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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니 짜기

08 가마니 짜기

by 김호진

벼베기와 타작이 끝나면 할아버지와 나는 벼 말리기에 매달렸다. 멍석을 깔고 벼를 펼쳐 햇빛을 고르게 받도록 한다. 멍석은 내가 들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서부할아버지가 오는 날에는 쉽게 멍석을 운반할 수 있었지만 말아 놓은 멍석을 뒤뜰에서 가져오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들었지만 털썩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잘 말린 벼는 뒤주에 넣었다. 수매할 것은 가마니에 담았다. 수매할 가마니는 큰 저울이 필요했다. 수매하는 곳에서 요구하는 무게에 맞추어야 했다. 저울은 두 사람이 가마니 양쪽에 끈 달린 갈고리로 연결하여 저울을 끼운다 저울에 긴 봉을 끼워 양쪽에서 두 사람이 번쩍 들어 올려야 무게를 달았다. 세 사람이 한 조가 되어야 벼 가마니 무게를 재고 정확하게 담을 수 있었다.


벼 가마니를 단단히 묶어서 소구루마에 싣고 벼수매하는 큰 창고가 있는 마당으로 가는 날이면 할아버지 구루마에 실린 가마니 위에 앉았다. 할아버지는 짐이 실리면 절대 구루마 위에 앉지 않았다. 돌아올 때 빈 구루마가 되어야 구루마에 앉아서 고삐를 느슨하게 잡고는 걸터앉았다. 소가 힘들어할까 봐 그런다고 생각했다.


벼 수매장은 소구루마와 벼가마니와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러 동네가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차례를 기다리는 것도 힘들지만 수매원들이 가마니를 푹 찔러서 벼알을 관찰할 때가 더 조마 조마 했다. 거기서 벼의 등급이 매겨지고 돈이 달라지기 때문에 긴장상태였다.


구루마에서 소를 떼어내 쉬게 하고 우리는 구루마에 걸터앉아 사람들을 구경에 재미를 붙였다.

할아버지는 다른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통일벼 심은 집은 소출이 더 많다고 하던데 자네 집은 어떤가."

"통일벼가 일반벼보다는 많이 생산되었다네. 나라에서 통일벼만 지어라고 했지 않나"

할아버지는 일반벼는 맛은 좋지만 수확량이 적어 일반벼 농사는 적게 하고 통일벼를 주로 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수매원들이 가마니를 일일 리 찔러보고 벼를 살폈다. 그리고 도장을 퍽퍽 찍었다. 1등급이었다 할아버지는 슬며시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할아버지 옆으로 가서 바지를 잡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 최고등급 맞지요."

"그래 그래 잘 되었다. 할머니도 좋아하겠다."


돌아오는 길은 할아버지 대신에 내가 소 고삐를 잡았다. 사실은 가만히 두어도 소는 집을 찾아갈 수 있었다. 소는 느릿느릿 걷지만 주인을 거부하거나 엉뚱한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공판장 매상으로 일 년 농사가 마무리되면 사랑방 손님들은 아침나절부터 북적이기 시작한다. 새끼 꼬기를 하거나 가마니를 짰다. 타작을 하고 남은 볏짚은 쓰임새가 많았다. 먼저 집집마다 키우고 있는 소의 겨울 식량으로 쇠죽 끓이는 재료였다. 소는 농사일에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소는 겨울에 푹 쉬면서 잘 먹어야 했다. 봄부터 시작되는 농사일로 하루 종일 밭 갈기, 무거운 짐 나르기, 구루마 끌기, 논 바닥 쟁기질 등 온갖 일을 했다. 또한 볏짚은 생활 용품의 재료가 되었다. 각종 가재도구를 만들거나 가마니 짜기, 새끼줄을 만드는 재료가 되었다. 짚으로 가재도구를 잘 만드는 것도 유능한 농사꾼이 가져야 할 기술이었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가마니 짜는 틀은 일제침략기에 일본 사람들이 가지고 오면서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고 했다. 가마니 짜기는 몇 가지 준비가 필요했다. 볏단을 풀어 볏짚을 손으로 추리면서 손질하고 다시 볏단을 만든다. 손질한 볏단에 물을 뿌려 두었다가, 밑 부분과 줄기를 쳐서 부드럽게 만든다. 가마니 틀이 날줄로 맬 새끼를 가늘게 꼬는 일 등 많은 일이 있었다.


가마니 짜기는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가마니를 짜는데, 한 사람은 가마니틀 정면에 앉아서 바디를 위로 들어서 앞으로 당겨 날줄이 벌어지면 가마니틀 옆에 앉은 사람은 얇은 대나무 바늘 끝에 볏짚 밑 부분을 약간 접어서 바디 밑으로 밀어 넣고 대나무 바늘을 빼면 바디를 밑으로 내려치고, 다시 바디를 들어 뒤로 밀면 대나무 바늘만 넣고, 바디를 잡은 사람이 왼손으로 고리에 걸어주는 볏짚을 당겨서 빼면, 바디를 내리치면서 가마니를 짰다. 두 사람이 손발이 맞아야 잘 짤 수 있었다.

할아버지 사랑방 손님 중에는 하루에 열 장을 짤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어른도 있다고 했다. 나는 사랑방이 비어 있는 시간에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갔다. 가마니 틀이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눈치를 챈 할아버지께서는 함께 만들어 보자고 했다. 나는 바늘로 짚을 밀어 넣고 할아버지께서는 바디를 내리쳤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는데 사랑방 손님들이 오는 바람에 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마니는 내년 농사에 필요한 중요한 용품이다. 쌀이며 보리며 콩과 고구마 등 생산되는 대부분의 농산물은 가마니에 담겨 옮겨지거나 보관되었다. 가마니 짜는 사랑방 손님은 자기 집에서 물을 뿌려 눅눅해진 짚단을 옆구리에 끼고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겨울밤 호롱불 아래서 새끼 꼬기와 가마니 짜기는 시작되고 북한군이 왔을 때 부역 갔던 이야기부터 농사일, 젊었을 때 이웃 동네 사람들과 싸웠던 일, 나무하러 갔다가 귀신을 본 일 등 이야기들은 끝없이 쏟아져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할아버지는 멍석 짜기, 소쿠리 만들기, 봉태기 만드는 솜씨도 사랑방 손님들 뿐 아니라 마을에서도 알아주었다. 할아버지께서 만든 멍석이나 소쿠리는 오래 써도 사이가 벌어지거나 헤지는 경우가 적어 오래 사용하였다.

할머니께서는 가끔 나에게 너도 할아버지 닮아서 손재주가 좋을 거야 라며 할머니를 도와 일을 할 때면 늘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칭찬을 들을 때마다 나는 우쭐해지고 기분이 좋아졌지만 할머니 일을 돕다가도 아이들이 골목길에 노는 소리가 들리면 냅다 뛰어나갔다. 골목길에서 재국이와 석수와 어울려 놀다가 싫증이 나면 곧장 신작로 달려 나가 마을 아이들과 어울려 온 마을을 헤집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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