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에서 귤과 함께, 15일 차
2021.12.06
서귀포에 처음 온 지도 벌써 절반의 날짜가 지나갔다! 혼자 또 같이 너무 즐겁게 놀다 보니 시간이 훅 지나간 기분이야.
과언니들과 친구들이 온 동안 너무 재밌게 노느라 글을 못 썼지만, 일단 밀리기 전에 오늘의 하루부터 간단히 정리를 하려고 한다.
친구들과 너무너무 재밌게 논 나는 입술이 결국 터지고, 찾아보니 구각염인듯한 병은 오른쪽에 크게 확장하는 것도 모자라 반대편 입가로 옮겨갔다.
너무 아프고 건조하다. 게다가 약국에서 받은 약을 바르면 바를수록 더 아프고 건조하고 어째 효과는 전혀 없고 점점 커져갔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찾아보니까 잘못된 약을 준 거라 효과가 없었다. 피곤하거나 힘들 때 면역력이 떨어져서 바이러스성 감염으로 인한 구각염인 거 같은데, 아저씨는 효과도 없는 약을 6000원에! 고통+ 비용까지 생각하면 약간 화가 난다!
요새 마스크를 벗고 다닐 수 없으니까 짐작으로 흔한 질병을 예상한 아저씨도 이해는 하지만 너무 아프다 보니 조금 짜증이 났다. 하지만 항의하고 싶어도 제주 공항 안에 있는 약국이라 너무 멀어서 못 간다.
그냥 포기하고 구각염이 생겨서 입 끝이 번져서 커지다 보니 얼굴 비율에 비해 작던 입이 비율이 맞아 보여서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카톡하다가 너무 웃겨서 웃었더니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병원에 갔다 온 하루였다
친구들은 어제까지 다녀갔는데, 친구들 덕분에 기운이 나서 제주시에서 연대마을까지 엄청 걷다 왔더니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오늘은 7시에 눈에 떠졌지만 다시 자서 약 10시 반쯤에 일어났다. 오래간만에 풀로 근 9시간을 잤다고 애플 워치가 알려줬다.
아주 약간만 더 잔 기분이지만 전에 워낙 조금 자다 보니 더 많이 잔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일어나자 온 입안과 잇몸이 너무 아팠고 왼쪽 윗잇몸엔 구내염이 생기려 하고 있었으며 기력이 떨어져 살짝 어지러웠다.
살기 위해 이젠 몇 개 안 남은 경옥고에 레몬 오일을 넣은 물을 마시고 귤을 엄청 까먹었지만 여전히 기운이 없었다.
얼마 안 되어 엄마한테 전화가 왔는데 오늘 시기적절하게 귤이 도착했다고 한다!
엄마께서 귤이 작을까봐 걱정하셨는데 맛있다는 말씀에 힘이 나서 오늘을 다시 시작하려고 했다. 일어나니 배가 굉장히 고팠다.
일단 원두커피와 편의점에서 파는 가벼운 간식들이 먹고 싶어져서 흰색 빨래를 먼저 세탁기에 돌려놓고 귤 아저씨에게 D와 엄마에게 보낼 귤을 사서 주소로 보냈다.
아저씨와 꽤 안면이 익어서 아저씨께서 귤을 마음대로 담아서 가져가라고 하셨지만 집에 들어갈 때 살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따 다시 사러 오겠다고 말씀드렸다.
원두커피를 마시며 올레길에서 범섬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씨유로 조심조심 건너가서(신호등이 없는 야생의 제주 약간 무서워...!)
커피와 김밥과 딱새우면이 없어서 산 새우탕면과 초코찰떡과 휴지를 사서 빨래를 담았던 가방에 담아 조심조심 다시 길을 건너 (이전보단 편의점 앞 등에 종종 젊은이들이 보인다) 올레길로 내려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올레길 초입 돌계단에 앉아서 커피를 호로록 마시려는데 오늘따라 날이 더 따뜻해서인가 벌레들이 며칠 전에 비해 정말 득시글했다. 무당벌레도 근방에 앉고 야생의 제주 벌레들이 달려들어서 별수 없이 걸으며 좀 경치를 보기로 했다.
걷는 것도 벌레와의 사투로 만만치는 않았지만 파도소리와 멋진 범섬의 풍경을 보며. 햇빛이 더 눈부셔져서 반짝이며 부서지는 바다별들을 바라보며 올레길과 커피를 즐겼다. 사람이 없어서 마스크를 안 쓰고 편히 종종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너무 날이 좋아서 날아온 작은 날벌레가 커피에 빠졌지만 그냥 잘 건져내고 마셨다.
