혹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 유혹을 떨쳐 냈던 이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어디까지 하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 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독려하는 일.

그리고 나를 칭찬할 일을 찾아내는 일.

나를 돌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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