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직도 내 영혼이 살아 숨 쉬는 곳

할아버지의 사랑방

by 김호진

할아버지의 사랑방



할아버지께서 머물던 사랑방은 늘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랑방은 골목길에서 집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사랑방은 할아버지께서 사랑방으로 하자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면서 저절로 사랑방이 된 것이다. 사랑방으로 안성맞춤인 이유가 있었다. 우선 우리 집이 마을 한가운데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곳에 모여서 무슨 작당을 해도 주변에서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할아버지께서 아주 좋은 사람으로 평판이 나 있고 인심이 좋다는 것이다.


할머니와 나는 사랑방에 누가 오고 가는지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사랑방에서 하는 일에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마당이나 입구 골목길에서 마주치면 눈인사 정도는 나누는 것으로 보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는 농사일이나 집안의 대소사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외에 일은 서로 이래라저래라 간섭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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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에서 주로 계시는 할아버지는 식사 시간에만 안방으로 오셨다. 제삿날이나 명절, 그리고 손님이 왔을 때도 볼 일만 끝나면 바로 사랑채로 가셨다.


할아버지께서 기거하는 사랑채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사람들로 붐볐다. 온 동네 어른 남자들에게 항시 열려있는 방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사랑방에 간다고 하면 으레 껏 높은 집 사랑방에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농사철에는 저녁에만 모이지만 추수가 끝난 늦가을부터 이듬해 농사일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낮 밤을 가리지 않고 모여 앉아 있었다.

매일 오는 손님들은 아침 숟가락을 놓자 말자 사랑방으로 왔다. 조금이라도 늦은 지는 날에는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루에 앉아서 어정거리다 가야만 했다. 나는 가끔 마루에서 놀거나 마당에서 놀다가 사랑방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았지만 친구 대국이 아버지나 빈내 아저씨 그리고 서부할아버지 이외는 낯선 사람들이었다.

대국이 아버지가 오시는 날은 틀림없는 일요일이었다. 유일하게 김천시에 있는 담배 공장에 다니기 때문에 쉬는 날이면 모습을 보였다. 대국이 아버지께서는 늘 나에게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다가와 큰 손으로 번쩍 안아 들어보곤 했다. 대국이와 나를 비교해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대국이는 나보다 한 달 늦게 태어났다. 그런데 키는 나보다 더 컸다.


나는 손님들이 있을 때 사랑방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은 없다. 사랑방 뜰에는 늘 고무신들이 늘려 있었다. 검정고무신과 오래되어 누렇게 변한 흰색 고무신을 보면 사랑방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밤이 깊어 사랑방 손님들이 하나 둘 골목길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면 멀리서 개 짖는 소리, 바람에 삐거덕 거리는 외양간 문 소리, 쥐들이 마루 밑에서 소란 피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했던 사랑방은 이제 할아버지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탁한 기침소리가 대신했다.


할아버지는 늘 목에서 '가르릉 가르릉'하는 소리가 났다.


밤이 깊어질수록 기침이 점점 더 심해져서 쉼 없이 쿨룩거렸다. 새벽닭 울음소리에 잠을 깼을 때도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는 들렸다. 할아버지 가슴은 지금 얼마나 따가울까. 내 마음도 아팠다. 기침이 멈추지 않는데 '할아버지는 잠을 주무시기는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힘들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한 번도 할아버지께 왜 그렇게 되었는지 묻지는 않았다. 할아버지께 무슨 말을 해 드리고 싶은데 막상 할아버지와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다. 그냥 할아버지가 하는 일을 도와 드리는 것으로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을 때쯤, 할머니께서 푸념하듯이 내뱉는 이야기를 듣고 할아버지 병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할머니 말씀은 이러했다.


할머니께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구례실 마을에서 20 리쯤 떨어져 있는 송문골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열여덟 살에 시집을 와서 처음에는 큰 집에서 살았다고 했다. 대가족으로 3대가 함께 살았다고 한다. 일 념 후 작고 허름한 집을 마련하게 되면서 따로 살게 되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위로 형님이 한 분 계셨다. 나는 '큰집 할부지'라고 불렀다. 큰 집은 마을에서 꽤나 부잣집으로 알려져 있었다. 큰 할아버지는 농사일은 직접 하지 않았다. 대신에 일꾼들이 여러 명 있었다. 한 번은 큰 집에 갔다가 점심을 먹게 되었다. 일꾼들도 마당 멍석에 앉았다. 오전 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들어온 모양이다. 신기한 일은 일꾼들이 먹는 그릇과 밥의 양이었다. 큰 그룻에 그릇 높이보다 높은 밥이 쌓여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밥을 단숨에 뚝딱 해 치우는 것이었다. 나는 일꾼들이 힘이 쎄고 농사일을 잘하는 이유가 밥의 양이라고 결론지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큰 집에서 나올 때 농사 지을 땅을 조금 받았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장남에게 대부분을 물려주고 차남에게는 집을 나올 때 살 집과 먹고 살 정도의 땅만 물려준다고 하였다. 시집을 온 후에 할아버지와 죽으라 일만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지금의 큰 집을 장만하고 땅도 많이 샀다고 하였다. 가래가 끓고 기침이 심하게 된 것은 농사일로 너무 몸을 혹사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따로 살게 된 후에도 할아버지는 큰 집 농사일은 계속 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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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께서 몸을 무리하게 일을 해서 병이 났던 그 해에는 가뭄이 들어서 모내기할 논에 물을 데는 일에 온종일 매달리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형 논까지 모내기 논에 물 대는 일을 함께 하다 보니 몇 날 며칠을 집에 오지 못하고 밤에도 물을 퍼는 일을 하였다고 한다.

그때 이후에 저렇게 골병이 들어서 기침을 심하게 하게 되었다고 했다. 기침이 심하게 나와도 병원을 가거나 약을 먹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고모가 자주 콜록 거리는 것도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도 할머니는 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았다. 늘 큰 집 할머니에게 형님이라고 하면서 예의 바르게 대하였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달리 술을 잘 드시고 담배도 피웠다. 힘든 농사일을 하다 보니 막걸리를 마시지 않고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담배는 할머니 친구들과 일하다가 쉴 때 꽁초 담배를 피우면서 고통을 이겨냈다고 했다. 또 할머니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저녁에는 무조건 친구집으로 가는데 나 때문에 쉽게 나서지 못했다. 내가 잠든 후에야 집을 나섰다.


어떤 날은 내가 초저녁에 잠이 들어 늦은 밤에 깰 때가 있었다. 밤에 혼자 있는 것이 너무 무서워 그럴 때면 나는 늘 소리 높여 할아버지를 찾았다. 잠시 후 사랑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마당을 가로질러 천천히 할아버지께서 오셨다.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께서 사랑방에서 안방으로 오는 날이다. 할아버지는 꼼짝없이 손자 때문에 말없이 계시다가 내가 잠이 든 다음에 사랑방으로 내려가시곤 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께 그런 일이 있는 다음 날도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수없이 반복되었지만 한 번도 그 일로 할머니께 이야기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가축과 농사일 이외의 집안일에 대해서는 일체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사랑방에서 농사를 준비하고 농사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고질병인 천식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가랑가랑하는 숨소리와 함께 폐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기침을 달고 살았다. 기침소리와 함께 사랑방을 지켰다. 논이나 밭에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이웃집이나 가까운 친적집을 가는 일도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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