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사랑방
'높은 집 손자구나'
마을 어른들은 허리를 굽혀 나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하는 말이었다. 흙담 사이의 좁은 골목길에서 어른들과 마주치면 나는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얼른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마을 어떤 곳이라도 어른들을 만나면 먼저 다가가 큰 소리로 인사를 올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골목길에서 만나는 남자 어른들은 무명옷이나 삼베로 짠 옷을 입고 곰방대를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 여자 어른들은 치마저고리에 긴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넘기고 비녀를 꽂고 있었다. 그분들의 늘 환하게 웃었다.
내가 사는 집은 마을의 한가운데 있었다. 골목에서 마당까지 들어가는 길이 가풀막졌다. 다른 집에 비해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늘 '높은 집'이라고 불렀다.
삽작문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없었다. 마당으로 들어서면 왼편에 사랑채가 있고, 정면으로 높은 뜰과 대청마루가 돋보이는 본채가 정남향으로 묵직하게 앉아 있다. 본채는 마루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안방과 부엌이 있고 동쪽으로 작은 방이 하나 더 있다. 투박하지만 오래된 소나무로 만들어진 커다란 부엌문은 문고리가 내 키보다 놓은 높은 곳에 달려 있다. 부엌 뒷문을 지나면 둥글게 돌을 쌓아 올려 만든 우물이 있었다. 우물 옆에 있는 작은 꽃밭에는 매년 키 작은 채송화와 봉숭아 그리고 키 큰 과꽃이 빼곡하게 피어났다. 뒤 뜰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화가 가을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했다.
사랑채 옆으로 소 외양간과 나락을 보관하는 두지, 부엌에서 나오는 재를 모으는 곳, 소금단지와 각종 도구를 보관하는 창고가 딸려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직접 개량한 사랑채는 초가지붕이었고, 본채는 마을에서 몇 안 되는 기와지붕이었다.
마당은 내가 아는 한 다른 집보다 몇 배나 넓었다. 마당에서 두 계단 올라 뜰이 있고 대청마루도 디딤돌을 올라서야 올라갈 수 있다. 마루에 올라서면 나지막이 내려앉은 아랫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두 해 전, 내가 다섯 살 무렵이었을 때 본채의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기와지붕으로 새 단장을 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일이 몇 가지 있었다. 그때 나는 할아버지 사랑방 앞마당에 서 있었다.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기와를 올리는 사람, 지붕에서 기와를 정확하게 자리를 잡으려고 요리조리 재어 보는 사람, 마당에는 마을 어른들이 여럿 모여 구경을 하거나 집 짓는 일을 거들기도 하는 모습이 빛바랜 그림처럼 떠오르곤 했다.
이웃집들은 모두 초가집이었다. 오래된 초가지붕은 짚이 썩어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초가지붕은 2년이나 3년에 한 번씩 새로 엮은 이엉을 얹었다. 이엉을 얹기 전에 전에 깔았던 썩은 이엉을 둘둘 말아서 거둬냈다. 썩은 이엉을 펼쳐 놓으면 닭들이 썩은 이엉 안에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굼벵이를 쪼아 먹기도 했다. 이엉을 제 때 새것으로 덮지 않은 집은 장마철에는 천정에선 물이 뚝뚝 떨어져 낭패를 보기도 했다. 그래서 기와지붕은 초가지붕에 사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자 꿈의 집이었다.
