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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ever Nov 11. 2022

우리는 왜 <중용>을 읽어야 할까?

지극히 평범한 것, 기본이 되는 것이 정말 소중한 것이리라!



중용(中庸)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상태’를 일컫는다. 유교 경전 <중용>도 이런 의미를 되새기고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담고 있다. 우리가 <중용>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참고 도서 <오십, 중용이 필요한 나이>(21세기 북스)


中: 치우치지 않고,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
庸: ‘언제나’라는 평상, 지속적인 균형을 말함.



<중용>은 어떤 책?

<대학(大學)>, <맹자(孟子)>, <논어(論語)>와 함께 유교의 4대 기본 경전으로 꼽힌다. 유가의 창시자 공자의 손자 인자사(子思)가 지었다고 알려졌으며,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탄생했다. 원래 별도로 발간한 책이 아니라 유학 경서 중 하나인 《예기》 안에 <대학>과 <중용> 2개 편이 수록되었다가 후에 주자가 사서 체계를 마련하면서 각각 하나의 책으로 자리 잡았다.


진정한 ‘중용의 삶’이란?

<중용>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도, 치우치지도 않는 것에서 진리를 탐구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것’, ‘기본이 되는 것’이 정말 소중한 것이라고 말한다. 즉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자극적인 언어에 휩쓸리지 말고 평범한 일상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라는 의미다.


전국시대에 이르러 반대파를 향해 죽음으로 보복하는 자객이 용자로 추앙되고, 진위를 뒤바꾸는 궤변이 달변으로 환호를 받던 시대. 이러한 극단의 상황은 우리의 삶과도 닮아 있다. 인생의 절반쯤 달려온 중년, 자칫 잘못하면 극단으로 치닫거나 다른 길은 보지도 않고 한쪽으로만 고집을 피우기 쉬운 나이다. 초고속으로 변화하는 시대에서 남은 절반의 인생을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중용>에서 말하는 ‘치우치지도 않고 기울어지지도 않는’ 삶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1. 치우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점점 괴팍해지는 새로운 인간 군상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중용>에서는 이에 대한 고민과 함께 질주하는 세상의 속도를 어떻게 늦춰야 하는지 길을 찾고자 했으며, 평범함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다.



‘보통’의 힘을 놓치지 마라

素隱行怪, 後世有述焉, 吾弗爲之矣.

소은행괴, 후세유술언, 오불위지의.

“듣지도 보지도 못한 해괴한 주장을 찾아내고 납득하기 어려운 극단적인 일을 하면 후세에 이름을 날릴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쉰의 나이는 특별하고 화려한 것보다 일상처럼 편안하고 부담 없는 ‘보통’에 다시 눈이 가는 때다. 보통이 결국 오래간다는 걸 알게 되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위험을 무릅쓰면서 행운을 바라지 마라

故君子居易以俟命, 小人行險以僥幸. 

고군자거이이사명, 소인행험이요행. 

“자기 주도적인 군자는 편안한 자기 자리에 머물러서 일이 되어가는 형편을 느긋하게 살펴본다. 이기적 인소인은 위험을 무릅쓰면서 행운을 바란다.”

자신의 상황에 몰입해 살아가다 보면 조금씩 경험이 쌓이면서 인생을 살찌울 수 있다. 그렇게 쌓인 내공은 위기 상황에 압도되어 어찌할 줄 몰라 아등바등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만큼 강력하다.






2. 사실 쉬운데 어렵다고 생각할 뿐이다

‘중용대로 살기’란 가까이 있는 사람과 관계를 잘 맺어가는 삶이다. 즉 추상적이고 고원한 원칙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인륜에 바탕을 두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지극히 기본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용의 첫걸음이다.



말과 행동이 서로 돌아보게 하자

言顧行, 行顧言.

언고행, 행고언.

“말은 행실이 따라올 수 있을지 고려하고, 행실은 말이 책임질 수 있을지 고려한다.”

말과 행동을 따로따로 살피지 않고 늘 같이 살필 때 사고를 피할 수 있다. 마이크 잡으면 놓을 줄 모르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상식 없이 굴면 말과 행동이 모두 화를 부르게 된다. 할 말을 딱 부러지게,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하면 얼마나 멋진가.



기본에 귀를 기울여보자

行遠必自邇, 辟如登高必自卑.

행원필자이, 벽여등고필자비.

“먼 곳에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부터 시작하고, 높은 곳을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비용만 지불하면 어디든 순간 이동이 가능한 요즘 시대.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방관자가 되어간다. 반면 800km가 넘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40여 일에 걸쳐 걸을 때면 이동은 전적으로 인간의 몫이 된다. 힘은 들지만 직접 했다는 것에서 만족을 얻기에 고생을 자처하는 것이다. 이는 우주여행이 머지않은 시대에도 평범한 걷기가 왜 생명력이 있는지 되새겨보게 한다.






3. 마음 근육의 중심 잡기

사람은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존재다. 감정도 흔들리고, 기분도 들쭉 날쭉하고, 의지도 강약이 있고, 지성 도부 족할 수 있다.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배움의 가치에 차등을 두지 마라

或生而知之, 或學而知之,

혹생이지지, 혹학이지지

或困而知之, 及其知之, 一也. 

혹곤이지지, 급기지지, 일야.

或安而行之, 或利而行之, 

혹안이행지, 혹리이행지,

或勉强而行之, 及其成功, 一也·

혹면강이행지, 급기성공, 일야.

