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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앤 하이드’는 가까운 곳에 있다.

by 고고

둘째 아이가 도서관에서 ‘지킬 앤 하이드’책을 빌려왔다. 그림책이기도 하고 괴물 같은 하이드 얼굴이 그려진 표지가 흥미 있어 보여 빌려온 모양이다. 그런데 고학년 그림책이라 2학년 아이가 혼자 보기엔 내용이 어려웠다. 함께 읽어 보기로 했다. 선량한 지킬 박사와 괴팍한 하이드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사춘기가 오고 있는 큰애가 떠올랐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대에서 로션을 바르고 있는 누나에게 둘째가 다가가 툭치며 말을 걸었다. 갑자기 큰애는 벌레라도 닿은 듯 소스라치게 놀라는 ‘시늉’을 하며 몸을 털었다. 그리고 동생에게 ’ 아침부터 왜 건드리냐‘ 고 화를 냈다. 분명 어젯밤에 서로 툭툭 치는 놀이를 하며 깔깔거리고 웃었었는데, 누나의 달라진 반응에 동생은 당황스럽다. 억울해서 둘째도 화가 난다. 화를 내고 있는 두 아이를 보는 엄마인 나도 화가 난다.


이 누나는 대체로 아침에 기분이 좋지 않다. 잠이 다 깨지 않아서인지 목소리도 다운되어 있다.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며 돌아다니다가 아침을 챙겨 먹은 후 곧바로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차라리 학교에 가면 기분 전환이 될 텐데, 길고 긴 겨울 방학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오전엔 누나를 건드리면 절대 안 된다. 말을 걸어도 가시 돋친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점심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 오후 감정 상태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아직 정확한 인과관계를 찾지 못했다. 아마 숙제가 많이 밀렸다던가 하는 이유로 기분이 달라지는게 아닐까 예상해 본다. 저녁을 먹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의 누나로 돌아온다. 둘째 아이와 온 힘을 다해 즐겁게 논다. 목소리도 어릴 적 데시벨로 돌아가 아주 우렁차다. 둘째와 신나서 소리까지 지르며 놀고 있으면 이웃집에 소리가 울릴까 걱정돼 주의를 줘야 할 정도다.


이렇게 오전엔 하이드의 기분으로 오후엔 지킬의 기분으로 생활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하이드의 기운이 저녁까지 잠식하려고 한다. 누나의 변신하는 감정을 읽어내기도,이해하기도 힘든 동생에게 이 책이 길잡이가 되었다. 누나가 지킬과 하이드처럼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거라고, 이렇게 중학생이 되면 하루종일 하이드로 변했다가 몇 년 시간이 흐르면 지킬로 돌아올 거라고. 그런데 누나가 지킬로 돌아오면 너에게도 하이드의 시기가 찾아올 거라고.

그런데 누나는 겉모습이 변하지 않으니 지금 상태가 ‘지킬인지, 하이드인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알려줬다. 지킬이었을 때 즐겁게 놀았던 놀이도 하이드일 때는 하기 싫어지는 거라 눈치 없이 장난치면 안 된다고 말이다. 게다가 아직 이 변신을 막아줄 약물이 개발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시기를 무사히 보낼 수 있게 힘을 합쳐야 하는 것이 너와 나! 우리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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