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호진 Sep 15. 2023

줄탁동시啐啄同時

산사에서 180일

줄탁동시啐啄同時



쑥뜸을 뜨는 동안 갑자기 창밖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쏟아졌다. 

소낙비에 작은 벌레들의 노랫소리도 사라졌다. 굵은 빗줄기는 순식간에 흙탕물을 만들어 허술한 쑥뜸방으로 밀려 들어왔다. 


여름날 갑자기 형성된 먹구름은 한 바탕 비를 뿌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뚝 그친다. 비가 그치자 대지에 숨어 있던 수많은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고 혼란스럽다. 어쩌면 내 마음과 같다.


 어제는 병원에서 면역주사를 맞고 왔다. 암세포에 대항하는 나의 백혈구의 킬러세포들이 기운차게 나서기를 기대해 본다. 쑥뜸을 끝내고 밖으로 나와 멀리 흰 띠를 두른 산들을 보았다. 산사 마당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을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구름 위에 홀로 서 있었다. 



멀리서 장탉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암탉이 도망 다니면서 푸덕이는 소리와 함께 몇 년 전 휴가 기간에 시골에 있는 지인의 집에서 며칠 살았던 때가 떠 올랐다. 한옥에서 살고 있는 지인의 집에는 닭이 많았다. 낮에는 밭과 과수원에 파헤치며 벌레를 잡아먹거나 풀을 뜯어먹기도 하고 씨앗을 먹으며 놀다가 저녁이 되면 닭장으로 모여들었다. 닭장에는 30여 마리의 닭들이 집단생활을 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었다. 


나는 이른 아침을 먹고 오전 산책을 즐겼는데 어느 순간 산책 가기 전에 꼭 닭을 관찰하는 것이 하루 일과 중에 하나가 되었다. 닭들의 움직임과 단체 생활에 의구심과 호기심이 생겼던 것이다.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부리를 움직이고 발로 땅을 파헤치는 모습, 알을 낳고 있는 모습, 수컷과 암컷의 관계, 우두머리는 누굴까? 많은 것이 궁금했다. 

몸집이 크고 화려한 깃털을 가진 수탉은 '장탉'이라고 부른다. 장탉은 벼슬도 시뻘겋게 커서 위엄 있게 보였다. 장탉의 벼슬은 정말 아름답다. 우리말에 관직에 나아가는 것을 "벼슬한다"라고 했는데 이 말도 닭 벼슬에서 생겨난 말이다.

 

닭을 관찰한 지 이틀 만에 나는 우두머리 닭을 발견했다. 거대한 몸집과 화려한 깃털로 치장을 한 장탉이 닭장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위엄 있게 서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먹이를 먹지 않고 높은 곳에서 내려오질 않았다. 다른 수컷이 자리를 비울 때만 잠시 내려와 먹이를 급하게 먹고 후다닥 날아올라 가장 높은 자리에서 주위를 살피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에 주인장에게 아침의 일을 이야기했다. 


"허허, 그놈은 왕이 아닙니다. 현재 왕에게 싸움에서 밀리기 전까지 왕이었지요."


주인장은 나의 표정이 놀라움과 신기함으로 변하는 것이 재미있는지

"높은 곳에 있는 이유는 내려오면 여러 수컷들에게 무자비하게 공격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놈이 왕이었을 때 권력 행사를 심하게 했거든요. 친구로 지내던 수컷들과 어린 수컷들에게 군림하면서 몹쓸 짓을 많이 했지요. 지금 호되게 당하고 있는 것은 인과응보죠. 현재 왕과 수탉들이 당한 만큼 갚아 주고 있는 셈이죠"


주인장의 그다음 말이 나를 놀라게 했다.

며칠 후 닭의 수를 정리하려고 한다고 했다. 어차피 우두머리였던 수탉은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닭장에 비해 개체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암탉 수에 따라 수탉의 수를 조절해야 큰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다음날 아침에 닭장에서 갔을 때도 거대한 몸집을 가진 수탉은 높은 곳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우두머리라고 생각했던 수탉이 갑자기 불쌍해 보였다. 위풍당당하게 보이던 그 모습 대신 초라하고 처연한 존재로 보였다. 그러고 보니 닭장에서 나와서도 한쪽 귀퉁이 있거나 무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을 때 몸을 조심하고 베푸는 삶을 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닭장을 내려왔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시골집에서 닭을 길러 본 적이 있다. 달걀은 할머니께서 달걀찜을 만들었고 일 년에 한두 번씩 닭백숙을 먹기도 했다. 암탉은 알을 자주 놓았다. 암탉은 알을 놓는 자리가 일정하게 있었다. 짚단 위에 자리를 만들거나 할머니께서 만들어 처마 밑에 매달아 둔 곳은 알고 놓았다. 그곳은 나중에 알을 품는 곳이 되었다. 암탉은 알을 품고 싶다는 표현을 했다. 자꾸 알을 낳은 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다. 알을 벌써 우리가 다 가져가 버렸으니 품을 알은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알을 품는 동작을 취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모아둔 알 중에서 15개 정도의 알을 품도록 했다. 


품은 지 20일이 지나면 부화가 시작되었다. 알을 품고 있는 어미의 따스한 체온가 깃털이 딱딱하고 차가운 알에 생명을 주었다. 며칠에 한 번씩 둥지를 벗어났다. 잠시 먹을 것과 배변을 하고는 바로 둥지로 올라가 알을 품고 자리를 지켰다. 


암탉은 배고픔을 참아내며 곧 태어날 병아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는 암탉의 체온과 참고 견디며 어려운 시간을 극복한 결과로 탄생한 생명이다.


알에서 깨어나는 병아리는 어미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한 줄기 빛도 없는 어두운 알 속에서 병아리는 바깥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연약한 부리로 알껍질을 쫓는다. 알 속 병아리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암탉은 밖에서 알을 쪼아 병아리를 세상으로 나오게 도와준다. 여기서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한자 말이 생겨났다. 줄啐은 알에서 부화하려는 병아리가 알을 깨려고 내는 소리고 탁啄은 어미닭이 알 껍질을 쪼아 병아리의 탄생을 도와주는 일을 말한다. 줄탁동시는 병아리와 어미닭이 서로 교감과 협동을 통하여 상생하는 것을 말한다.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는 어미닭의 보호아래 자란다. 어미닭은 먹이가 많은 곳으로 병아리를 데리고 다닌다. 이때 병아리는 두 종류의 울음소리를 낸다. 날카롭게 내는 '삐악삐악'하는 소리는  어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형제 병아리들에게 무시된다. 대신에 먹이를 쪼면서 내는 짧고 경쾌한 소리는 형제 병아리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와 흩어져 있던 형제 병아리들을 먹이 있는 장소로 모이게 할 수 있다. 이런 이타적인 병아리 행동은 함께 태어난 형제임을 나타낸다. 


정말 대단한 일은 엄마 닭이 새끼들을 밀어내는 시간이 올 때이다. 병아리는 한 달 반 가량 지나면 어미는 새끼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쪼아댄다. 새끼들을 독립시키기 위해서다. 어미의 할 일은 끝난 것이다. 병아리가 자라는 동안 엄마닭은 병아리를 지키는데 목숨을 걸었고 먹이를 찾아주었다. 자신의 몸보다 병아리를 더 아끼고 보호했다. 이제 떠나보낼 시간이 온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독립은 가혹하다. 지체하는 것이 없다. 단호하다.


암탉은 다시 털이 빠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 엄마닭이 될 준비를 한다. 이것이 암탉의 삶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땡볕에 지렁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