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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진 Sep 14. 2023

매가 된 갈매기

산사에서 180일

매가 된 갈매기



지상에서 할 일을 다하고 떨어진 낙엽은 발아래서 바스락 거리고, 폭우가 지나간 비탈진 길은 짐승이 이빨을 드러내 듯이 돌이 삐죽삐죽하게 솟아 있었다. 

풀섶에서 나온 새끼 뱀이 날카로운 돌을 조심스럽게 넘어 숲으로 사라졌다. 멀리 산 허리에서 날개 큰 새가 여유 있는 날갯짓을 하면서 크게 원을 그리며 날았다. 산책길에서 산사로 들어가는 길에서 하늘을 보았다. 날개 큰 새는 어느새 산사의 하늘에 와 있었다.

 


배추와 무를 심어 놓은 밭에서 일을 마치고 막 나오는 김처사에게 하늘을 보라고 손짓했다. 김처사는 검게 그을린 이마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매 같은데요. 맹금류에 속하는 매 말입니다." 

"저 놈은 가끔 오는 놈인데 한 참을 배회하다가 먹잇감을 찾지 못하면 산을 돌아 사라진답니다."


김처사는 매를 잘 아는 사람처럼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매는 인간의 시력보다 8배나 좋아서 100미터 상공에서도 땅 위의 쥐 나 꿩 등을 볼 수 있지요. 특히 사냥할 때 먹이를 향해 땅으로 급강하하는 속도가 엄청납니다. 시속 300킬로미터 이상이라고 합니다. 종종 사람들은 매의 눈으로 본다고 하지 않습니까."



영국에서는 항공기술을 연구하면서 매를 많이 관찰했다고 한다. 바람이 심하게 불 때 하늘에서 비행기가 균형을 잡는 기술과 착륙할 때 기술 등은 매의 나는 기술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매보다 날개가 큰 독수리는 큰 날개를 펴서 한 번 기류를 타기 시작하면 날개 짓을 거의 하지 않고도 오랜 시간 비행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패러글라이딩이 기류를 타고 상승하는 것은 바로 새가 날개를 이용하여 창공을 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 아닐까. 


내가 처음 매를 본 것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어린 시절이었다. 그날은 할아버지와 마당에서 닭 모이를 주다가 문득 하늘에 날고 있는 큰 새를 보았다. 하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서 있는 나를 본 할아버지께서 빙빙 돌고 있는 새가 바로 매라고 했다. 

할아버지께서 매의 움직이는 방향을 보면서 말씀하셨다.


"저 놈이 우리 집 닭을 노릴지도 몰라" 


갑자기 마당에서 한가롭게 모이를 쫓고 있는 닭들이 매의 목표물이 될까 겁이 덜컥 났다. 닭들을 닭장으로 몰아넣으려 했지만 닭은 도리어 나를 피해 뒤뜰로 모두 후다닥 뛰어가버렸다.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나에게 할아버지께서는 나를 더 놀라게 하는 말씀을 하셨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어린 암탉을 낚아채는 것을 두 눈으로 본 적이 있단다."


그날은  다행히 매가 마을을 살피다가 사냔을 포기하고 산을 휘돌아 사라졌다. 닭들은 이 위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화롭게 먹이를 찾고 있었다. 땅을 파헤치며 뭔가를 쪼아 먹었다. 여전히 장닭은 암탉을 쫓고 암탉은 소리소리 지르며 내달리면 푸더덕거렸다.


 


높은 하늘에서 자유를 만끽하면 여유롭게 날고 있는 매도 깃털 없는 시절이 있었다. 깃털이 없는 새끼 새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둥지를 떠나지 못한다. 오로지 어미에게 모든 것을 의지한 채 살면서 끊임없이 날갯짓을 하면 날 준비를 한다. 새끼 매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창공으로 날아오르는 모험을 해야 한다. 어미 새의 날갯짓을 보고 자신의 날개를 펼쳐 퍼덕여 보는 수련은 자유로운 비행을 위해 극복해야 할 고난이요. 끊임없는 단련이다. 


아브라함 링컨은 "내게 나무 한 그루를 베는데 6시간이면 주어진다면 나는 먼저 4시간 동안 도끼날을 날카롭게 갈겠습니다."라고 했다. 어미처럼 날기 위해서 새끼새는 준비가 필요하다. 그 준비는 고통의 시간이기도 하고 살아남기 위한 삶이 과정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고난의 단련을 극복한 새끼 매는 하늘을 나는 자유로운 비행의 맛을 알게 된다. 

첫 경험은 누구나 두렵다. 

위험한 일이다. 

결국 새끼 매는 높이 날아 공포에 떨며 잔뜩 웅크렸던 자신을 뒤돌아 보며 미소 지을 것이다. 어린 매는 나는 기술을 연마하고 사냥기술을 익혀 하늘과 숲의 왕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가 완벽한 매가 되는 길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스스로의 힘으로 가보는 것이다.


 


1970 년대 완벽한 비행을 시도하면서 깨달음을 얻은 한 마리 새가 있었다. 미국 작가 리처드 바커는 100쪽짜리 소설 '갈매기의 꿈'을 썼다. 


주인공은 조나단 리빙스턴이라는 갈매기다. 조나단은 대부분의 갈매기들이 비행이 먹잇감을 위해 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조나단은 완벽한 비행 그 자체를 위해 연습을 거듭했다. 빠른 속도로 수면을 향해 하강하다가 순간 멈춰 수평으로 나는 고도의 기술을 연마한 것이다. 조나단은 수많은 실패에 굴복하지 않았다. 실패가 없는 완벽이나 성공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조나단은 다른 갈매기처럼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부스러기나 배 위에서 썩어가는 물고기를 먹는 비참한 갈매기가 되기 싫었다.


마침내 조나단은 시속 340km로 하강할 수 있게 되었다. 

조나단은 이제 매가 된 갈매기로 다시 태어났다. 

너무 기쁜 나머지 동료 갈매기들에게 새로운 비행기법을 선 보였다. 그러나 조나단의 이 새로운 비행기술은 동료 갈매기들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고 만다. 심지어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추방시켜 버린다. 


그러나 조나단은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멀리 떨어진 절벽에서 홀로 연습했다. 

그는 슬펐다. 

자신이 추방되어서가 아니라 다른 갈매기들이 스스로 완벽한 비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조나단은 비행을 연습하면 할수록 물고기를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잡을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결국 비행을 위한 비행 훈련이 물고기를 더 많이 잡을 수 있는 실용적인 기술이 된 것이다. 조나단은 자신이 평범한 갈매기가 아니라 완벽한 자유와 비행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더 잘 날 수 있는 방법은 언제나 있다. 다만 그것을 시도하느냐, 시도하지 않느냐의 차이 일 뿐이었다. 

완벽이란 완벽 그 자체가 아니라 완벽을 향한 열정과 노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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