마을은 대략 200호로 인근에서 제일 큰 마을이었다. 마을 앞 신작로를 따라 작은 가게가 여럿 있었는데 진열대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술을 먹을 수 있는 방이 몇 개 있었다. 낮부터 얼큰하게 취한 어른들도 간혹 있었지만 주로 밤이 되면 어른들만의 공간이었다. 가끔 할아버지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가게 뒷방 골방에서 저녁마다 술판과 화투놀음판이 벌어진다고 했다. 그중에서 친구 아버지가 관련된 사건도 있었다. 작년 어느 겨울밤이었다. 도회지에서 온 놀음꾼들과 붙어 돈을 크게 잃었다고 했다. 심지어 땅문서까지 날려버린 사람도 있다고 했다. 돈을 잃은 마을 사람들은 힘 꽤나 쓰는 젊은이로 대개 농사를 크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중에 친구 아버지도 있었다. 도회지에서 온 사람들은 화투를 다루는 솜씨가 좋았다고 한다. 이런 도회지 깍쟁이한테 한 번 물리면 밤 사이 모두 빈털터리가 된다고 했다. 화투판이 끝나고 새벽녘 방문을 나설 때는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인근 마을도 당한 사람이 부지기수라면서 조심하라는 소문이 마을에서 마을로 퍼져 나갔다.
철망으로 가려 놓은 가게 안에는 과자류와 잡화를 진열해 놓고 있었다. 주인은 안채에서 술을 팔거나 집안일을 하기 때문에 가게에는 늘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게 안에 있는 사탕이나 과자를 사서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돈이라는 것을 가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보리나 벼 타작하는 날에 막걸리를 사러 간 적은 있었다. 커다란 양은 주전자를 들고 가면 주인은 막걸리 단지를 보관하는 방으로 데려갔다. 그 방은 낮에도 어둑하고 서늘했다.
나는 본채 안방에서 할머니와 함께 지냈다. 건넌방은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내가 태어나고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살던 방이었다. 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었다. 기름이 말라 가물거리는 등잔불처럼 희미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어머니와 함께 부엌에서 겪었던 일이었다.
그날은 친구들과 일찍 헤어졌다. 늦은 오후 마당으로 막 들어서는데 어머니께서 나를 부엌으로 불렀다. 부뚜막에 놓인 자그마한 단지를 보고 계셨다. 나는 무엇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귀한 단지라는 것은 눈치챘다. 어머니께서는 단지 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깊이 넣었다가 꺼냈다. 그리고 내 입에 넣어 주었다. 너무나 부드럽고 달콤하여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것은 고욤나무 열매라고 했다. 고욤나무는 뒤 뜰 끝에 있는 늙은 감나무 근처에 있었다.
고욤나무 열매는 너무 작고 떫어서 먹을 수 없는 열매로 알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나는지 궁금했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할머니께서 꿀을 조금 얻었는데 고욤나무 열매를 따서 함께 단지에 넣어두었다고 했다. 할아버지 기침에 좋다고 했다. 할아버지 드리려고 찬장 아래 깊숙이 보관하던 것을 어머니께서 오늘 처음으로 꺼내어 먹게 해 준 것이었다. 할머니 몰래 단지를 연 어머니는 자신은 맛을 보지 않았다. 고욤나무 열매가 내 목구멍을 채 넘어가기도 전에 어머니는 얼른 단지를 덮고 찬장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또 한 가지는 섬뜩할 정도로 놀라운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삼촌의 여자친구가 우리 우물에 들어갔던 사건이었다. 그날도 나는 어머니와 부엌에 함께 있었다. 삐거덕 하면서 부엌 뒷문이 열리고 어머니와 나는 뒷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이 열리자 젊은 여자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어머니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말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서야 어머니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그녀가 우물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누가 꺼내주었는지는 모르지만 놀라운 사건이었다.
나중에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나누는 이야기에 의하면 삼촌이 여자 친구 몰래 고향을 떠나 서울로 떠났고, 여자 친구는 삼촌의 연락처를 알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누구 하나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삼촌은 가출하듯이 그렇게 어느 날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던 것이다. 그녀는 아무런 말 없이 그렇게 자기를 버리고 떠난 것에 원망과 그리움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소 있었다. 친구들에게 연줄을 대어 수소문하던 그녀는 기다림에 지쳐 우리 집 귀신이 되겠다는 각오로 우물로 들어간 것이다. 깊은 우물에 어떻게 들어갔다가 또다시 나올 수 있었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