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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진 Sep 17. 2023

소유적 삶 존재적 삶

산사에서 180일

소유적 삶과 존재적 삶



가을은 죽음과 더불어 탄생을 준비하는 축복의 시간이다. 대지로 떨어진 낙엽은 숲의 아래에서  해체되어 또 다른 모습으로 생명 활동을 도모한다. 

두터운 지방층이 필요한 짐승들은 겨울 준비에 바쁘다. 


풀잎색으로 자신을 위장했던 방아깨비가 갈색으로 변하고 몸은 점점 굳어져 가고 있다. 몸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고 있지만 방아깨비는 신이 주신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처럼 홀가분하게 떠날지도 모른다. 

방아깨비는 이미 수많은 알을 땅 속 여기저기 숨겨 놓았다. 죽음을 기다리는 방아깨비는 이제 미소 지으며 내년 여름에는 자신을 닮은 수많은 방아깨비들이 풀밭을 뛰어다니는 세상을 상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무는 자신의 성장의 고통을 나이테에 고스란히 남긴다. 나이테가 가늘다는 것은 성장이 없던 겨울. 

굵은 곳은 봄 여름을 지났다는 증거다. 


나무도 스트레스로 성장을 멈추기도 한다는 전문가의 이야기가 있다. 

소나무의 나이테가 몇 년 간 가늘게 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연도를 추적해 보니 놀랍게도 그 기간은 일제침략기였다고 한다. 사람들의 감정과 기운이 나무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다. 나무는 나이테로 대화를 한다. 나이테는 나무의 영양상태, 건강상태, 기후의 변화와 스트레스까지 말해준다. 자연은 자세히 보고 듣는 사람에게 자신을 열어 보인다. 마음의 문을 열고 자연에게 다가가 보라. 모든 것이 신비하고 기적임을 알아챈다.




인간의 마음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작아진다. 나이가 들면 몸과 마음도 함께 변한다. 소유욕을 버리면 마음도 넓어지지만 인간의 마음은 소유욕을 쉽게 놓아버리지 못한다. 종종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면 깨닫는 경우가 있긴 하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하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이해한다면 사랑할 수 있다. 이해는 욕심 없는 마음에서 일어난다.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같아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지금 현재를 소홀히 하면서 오지도 않은 미래만을 생각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현재에 충실하라. 지금 이 순간의 나와 나의 일을 사랑하라.


삶의 목적이 자기 자신과 높은 곳을 향할수록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얽매이고, 욕망에 발이 묶여 타락한다. 타인을 진심으로 위하는 사람의 삶은 단출하고 소박하다. 그것을 너무나 잘 보여 준 사람들이 있다. 


여기 소록도의 두 수녀 이야기가 있다.

가난하고 상처 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하느님과 함께 고난의 삶을 살고자 한 오스트리아의 두 소녀가 있었다. 두 소녀는 수녀가 되었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자 했다. 그녀들은 아시아의 작은 나라로 가기로 결심한다. 그녀들이 도착한 곳은 가족에게도 내 쫓김을 당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거리의 부랑자처럼 살다가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나병환자들이 사는 곳. 


바로 소록도였다. 


지구 반대쪽에 있는 먼 이국 땅에서 두 수녀는 피부색도 다르고 너무나 가난하여 치료제도 구할 수 없는 작은 섬으로 스스로 찾아왔다. 그녀들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소록도 사람들에게는 행운이었지만 그 두 수녀에게는 고단한 시간의 시작이었다.

 

두 수녀는 나병환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했다. 두렵고 앞이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로 두 수녀는 하느님과 함께 그곳에 있었다. 두 수녀는 떠나는 날까지 그들을 어루만지면서 함께 했다.

세월은 빠르게 흘렀다. 시간은 두 수녀에게도 젊음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두 수녀는 할머니가 되었다. 

세월은 하느님도 천사도 어찌할 수 없었나 보다. 


결국 두 수녀는 편지 한 장 남기고 떠나기로 결심한다.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없게 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혹시 짐이 될까 두려웠다. 


그녀들은 조용히 바다 건너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곳, 가족들과 함께 꿈 많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으로 돌아갔다. 

아름다운 이야기다. 


천사가 있다면 그들이 천사가 아닐까. 


신과 천사는 우리 가까이에는 늘 있었다. 

단지 우리가 눈이 멀어 볼 수 없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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