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와 결핍 사이

by 김호진

풍요와 결핍 사이


넘치는 것들

회색빛 빌딩들이 하늘을 잠식하고
자동차들은 길 위에서 숨을 토해낸다
음식물은 쓰레기통으로 향하고
옷장은 입지 않은 옷들로 가득하다

플라스틱이 바다를 떠돌고
비닐봉지가 바람에 날린다
택배 상자들이 문 앞에 쌓이고
농약이 스며든 땅은 메마른다

붉은 고기가 접시에 넘치고
술잔은 밤새 비워진다
암세포가 몸속에서 증식하고

욕망은 끝없이 자라난다

시기가 마음을 좀먹고
폭력이 거리를 배회한다

전쟁의 소음이 평화를 깨뜨리고
무기들이 창고에 쌓인다

주장만 난무하고
약물이 혈관에 스며든다
정치인들의 말은 공허하고
종교는 권력을 탐한다


사라지는 것들

새들의 노래가 점점 잦아든다
시냇물이 콘크리트에 묻히고
꿀벌들이 하나둘 사라진다
책장 넘기는 소리가 희미해진다

북극곰이 얼음을 찾아 헤매고
양심이 돈 앞에서 무너진다
사랑은 조건부가 되고
겨울 눈이 내리지 않는다

메뚜기 소리가 그리워지고
진심 어린 미소가 귀해진다


사이에서

우리는 과잉과 결핍 사이에 서 있다
가진 것은 많지만 채워지지 않는 마음
버릴 것은 많지만 붙잡고 싶은 것들

언제부터였을까
많이 가진 것이 풍요라고 착각했던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적게 가진 것이 가난이라고 여겼던 것은

진정한 풍요는
새벽 공기 한 모금
아이의 순수한 웃음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손을 잡고 걷는 고요한 시간


이 모든 것들이
점점 사라져간다
우리가 쌓아 올린
너무 많은 것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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