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제철 생선 갈치
완연한 가을입니다. 본격적으로 살찔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자 와락 갈치가 떠올랐습니다. 고등어, 코다리와 함께 3대 생선조림의 한 축으로서 우리네 입맛을 다독여주던 갈치. 갈치의 진면목은 이제 시작입니다.
수심 50~300m 깊은 바닷속에 사는 갈치는 산란 뒤 영양분을 보충하는 습성이 있는 만큼 7월 산란기 이후에 잡히는 가을 갈치가 살도 통통하고 지방이 많습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갈치 맛이 더 달고 고소해지는 이유죠.
갈치는 흔히 은갈치와 먹갈치 두 종류로 나누지만, 사실 같은 종입니다. 갈치를 한 마리씩 낚는, 일명 채낚시로 잡아 특유의 은빛 비늘이 상하지 않고 선명한 것은 은갈치, 그물로 잡아 은빛이 군데군데 벗겨져 검은빛을 내는 건 먹갈치라 부릅니다.
은갈치는 제주가, 먹갈치는 목포가 대표 산지로 꼽힙니다. 지금까지는 ‘제주 시민의 부엌’이라 불리는 ‘동문시장’이 은갈치의 본산으로 유명했지만, 최근에는 '서부두 수산시장'으로 향하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동문시장과 달리 서부두 수산시장에는 현지 제주 도민들이 주로 찾는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판도가 변한 것이죠.
이들 재래시장에서는 당일 잡힌 생물 갈치를 싸게 구입할 수 있어요. 하나 걸리는 건, 비늘이 손상되지 않아 완전한 은색을 띠는 제주 은갈치로 조림을 할 때는 왠지 죄를 짓는 기분이 든다는 겁니다. 그 곱디고운 상태를 최대한 보존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죠. 그러려면 역시 구이밖에 없습니다. 제주 은갈치 구이는 그런 의미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먹갈치를 주로 내는 목포에 가면 갈치조림이 적당합니다. 먹갈치는 주로 먼바다에서 잡는데, 씨알이 굵고 기름져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한층 더합니다. 목포 갈치 집에서는 고구마 줄기와 고사리, 김치, 무를 넣고 두툼한 갈치 토막도 푸짐하게 넣습니다. 고추장과 고춧가루 등 갖은양념을 넣고 조리는데 갈치 한 토막으로 밥 두세 그릇은 너끈하게 비울 수 있죠.
목포 먹갈치의 생생한 유통 현장을 보려거든 목포 경매장으로 가면 됩니다. 꼭두새벽부터 위판장 바닥에 경매를 기다리는 먹갈치가 즐비하고, 경매사들의 손놀림이 빨라지는데 여행자의 시선에서 그 광경이 제법 볼만 합니다.
꼭 제주나 목포가 아니더라도 이 무렵 갈치는 최고의 맛을 내니 집에서 부담 없이 즐기면 됩니다. 두툼한 몸통에 칼집을 내고 소금만 뿌려 구워도 기름이 자르르 흐르면서 달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죠. 갈치조림은 무와 감자 등 각종 채소와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깊은 맛을 자랑합니다. 특히 칼칼하고 시원한 국물에 뜨거운 밥을 비벼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