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한 내 돈

by 김현진

아내 몰래 감추어 둔 돈이야말로 정말 매력 있고, 가치 있고, 좋은 돈이다. 감추어둔 돈은 알려진 돈보다 그 사용하는 곳의 다양성이라던가, 은밀성 그리고 사용 후의 만족도에서도 비교할 수가 없이 좋은 돈이다.

현대사회에서 돈은 욕망 충족의 기본수단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자유의 근본이라고 이야기한다. 돈이 있으면 무엇이나 살 수 있고, 무엇이나 구할 수 있으며, 요즘에는 돈이면 귀신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며, 돈은 주조된 자유라고 어떤 훌륭하신 학자분이 말하였다. 돈과 자유는 정비례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돈을 벌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려고 하지를 않는 모양이다.

현대인은 돈을 신처럼 섬기고 있다. 원래 돈은 인간의 생활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돈이 수단의 자리에서 목적의 자리에 군림하게 되면서 현대 윤리의 불행이 시작되었다. 요즘도 우리의 주변에서 날마다 돈이 원인이 되어서 수많은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나 역시 윤리적으로 그리 정당하다고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아내 몰래 돈을 감추어두고 그 돈으로 고스톱의 밑천으로 하려고 하였다. 주로 같이 늙어가는 친구들이 고객이다. 이제 60대 후반의 아직은 그래도 약간은 쓸 만한 녀석들이다. 모두 퇴직을 하고 놀고 있으니 집에 있으면 무척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먼저 아내의 눈치를 봐야 하며, 두 번째는 며느리의 눈치도 살살 봐야 한다. 그래서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문제는 돈이다. 물론 돈이 없이도 살 수가 있다. 매일 같이 산에만 가면 건강에도 좋다고 하지만, 어찌 꼭 그렇게 할 수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도 처음에 퇴직한 후에 매일 산에 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한 달도 못 되어 가기가 싫었다. 집 옆의 작은 입암산에 가서 갓바위 있는 곳에서 유턴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코스인데 처음에는 참 좋았으나, 그러나 그것도 며칠 지나니 가기가 싫었다. 역시 사람은 사람 속에서 부대끼면서 살아야 하는 모양이다. 물론 연금이 나오니 얼마만큼의 용돈은 준다. 그러나 용돈이 조금 적은 것 같다. 가끔가다 친구들하고 소주도 먹어야 하고, 가끔은 고스톱도 하여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이 돈이 없으면 할 수가 없다.

지난달에는 시간강사로 나가는 어떤 대학에서 몇 푼의 강사료가 나와서 아내 모르게 감추어두려고 50만 원을 5만 원짜리로 바꾸어서 내 책장 속의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 속에 감추어두었다. 물론 신사임당 선생께는 미안한 일이었다. 돈은 돌아다녀야 하는데, 캄캄한 책 속에 감추어두면 신사임당 선생께서 엄청 화를 낼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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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퇴직한 후에 아내와 사별하고 석현동에서 텃밭을 가꾸며 혼자 사는 친구 집에서 고스톱을 하자며 연락이 와서, 출전하려고 책을 열어보니 돈이 없다.

전쟁터에 나가려면 실탄이 풍부해야 하는데 그 실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나는 혹시 내가 잘못 넣어두었나 하고 주변의 책 속을 뒤졌다. 김우창 선생의 ‘성찰’을 보니 ‘너 자신을 알라’ 하는 것 같았고,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살펴보니 ‘죽으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산다.’라고 되어있었다. 다시 그 옆의 ‘강신주의 노자와 장자’를 보니 ‘다 그리된다.’라고 되어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가. 기가 막혔다. ‘생각의 탄생’에 분명히 넣어 두었는데 신사임당 선생께서 탄생하기 전에 행방불명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신용카드로 자유 시장 옆 현금자판기에서 돈을 찾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길거리 여기저기에 돈 쏟아지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다. 카드만 넣으면 현금이 거침없이 쏟아진다. 돈을 찾으면서도 이렇게 현금자판기를 많이 사용하다가는 바로 거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돈을 찾아 국가에서 하지 말라는 도박행위인 고스톱을 하려고 하니, 세종대왕님과 신사임당 선생님, 그리고 퇴계 이황 선생님에게도 정말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친구들하고 이미 약속을 하였으니 조금만 찾아서 가야지 하면서 10만 원을 찾았다. 친구 집에서 용감하게 전투에 임하였으나, 고스톱은 그렇게 내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고, 오후 5시부터 시작한 게임은 자정에야 끝이 났다. 나는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오면서 돈을 세워 보았다. 무려 3만 6천 원을 챙겼다. 하지만 친구들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으니, 내일은 순댓국에 소주라도 사야 한다.