안 그래도 날도 따뜻하고 귀찮아서 내가 좋아하는 핑크 후드만 하나 입었는데 날이 정말 무지막지하게 더웠다! 세상에 12월에 후드 하나만 입었는데 덥다니
땀을 뻘뻘 흘리며 귤 아저씨에게 커피 필 받은 것을 해소하기 위한 캔커피 하나와 귤을 사서( 혼자 먹기 좋게 2000원만 담아주셨다. 아주머니보다 좀 더 나와 친밀도가 쌓인 느낌 ) 집으로 돌아왔다. 아저씨께서 멍은 좀 들었지만 더 단 걸로 골라주겠다고 하셨다. 아저씨가 어련히 잘 주시겠거니 싶어 넉넉히 담은 귤 봉지를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빨래가 아직 22분이나 남아있었기 때문에 다시 올라가서 음식들을 정리하고 배가 꼬르륵거려 (12시 반이 되어 있었다.)
편의점에서 사 온 것들을 허겁지겁 먹었다. 김밥도 맛있고 커피와 과자와(쫄병짜장맛) 초코찰떡과 등등을 빨래를 기다리며 사람들과 카톡을 하며 보냈다.
(커피 사서 올레길로 갈 때 그 자연스러운 식당 앞을 지나며 친구들과 즐겁게 야외에서 밥을 먹던 기억이 나서 아련했다. 오늘은 식당이 쉬는 날이라 닫힌 가게가 더욱 아련한 기분을 자아냈다 카카오톡으로 "친구들아 도라와..." 라고 보내니 친구들이 재밌어했다.)
한참 멍하니 먹으며 카톡을 하다가 흰 빨래를 널고, 색깔 빨래도 널고 친구들과 또 천천히 남은 것들을 먹으며 카톡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웃겨서 웃는데
입 찢어진 나의 구각염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인터넷 서치 해보니 연고도 잘못된 거였고 피가 나는 걸 보니 병원에 가보라는 L의 말이 일리가 있어서
5시쯤 살짝 어지러운 상태로 허겁지겁 병원으로 출발했다. 병원에 전화해보니 6시에 닫고 주민등록증이 없어도 되니까 얼른 오라고 했는데 도착해보니 어찌나 병원이 인기가 좋던지 만석이고 예약이 마감이었다. 병원이 모인 세련된 건물이라 엘리베이터도 좋고 깔끔한 건물이었는데. 온 김에 이비인후과라도 갈까 하다가 어차피 약국도 그 정도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약국에 온 셈 치자고 생각하고 1층으로 내려왔다.
마스크를 쓰고 구각염이 아파서 크게 말을 못 했더니 약국 선생님이 구내염으로 알아듣고 페리덱스를 주려고 하는 것이다 ㅠㅠ 그 약 구내염 약인 거 아니까
이전에 아자로 시작하는 약 발랐더니 효과 없었다고 구각염 발음이 너무 어려워서 구각, 국 깍, 국각염 이러다가 그냥 입이 찢어졌어요. 하니 아! 하며 내가 인터넷으로 보고 온 바이러스성 약을 주셨다. 그 약은 이전에 쓰던 연고보다 훨씬 저렴해서 작은 병에 든 2500원짜리 복합 비타민 약과 같이 샀는데도 대략 6000원 정도였다.
그 건물 1층엔 이전에 J가 추천해줬던 시스터필드 빵집도 있으니까 빵집에서 저녁거리+ 커피를 사 가려고 생각을 했다. 이전에 드립백 1회분씩 포장된 걸 팔았던 기억이 나서. 아 역시 그 빵집 빵은 뭔가 나머지 자주 갔던 두 군데보다 훨씬 반짝거린다. 위치가 좀 더 일부러 가야 하는 곳이라 안 갔는데 오늘은 전에 갔던 빵집보다 더 맛있어 보이는 필마까레도 있어서 이전에 탐내던 바삭해 보이는 코코넛 카야 크루아상과 레몬 파운드케이크 1회 분과 함께 구매했다.
