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ditor Note

굿바이 에디터

인생에서 날숨처럼 빠져나간 에디터라는 직업에 대하여

by clever

브런치 오랜만에 접속했다. 1년 가까운 시간동안 브런치를 켜지 않은 건 아끼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심리적으로 쫓기는 글을 쓰는 게 탐탁지 않았다. 브런치에는 여유 있고, 차분하고, 진심이 묻어나는 글을 남기고 싶었다.


지난 1년여는 바빴다. 회사가 인수합병되어 새로운 조직에 흘러 들어갔고, 해당 조직의 문화와 사람들, 기타 모든 '새것'들에 적응해야 했다. 새것 좋아하는 이들은 신나게 박수를 쳤다. 회사 규모가 커졌다며 축하한다는 연락도 받았다. 죄다 사정 모르는 인간들이 하는 소리라 신경 쓰지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명함'은 내게 중요치 않았다. 회사 규모가 커진 것은 사실이나 개인의 스트레스도 함께 커진 것이 문제였다.


잡지 에디터로 10년 넘게 살아왔다. 콘텐츠를 기획한 뒤 점차 발전시켜 실체화해내는 게 내 주특기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번뜩이는 기획을 해내며(개떡 같은 기획도 많이 하지만), 쏟아지는 피드백을 맨몸으로 받아내는 건 에디터 직무의 숙명이다. 그건 성과가 수치로 보이는 마케팅과 결이 다르다. 에디터는 매체의 매출 상승을 이끄는 데 목적을 두기보다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물론 조회수나 매출이 늘면 좋겠지만 단지 그것만을 위해 콘텐츠를 기획하진 않는다. 콘텐츠 마케터처럼 이슈, 트렌드, 상품 및 서비스를 다루지만, 너무 상업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여느 신문의 논설문처럼 편향된 보도도 지양한다. 기자와 콘텐츠 마케터의 중간쯤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는 게 잡지 에디터다.


포지션이 애매하여 에디터가 사양 직군으로 불린지는 꽤나 오래됐다. 그럼에도 변치 않는 건 에디터가 미디어에 속한다는 점이다. 에디터는 언론인이며, 언론은 그 역할에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마케팅 직군과 평가 기준을 달리해야 한다. 하지만 감성보단 이성, 인풋 대비 아웃풋의 효율, 주관보단 객관성이 강조되는 요즘 세상에서 언론의 특수성이라는 건 쓸데없는 것으로 분류되는 추세다. 콘텐츠는 당연히 높은 조회수와 실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나 역시 그런 환경에 있었다. 새롭게 바뀐 회사는 에디터를 일반 사무직과 같은 인사고과 시트로 평가했다. 콘텐츠의 기획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으니, 조회수와 기사 생산량이 새로운 평가의 기준이 됐다. 조회수는 에디터를 집어삼켰다. 점점 기획은 조회수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고, 잡지의 색깔이나 철학은 사라져갔다. 그저 조회수를 높이는 기획만이 살아남았다. 재미없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기사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영혼 없는 기사를 쏟아냈다. '현타'는 언제부턴가 늘 곁에 있는 그림자 같았다.


조회수의 노예가 되면서 온라인에 치중하게 됐다. 조회수를 알 수 없는 종이 잡지로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회사는 인쇄매체를 두고 '들어가는 노력 대비 결과가 별로'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더는 디자인에 들어가는 공력이나, 음절 단위로 쪼개 진행하는 교열을 위한 노력, 기타 디테일한 편집 과정 등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잡지의 종말'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실적주의 세태에 내 직업은 가망 없어 보였다. 가장으로서 막막했고, 지난 10년의 세월이 통째로 날아간 기분이었다. 이제 뭘 해서 먹고살지? 답답함에 신경마저 저릿했다.


네임드 회사, 다양한 복지 등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건 이러한 사정 때문이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심했고 다양한 시도를 했으며 한시도 필사적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명함이 그럴듯해서 모르는 이들은 여전히 축하 인사를 건넸지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직하려 밤낮없이 노력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취업시장이 얼어붙었다더니 내가 그 한복판에 놓일 줄이야.


에디터는 경력 시장에서 날카롭지 못했다. 무딘 칼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10년 넘는 경력을 버려서라도 새 비전을 찾아야 했다. 절실했다. 하지만 절망이 반복됐다. 맷집이 한계에 달해 어디로든 자빠지려는 순간, 기획 파트로의 입사 제안을 받았다. 내 커리어와 진심을 알아주는 회사였다. 인연은 정말 있었다!


전직에 성공했기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쏟아내리라는 결심도 단단히 굳혔다. 지난 10년의 세월은 분명 헛되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할 차례다. 지금 이 순간, 의욕이 충만하고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하여 산이라도 통째로 뽑아버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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