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맛 여행
가는 계절을 막을 순 없다. 가을로 한발 성큼 들어선 한반도에서 맛으로 유명한 곳만 뽑았다. 이번 가을은 피로한 몸과 마음을 달래줄 보양 여행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니까.
참고도서 <하루 여행 하루 더 여행>(최갑수, 보다북스)
강화도는 한강과 임진강, 그리고 예송강의 민물과 바다의 짠물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다. 환경에 예민한 새우는 염도가 적당한 강화 앞바다에서 가장 많이 난다. 그 때문에 이맘때쯤 강화도 앞바다엔 새우잡이 어선으로 가득 찬다.
몸집이 큰 대하는 여름철에 빠르게 성장한 후 8월 말부터 11월까지 연안으로 유입된다. 이때 살이 통통하게 오르며 맛과 영양이 가장 좋다. 한때 값이 싼 흰 다리 새우를 대하 대신 내기도 해 문제가 되었는데, 구별법은 간단하다. 머리에 달린 뿔이 머리보다 길면 대하, 짧으면 흰 다리새우다. 대하를 맛있게 먹는 법은 소금구이다. 굵은소금을 깔고 새우를 굽는데, 지나치게 구우면 맛이 떨어진다. 머리는 따로 모아두었다 라면을 끓여 먹으면 국물 맛이 시원하다. 본디 어두일미라고 했는데, 새우가 그렇다. 머리만 튀겨 먹어도 맛있다.
메밀을 많이 재배하는 강원도는 메밀 요리가 발달했는데, 막국수는 만들기 쉬울뿐더러 먹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 별미로 꼽혔다. 막국수는 면부터 일반 국수와 다르다. 밀가루로 만든 보통 국수는 반죽을 치대 점성을 높여 면을 뽑지만, 막국수는 글루텐 성분이 거의 없는 메밀을 뜨거운 물로 반죽한 뒤 국수틀에 넣고 눌러 면을 뺀다. 그렇게 뽑은 면에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부어 먹는 것이 바로 막국수다. 막국수의 ‘막’은 ‘지금, 바로, 마구’라는 뜻이다.
춘천은 막국수의 고장답게 막국수를 주제로 한 각종 콘텐츠가 즐비하다. 춘천 막국수 체험 박물관에서 관람객이 직접 메밀가루를 반죽한 뒤 국수틀을 이용해 전통 방식으로 면을 뽑을 수도 있다.
울릉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오징어다. 올해는 오징어가 풍년이라 울릉도에 가면 오징어를 값싸게 먹을 수 있을 듯. 오징어는 잡은 뒤 하루나 이틀쯤 지나면 나쁜 맛과 냄새가 올라온다. 비린내의 주성분인 트리메탈아민 등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울릉도 오징어는 배가 항구로 들어오는 순간 배를 가르는 할복 작업을 한다. 이를 ‘당일바리’라고 한다.
울릉도의 별미인 오징어내장탕은 이 당일바리 오징어의 내장으로 만든다. 오징어 내장에는 흰색인 ‘흰창’과 갈색인 ‘누런창’이 있는데, 흰창은 생식소이고, 누런창은 먹통이다. 내장탕은 흰창으로만 끓이는데 호박잎과 풋고추, 홍고추를 썰어 넣어 국물 맛이 담백하면서 시원해 해장용으로 인기가 좋다. 누런창은 염장해 삭혔다가 찌개를 끓여 먹는다. 퀴퀴한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지만 홍어처럼 한번 맛 들이면 끊기가 어렵다.
‘가을 전어는 깨가 서 말’이라는 말도 있고 ‘집 나간 며느리 전어 냄새에 돌아온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맛있다는 뜻이다. 가을이 되면 전어는 온몸이 기름덩어리가 된다. 살 속에 기름이 차지게 박혀 있다. 특유의 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전어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회다. 뼈째 썰어 세꼬시로 먹는다. 씹으면 씹을수록 살과 뼈에서 고소하면서 단맛이 우러난다. 손님이 요구하면 뼈를 발라내고 국수 가락처럼 길고 얇게 썰어주기도 한다. 10월 이후에는 뼈와 살이 억새지기 때문에 구이로 먹는 것이 낫다. 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며 머리를 통째로 씹으면 살처럼 바삭거린다. 쌉쌀한 내장도 뒷맛이 고소하다.
고등어는 예로부터 쉽게 구할 수 있고 값이 싸서 ‘바다의 보리’라불렀다. 이 시기에 잡히는 고등어는 씨알이 굵고 담백하면서도 육질이 부드럽다. 살집마다 지방이 촘촘히 박혀 씹는 맛도 있다.
부산은 전국 고등어 생산량의 80% 이상을 산출하는 곳으로, 살아 있는 고등어로 뜬 회를 맛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고등어는 낚아 올리면 바로 죽고 부패가 빨리 일어나는 편이어서 갓 잡은 놈이 아니면 회로 먹기가 힘들다. 고등어회는 몸길이 40~50cm 이상의 것으로 뜬다. 어지간한 고급 생선회와도 바꾸지 않을 정도로 맛이 깊고 진하며 감칠맛이 풍성하다. 쌈을 크게 싸서 먹기도 하고, 남은 회는 찬밥에 죽죽 찢은 쌈 채소를 함께 넣어 즉석에서 고등어회비빔밥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지금도 삼치 하면 고흥 나로도를 최고로 친다. 우리가 구이로 즐겨 먹는 30~50cm의 삼치는 나로도에서는 삼치 축에도 들지 못한다. 적어도 1kg이 넘어야 그나마 삼치라 부르고, 3kg이 넘어야 ‘아, 삼치구나’ 대접을 받는다.
삼치는 역시 회로 먹어야 제맛.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식감이 쫄깃하지는 않다. 삼치회는 푸석푸석하고 무른 느낌이다. 그래서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리는 음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더해져 마니아를 만든다. 고슬고슬한 밥 한 숟갈에 고추냉이를 조금 얹고 그 위에 삼치회를 올려 먹어도 맛있지만, 보통은 두툼한 돌김 위에 큼직한 삼치회 한 점을 올린 뒤 양념장을 곁들여먹는다. 양념장은 간장과 고춧가루, 마늘, 설탕에 청주와 깨를 섞어 만든다.
목포는 낙지 요리 천국이다. 그중에서도 연포탕이 유명하다. 낙지와 채소를 넣어 말갛게 끓인 것이다. 개운하면서도 깔끔한 국물 맛이 일품. 낙지탕탕이라는 별난 음식도 맛볼 수 있다. 잘게 다진 낙지를 접시에 올리고 참기름을 뿌린 뒤 다진 마늘을 얹어 내는데, 낙지를 도마에서 칼로 탕탕 소리 내며 다졌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민어 역시 목포의 별미다. 한여름이 지나면 민어는 값이 반으로 떨어지지만 맛은 그대로다. 그래서 9월 이후가 오히려 민어를 먹기 좋은 때다. 살캉살캉 씹히다 목으로 꿀꺽 넘어가는 살도 맛이 좋지만 민어의 백미는 역시 부레.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