직원 분이 눈에 띄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장동윤 닮고 목소리도 멋있게 발성하시더라. (그것을 위해 신경 쓰는 느낌) 드립백은 없었지만 정성스레 포장해주신 크루아상과 케이크와 필마까레를 들고
바로 옆 이마트에 커피와 내일은 집에서 절대 안 나올 생각이었기 때문에(원랜 오늘 종일 쉬려고 했지만 결국 나왔고 수요일엔 오전 폴댄스 및 저녁에 A가 오니깐) 내일 해먹을 거리를 간단히 사갈 생각이었다.
맛있는 빵도 들고 이마트의 잘 진열된 상품들을 보다 보니 기분이 하이해졌다. 게다가 이마트 안에 제주 흑돼지 코너와 제주 갈치 코너가 있고 반값 할인도 하는 걸 보니 기분이 더더욱 하이해져버렸다!
구워 먹을거리가 특별히 많진 않아서 일단 돼지 안심살에 혹시 냄새가 난다면 같이 먹을, 혹은 맛있더라도 나중에 밥에 같이 먹을만한 자장소스 그리고 샐러드 거리 + 빵과 먹을 인스턴트 헤이즐넛향 커피를 사서( 드립백을 살까 하다가 헤이즐넛 향을 맡으면 너무 즐거울 거 같아서 향을 즐기기 위해 헤이즐넛을 픽) 나왔더니 기운이 솟아오른다. 시스터 필드 종이백에 야무지게 짐들을 챙겨서 걸어 나오니 너무나도 행복해졌다.
집에서 병원 간다고 나올 땐 어지럽고 좀 기운이 없었는데 힘이 마구마구 솟아서 이마트에서 숙소까지 걸어오기로 했다. 사람도 별로 없으니 노래를 들으며 조금 흥얼거리기도 하며 오고 싶어서. 걷는 건 행복한 일이다. 숙소까지 대략 50분 거리인데 기분이 좋다 보니 아무렴 더 빨리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약간 어스름이 진 보라색 하늘과 초승달과 서울보다 더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집으로 오는데 너무 행복했다. 몰랐던 카페들도 종종 거리에 있고 (다들 일찍 닫지만) 귤꽃다락도 6시 반까지라 뭔가 테이크아웃해갈까 고민하다 그냥 집으로 마저 왔다. 신나게 노래를 들으며 오는데 숙소 근방 즈음에서 길 잃은 나그네 청년 1이 번화가가 어딘지 식당이 어딘지 물어봤다. 폰이 죽었다고 했다. 정말 직진만 조금 하면 월드컵경기장이고 거기서 올라가면 번화가니깐 쭉 그쪽으로 가라고 걸어가면 20분 걸린다고 알려줬다.
20분이 너무 길고 지쳤는지 내가 가는 방향으로 가면 뭔가 있냐고 물어봤지만,
유감이지만 청년 거긴 가봤자 중국집뿐이라네... 게다가 번화가는 더더욱... 다이.... 그래서 반대로 가셔야 한다고 알려줬다. 버스라도 몇 번 타면 되는지 알려줄걸 그랬나
나이도 많이 어려 보이고 마른 젊은이였는데. 처음 제주에 왔을 때의 살짝 두려움과 낯섦이 떠올라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략적인 방향을 알려주니 알겠다고 하고 일단 길을 떠났기 때문에 숙소로 마저 돌아왔다. 얼른 들어와서 빵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싶었다.
뭔가 타인에게 길을 알려주고 나니 2주밖에 안되었지만 여기 익숙해진 기분이 들어서 좀 더 신이 났다. 어둑한 길이지만 처음 왔던 시기보다 지금은 여기가 마치 익숙한 길인 듯 꽤나 긴 길임에도 짧게 느껴질 정도로 익숙해졌다. 내려오는 길에 물을 한 병 사서 집으로 들어오니 진짜로 지치고 또다시 많이 걸어버린 하루가 되었지만. 뭔가 더 기운은 솟아올랐다.
내 몸도 혈액순환 쪽이 약하다 보니 걷는 게 꼭 필요한 게 아닐까. 사 온 것들을 사진 찍고 냉장고에 고기랑 야채 등을 넣고 샤워까지 하고 나오니 정말 개운했다. 밤에도 바람이 많이 안 불어서 걷다 보니 땀이 좀 났거든. 요새 많이 걸어서 그런지 전에 늘 시커멓던 무릎 위쪽에서 정강이까지의 다리가 많이 하얘졌다.
