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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진 Sep 13. 2023

왕쑥뜸의 비밀

산사에서 180일

왕쑥뜸의 비밀




“하늘에 구름만 보여도 걱정입니다. 지긋지긋하네요 이놈의 비. 올해는 하루 걸러 비가 오니 일을 할 수 있어야지. 허참!”


산책길에서 산사로 들어서자 수돗가에 앉아서 배추와 무를 다듬던 김처사는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연거푸 푸념을 늘어놓았다.


김처사는 비가 오면 배수관이 제대로 설치가 안된 절 주변에 토사가 내려 법당 뒤안과 옆으로 흙이 파여 보기 흉하게 되었다. 마당과 길을 다듬는 것은 모두 김처사의 일이기 때문에 장맛비는 김처사에게 달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나는 김처사에게 작업할 때 도와드리겠다고 말했다. 김처사는 소리 내어 웃으며 선생님은 무리하면 안 된다면서 쑥뜸에 매진해 보라고 했다. 그때 법당 옆 요사체 문이 열리고 스님이 대웅전 앞 돌계단을 따라 내려오셨다. 


얼른 스님께 두 손 모아 인사를 드렸다. 스님은 반갑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일단 차 한잔 합시다."


스님은 앞장서 본채로 들어갔다.

옆에 있던 김처사가 내 옆구리를 찌르며 얼른 들어가라고 했다. 

"오늘 스님께서 쑥뜸의 비법을 전수할 겁니다. 나는 하던 일을 마저 하고 들어가겠습니다."


순간 나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슨 대단한 비법이 있지는 않겠지만 호기심이 생겼다. 스님은 좌정하고 따뜻한 차를 내어 주셨다. 스님은 내 몸의 상태를 물었다. 잠시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해 드렸다. 

스님은 내 말이 끝나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쑥뜸은 당장 암이나 어떤 질병을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현대의학이 제공하는 치료는 의사에게 맡기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몸의 기능들을 활성화하여 좀 더 빠르게 회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쑥뜸은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치료 목적의 민간요법으로 전해져 오고 있었지요."


마침내 비법을 전수받는다는 생각에 뭔가 큰 선물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쑥뜸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왕쑥뜸으로 큰 쑥을 태우면서 직접 원하는 장기 위에 올려 쑥의 훈기와 열기를 받게 하는 방법으로 효과가 빠르게 나타난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직접 제작을 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이지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방법이라고 했다. 이 방법은 좋은 황토흙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다행히 산사 근청에 황토흙이 있다고 했다. 스님은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준비물을 말씀하셨다.


쑥뜸의 비법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몇 가지 준비를 하고 시작하면 되는데 중요한 것은 얼마나 지속적으로 하느냐. 얼마나 마음을 모아 정성을 들이느냐. 그리고 기술적으로 어떤 부분을 얼마나 뜸을 떠느냐였다.

스님은 직접 그림을 그려 가며 쑥뜸을 어떤 장기에 어떤 순서로 하는지를 알려 주셨다. 

준비물은 이틀 만에 모두 구입을 하였다. 


우선 왕쑥뜸은 굵은소금을 냄비에 넣고 가열하여 뜨겁게 데운다. 소금을 데워지는 동안 쑥을 준비한다. 우선 공깃밥 그릇 크기의 그릇에 쑥을 눌러 담는다. 뒤집어 꺼내면 쑥뜸은 완성된다. 데워진 소금은 누을 자리에 까는데 등이 닿을 부분에 고르게 깔고 천으로 덮는다. 그리고 쑥뜸통에 나머지 소금을 넣고 소금 위에 쑥을 놓는다. 쑥뜸통은 지름이 30센티미터 정도의 둥글고 양쪽이 뚫린 양철판에 한쪽을 천을 대어 고정시켜 만들었다. 작은 심지를 서너 개 만들어 불을 붙이고 왕쑥뜸 위에 올린다. 이제 자리에 누워 쑥뜸통을 원하는 자리에 올리면 된다. 쑥 타는 연기가 많이 나기 때문에 배기통은 필수였다.


두 번 째는 전통적으로 전해져 오는 방법으로 준비가 번거롭지만 좀 더 과학적인 방법 같기도 했다. 

황토흙, 참쌀가루, 콩가루, 소금, 밀가루를 준비하고 스님의 지시에 따랐다.


찹쌀가루에 소금을 뿌리고 물을 부어 끓이면서 죽을 쑤듯이 천천히 저어라고 했다. 그리고 황토흙을 퍼왔다. 큰 대야에 황토흙을 놓고 찹쌀풀을 넣었다. 그리고 밀가루 콩가루를 넣고 반죽을 해 나갔다. 학교에서 찰흙 공작 시간 같았다. 스님이 먼저 만들어 보여주었다. 견본을 두고 스님을 요사체로 가시고 나는 찰흙의 촉감에 감응하면서 즐겁게 만들었다. 서른 개를 만들자 재료가 떨어졌다. 말리는 작업은 김처사가 고추 말리는 건조기에 넣어 주었다. 내일 건조기에서 꺼내 단단히 굳을 때까지 햇빛에 말리면 된다고 했다. 


다음 할 일은 압축쑥을 만드는 일이었다. 압축하는 기계는 스님이 몇 년 전에 제작한 것으로 산사로오면서 가져와서 보관하고 있었다. 압축된 쑥은 여러 개를 만들어 두고 사용했다. 


선공 스님이 전수해 준 쑥뜸은 하루 일과 중에 중요한 일이 되었다. 

쑥뜸을 뜨면서 호흡에 집중했다. 잡념을 버리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숲 속의 풀벌레와 새, 수많은 곤충들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았다. 자연은 정말 신비롭고 놀라움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느낄 때쯤이면 쑥뜸은 재가 되어 식어갔다. 


선공 스님과 만남은 선물같이 내게 찾아왔다. 삶은 참 드라마틱하다. 몸의 기운을 깨워주는 쑥뜸은 선조들이 몸을 살리는데 활용한 전해 내려오는 비법 중에 비법이다. 자연의 힘을 빌어 몸의 기운을 회복하는 자연치유였다. 


조선 말기의 의학자 동무 이제마(1838 ~ 1900)는 어진 자를 질투하고 능력 있는 자를 질시하는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천하의 대병이요(투현질능妬賢嫉能) 현명한 자를 대접하고 선한 자를 존중하는 인간의 마음이야 말로 천하의 대약이다(호현낙선好賢樂善)이라는 했다. 인간에서 나타나는 만병의 원인이 인간의 몸에서 비롯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미치는 영향도 크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나는 그동안 자연의 섭리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숲은 가까이 갈수록 더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산들바람도 나의 침묵과 고독을 즐기는 것을 아는지 산사로 날아와 속삭임과 향기를 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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