“어떤 이는 태어나면서 알고, 어떤 이는 배워서 알며, 어떤 이는 힘들여서 알지만, 세 경우 아는 것은 같다. 어떤 이는 편안하게 행하고, 어떤 이는 하나하나 따져가며 행하며, 어떤 이는 억지로 행하지만, 세 경우 성공은 같다.”

배움의 단계에 따라 방법이나 노력의 정도는 다를지 몰라도 일단 배움을 얻고 나면 다 똑같다. 의미와 가치에 차등을 둘 수 없고 두어서도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치우치지도 기울어지지도 마라

中者, 不偏不倚, 武過不及之名, 庸, 平常也.

중자, 불편불의, 무과불급지명, 용, 평상야.

“중(中)은 치우치지도 기울어지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모자라 지도 않는 이름이다. 용(庸)은 늘 있는 평범한 일상이다.”

무언가를 고민할 때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이 옳고, 다른 쪽이 무조건 나쁘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은 중용의 길이 아니다. 중용은 0과 1 사이의 수많은 소수점을 하나씩 검토하고서 최선이라면 익숙한 길로 갈 수도 있고, 낯선 길로 갈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사람이 기우뚱하다가도 중심을 잡게 하는 삶의 무게 추다.






4. 삶 근육의 중심 잡기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잡는 근육. <중용>은 이런 마음의 근육을 바탕으로 일상에서 때로 기우뚱거리더라도 결국은 중심을 잃지 않고 곧바로 설 수 있는 삶의 근육을 키우는 길로 나아가라고 한다.



윗자리에 있으며 아랫사람을 깔보지 않는다

在上位不陵下, 在下位 不援上.

재상위불릉하, 재하위불원상.

“윗자리에 있으면서 아랫사람을 업신여기어 깔보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끌어내리지 않는다.”

아래와 위의 관계가 권력의 남용으로 타락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래는 한시라도 빨리 탈출해야 하는 자리이고, 위는 빨리 쟁취해야 하는 자리다. 아래와 위는 서로를 돕는 역할이어야 하지만 뺏고 빼앗는 약탈적 관계로 타락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에 ‘불능(不陵)’과 '불원(不援)’의 원칙을 제시했다. 나아가 “자기 자신을 바로잡아라”라고 주문하고 “다른 사람에게 무리하게요 구하지 말라”라고 조언한다.



마음껏 부끄러워할 줄 알아도 된다

知恥, 近乎勇.

지치, 근호용.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은 용기에 가깝다.”

부끄러움은 체면과 용기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는데, 적어도 용기 쪽으로 나아갈 때 사람이 자신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킨다. 심지어 어떤 상황에 놓이는 게 죽을 만큼 부끄럽지만 해야 하기에 용기를 내어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5.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공자는 열 살 단위로 그 나이대에 초점을 두어야 할 사항을 말했다. 40대는 여러 길 중에 헷갈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는 불혹(不惑), 50대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한계를 인지하는 지천명(知天命)이라면, 60대는 다양한 목소리를 듣더라도 차분히 듣고 좋은 점을 받아들이는 이순(耳順)이다.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단계 성인

齋莊中正.

재장중정.

“위엄 있고 점잖고 곧고 바르니 존경받는다.”

<중용>을 비롯한 유학에서는 보통 사람이 중용(덕행)과 진실을 뜻하는 성(誠)을 통해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성인은 인격이 높아져서 도달하는 최후의 단계다. 총명해 문제에 부딪혀도 풀어갈 수 있으니 누구를 만나더라도 꿀리지 않는다. 또 관대하고 부드러워서 어떤 사람이든 포용할 수 있다. 때론 강인하고 굳건하므로 지켜야 할 것을 굳게 잡을 수 있고, 위엄 있고 점잖으며 곧고 바르므로 함께 어울리며 존경받을 수 있다. 제도의 조리를 세밀하게 따질 수 있으므로 시비를 분별할 수도 있다.



은은함이야말로 군자의 진정한 멋이다

衣錦尙絅.

의금상경.

“비단옷 입고 홑옷을 걸치네.”

비단옷만 입으면 비단에 새겨진 문양이나 장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 위에 홑옷을 덧입으면 비단옷의 무늬가 있는 대로 드러나지 않고 보일락 말락 하게 된다. <중용>에서는 군자가 걸어가는 길은 겉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아슴푸레하며, 흐릿하다고 말한다. 이 은은함에는 역설적으로 ‘나날이 빛난다’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다.



작은 일상에 집중하며 사는 중년의 아름다움

德輶如毛.

덕유여모.

“덕은 새털처럼 가볍다.”

<중용>의 마지막 구절이다. <중용>은 마지막 주제를‘덕(德)’으로 골랐다. 사람은 하늘이 명령한 제1의 천성을 갖고 태어나며, 살면서 제2의 천성인 덕을 행해 성인 에이를 수 있는 것이다. 제1의 천성이 사람다움이라면, 제2의 천성은 제1의 천성을 내게 맞게 일궈내는 ‘나다움’이다.


사람다움이 나다움과 만나는 제2의 천성을 빚어내는 일은 실패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실패에 넘어지지 않고 일어서서 다시 시작한 끝에 나다움이라는 제2의 천성을 만나게 된다.


이처럼 덕은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다. 덕은 새털처럼 가벼워서 잘 날아가버린다. 그래서 더욱 마음을 써서 소중히 간직할 필요가 있다. <중용>이 말하는 것처럼 평범한 일상에 집중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중년의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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