다리 쪽이 순환이 잘 안 되어서 시커멓게 피부가 어두운 거랬는데 그 말이 일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을 시작한다면, 혹은 만약 1월 말이나 2월에 당장 법원직 준비를 시작한다면 이렇게까지는 절대 걸을 수가 없을 텐데, 일단 여기 있는 동안이라도 진짜 열심히 걸어야겠다.
비록 구각염(?)은 좀 생기고 구내염도 생기기 직전이었지만 귤을 많이 먹어서인지 잇몸이랑 입 안이랑 혀 아프던 건 좀 나아졌다. 혀는 아직 좀 아프지만.
전체적인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 같아서 내일은 일단 찬찬히 쉬고 모레 폴댄스를 나가고 A랑 또 놀러 다니면 많이 걷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걷는 건 좋아해서 다행이다
오늘도 마냥 쉬기만 한 하루는 아니었지만 뭔가 그냥 정말 생각 없이 누워있는 건 잘 되지가 않아서 그럭저럭 보람 있는 하루를 보낸 거 같아.
샤워하고 나서 먹은 필마까레와 커피와 초코찰떡도 너무 맛있었다. 아. 봉주르 마담 것도 맛이 있지만 여기 필마카레는 진짜 맛있어서 감동이었다. 파이지도 훨씬 바삭하고 초코 위에 슬쩍 뿌려진 피스타치오 가루도 너무 고급스러워. D에게 저 필마까레를 먹어보게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내일은 파운드케이크와 돼지고기 요리들과 코코넛 카야잼 크루아상으로 호화롭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야지.
내일도 휴식이 주목적이라 신나고 행복하게 느껴진다! 바다 뷰도 최고야! 오늘은 햇빛이 좋아서 집에서 카톡하며 본 바깥 풍경도 너무 이뻤거든.
그리고 아저씨가 골라주신 2천 원어치 귤은 진짜 이전에 먹은 것보다 훨씬 달던데 너무 신기했다. 원래도 다른 집들보다 훨씬 달고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보다 더 달 수도 있는 건가! 전문가는 다른 건가 조금 멍은 들어있는데 당도가 이상하게 더 높았다. 그동안 귤들에 맛이 더 든 걸까?
기분이 좋아져서 귤을 여러 감사한 분들께 보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할머니, 할아버지, 큰고모, 둘째 고모, 막내 고모, 작은엄마, 이모, 외숙모 등에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상자 주문하면 할인이 가능한지 여쭤봐야겠다. 엄마도 가족분들에게 귤을 보낼 거라고 했더니 흡족해하셨다. 이렇게 맛있는 귤이라면 친척들이나 받는 사람이 좋아할 느낌이라. 나눔을 생각함으로 따뜻하고 행복해지는 하루의 마무리.
비록 나의 연애는 당장 뜻대로 풀리고 있지 않지만
이거야말로 소중한 사랑이 아니겠어.
사촌 언니도 16-17 및 주말 껴서 온다는데 그 주 주말에 E가 제주시로 놀러 오기 때문에 언니가 주말까지 머물다 가도 괜찮겠더라.
고모부께서는 그 주는 안된다고 하셨지만 언니라도 와서 같이 요가 클래스도 듣고 놀면 재밌겠다. 언니에 관해서는 친구 오는 날 받은 연락이지만 준비하던 로스쿨에 붙었거든! 참 잘됐어.
꿈에서 이전에 언니랑 그 학교에 같이 손잡고 가는 꿈을 꿨었는데 신기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 와서 놀다 가라고 하려고. 1월까지 더 있다 가게 되면 고모나 고모부께서도 오고 싶어 하신다더라.
어쩌다 보니 이번 제주 혼자 여행이 아니고 기획한 작품을 못쓰고 여행기만 겨우겨우 때우는 데다가, 28일 중 대략 18일가량 누군가와 함께 있는 느낌이지만 혼자 또 같이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공부할 땐 물리적으로 거의 혼자 있어서 외롭다고도 생각했는데, 나를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라 더욱 소중하다.
혼자 또 함께 너무나 행복한 요즘.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앞으로도 어떤 힘든 상황에도 내가 긍정적으로 모든 순간을 편히 받아들일 수 있는 강한 힘을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대로라면 무슨 일을 하든 분명 끝까지 잘 버틸 수 있을 테니.
지금까지 그랬듯, 그리고 지금보다 더 밝은 모습으로 내가 빛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고생했어 나야.
오후 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