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의 어릴 적 가장 큰 난제는 ‘잠시 엄마와 헤어지는 것’이었다. 4살까지 가정보육을 했기 때문에 첫 관문이 유치원이었다. 울지 않고 들어가기까지 2년이 걸렸다. 유치원에서 스타가 되었다. 원장님을 비롯한 선생님은 물론이고 유치원 학부모들에게도 눈에 띄는 아이였다. 6살이 되도록 유치원 앞에서 울고 있었으니.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 2년 차엔 매일 울진 않았다. 주말을 보낸 후 월요일이나, 방학후 개학한 달이 힘들었다. 헤어짐이라는 관문만 잘 통과하면 그 후론 정상이었다.
이런 성향이라 학원에 가기도 힘들었다. 다른 학원은 포기하더라도 수영은 꼭 가르치고 싶었다. 겁이 없어서 깊은 물에도 과감히 들어가는 아이였다. 물에 뜨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했다. 처음엔 누나와 함께 어린이 전문 수영학원에 보냈다. 잠시 누나와 떨어져 탈의실을 통과하는 것도 무서웠고 아는 사람 없는 낯선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누나와 실력이 달라 같은 반에서 수업할 수가 없었다. 여러 번 시도하다 포기하고 반 친구들이 다니는 구민체육센터로 옮겼다. 7살 가을이었다.
그 당시 숫자를 잘 읽지 못했다. 혼자 탈의실에 들어가 사물함 번호를 찾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반 친구들도 어린 아이들이라 배려심 있게 도와주지 못했다. 다들 먼저 수양복을 갈아입고 샤워까지 마친 1등 어린이가 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둘째 아이는 자주 사물함 앞에 혼자 남아있었다. 눈물이 차올라 눈앞이 흐려지니 그나마 알던 숫자도 간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사물함이 공포로 다가오면 탈의실을 박차고 되돌아 나오기 일쑤였다. 남자 아이라 엄마가 함께 들어갈 수도 없어 탈의실 통과라는 관문이 정말 힘들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희망고문을 하며 유치원 졸업까지 4개월 동안 고된 수영 강습을 마쳤다. 그 후 전학등의 이유로 친구들과 뿔뿔이 헤어졌다.
이때 호되게 당한 나는 그 후 2년간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그래도 수영 강습은 여러 번 제안해 보았는데 실패했다. 이제 아이는 올해 10살이 되었다. 블과 한 달전에도 수영장이 익숙한 장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빠와 함께 자유수영을 권유했다가 실패했다. 곧 수영장 강습이라는 틀에 가둘 거라는 걸 눈치챈 것이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가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친구와 한마음으로 합동작전을 펼쳐 수영장 등록을 성사시켰다. 오늘이 대망의 첫 강습 날이다. 친구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생겨 결석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더불어 이번 주 내내 갈 수 없다는 소식도 전해왔다. 청천벽력이다. 친구라는 동아줄만 꼭 붙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뚝 끊어진 것이다.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아이에게 거짓말을 섞어 이 사실을 알렸다. “친구가 오늘 좀 늦어서 먼저 수업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선생님이 탈의실 이용하는 법 알려주실 텐데 먼저 들어갈 수 있지? ” 이번 강습 비용도 물거품처럼 사라질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말하는데 이 얘기를 듣는 아이가 의외로 담담하다.
나는 탈의실에서 수없이 되돌아 나온 7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그대로인데 아이는 혼자 10살이 돼버린 건가.
우선 등교부터 시켰다.체육센터에 전화해 혹시 탈의실 이용을 도와주실 수 있는지 여쭈워 보았다. 첫날은 봐주실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다행이다.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하교시간을 기다린다.
이로써 소소한 한 편의 성장기가 완성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