다음날 오전에 모두 산에 가자고 하는 연락이 왔다. 가까운 산으로 가자는 것인데 점심은 순댓국집에서 지난밤에 장원한 사람이 장원 주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장원이었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장원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산행을 마치고 순댓국집에서 이야기하면서 따져보니 내가 장원을 하였다고 한다. 겨우 3만 원 정도 승하였는데 순댓국에 소줏값을 내라고 한다. 깔깔 웃으면서 기분 좋게 점심값을 계산하였는데 5만 원 가까이 되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늙어가면서 그런 게임이라도 하면서 잠시라도 철없던 시절로 돌아가는 그 순간이 행복인 것 같다.

이 세상에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늙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노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늙음에 대한 성찰은 삶의 신비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친구들이 모여서 대화하면서 늙어가는 노년을 가장 잘 표현하는 말들이 무엇이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사계절이 우리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해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생명을 꽃피우는 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여름에 강렬한 태양 아래 온몸을 검게 태우는 여름은 청년기라고 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을이 되면 가을은 또 가을대로 아름답다. 가을은 햇볕도 부드러워지고 아름다운 단풍이 색색이 아름다우며, 수확의 기쁨과 함께 풍요로운 날을 맞이할 것이다. 우리가 일에 파묻혀 살아갈 때는 세상의 많은 일을 알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기 일쑤였다. 인생의 가을에는 업적을 쌓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일이다. 노년의 가을에는 새로운 것을 한 번쯤 시도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림을 그리거나 아니면 글을 쓰거나 그것도 아니면 도자기 공예도 할 수 있으며, 수없이 많은 자기만의 세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제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또 온다. 겨울이라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겨울은 겨울만의 아름다움이 있다. 눈 덮인 풍경을 보면서 휴식과 고요로 자신을 충만할 수 있으며, 아름답고 풍성한 가을과 사랑의 온기로 가득 찬 고요한 겨울이 되는 노년의 삶을 가꾸는 것이 좋을 것이나 꼭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때도 있을 것이다. 가을과 겨울의 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폭설과 그 혹독한 추위도 함께 받아들이는 것, 또한, 모든 시간을 변화시키고 따뜻하게 해줄 사랑을 발견하는 것 역시 나이 드는 기술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보는 길가의 은행나무는 노란색으로 변하여 은행알을 떨구고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50만 원의 행방은 어디일까. 궁금하였다. 며칠이 지나서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아내에게 사실대로 물어보았다.

“내 돈 50만 원 혹시 알아요?”

“아! 웬 돈인가 했더니 당신이 감추어둔 돈이었어요?”

지난번에 방을 청소하는데, 책장의 먼지를 털고 있는데, 책이 한 권 이상하게 불룩한 것처럼 느껴져서 무엇인가 봤더니 글쎄, 5만 원짜리 현금이 열 장이 있더라는 것이다. 너무나 감격하여 그만 기절할 뻔했다고 한다. 평상시에 남편을 사랑하고 집안일을 꼼꼼히 하였더니 하느님이 보살펴서 현금의 축복을 주었다고 생각하면서, 서울에서 사는 아들에게 갈 때 각종 부식과 이것저것을 많이 가져갈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 고맙게 생각했는데,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이 보우하사 베푸신 은혜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주는 아니라도 가끔은 남편 서재도 청소하고 책장도 잘 살펴볼 일이라고 하면서, 하느님 덕택으로 공돈이 생겼다고 좋아했다 한다. 이런 경우를 죽 쑤어서 남 좋은 일 한다고 하던가. 아무도 모르게 감추어두었는데 가져간 사람은 따로 있다. 하는 수 없지 이제는 친구 녀석들에게 열심히 고스톱으로 돈을 챙겨 올 수밖에 없지. 하지만 그것이 내 맘대로 될까? 친구 녀석들도 귀신 도깨비 같은 놈들인데 내 마음대로 될 리가 없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하늘을 바라보니 뭉게구름 흘러가는 파란 하늘이 나를 보면서 정신 차리라고 하며 웃고 있는 것 같다.

- 김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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