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과 우연에 거는 도박

by 김현진

신문에 보면 가끔 절간의 스님이나 공직자의 도박행위가 나온다. 고위 공직자 370여 명이 정선 카지노에서 도박하였는데 기본 3,000만 원 이상 지참해야 하는 VIP 대상자도 수십 명이 되었던 모양이다. 참으로 돈도 많으신 공무원 나리들이니 아마 자기의 봉급으로는 도박하지 않았을 것이고, 국민이 도박공무원들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박이 어제오늘의 일은 결코 아니다. 또한, 도박의 종류도 무수하고 다양하다. 화투, 포커, 마작, 바둑이, 바카라, 슬롯머신, 룰렛 등 그 명칭을 다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다.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화투는 일본에서 들어 왔는데 그것의 그림이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딱 맞게 되어있다.

먼저 꽃 그림(花)인데 화투에 보면 소나무와 매화꽃, 국화꽃과 목련, 그리고 난초라던가 단풍 등이 있다. 이러한 것은 우리네 과거의 선비나 백성들이 모두 즐기던 꽃이라는 점과 또한 시인과 묵객들이 노래하고 수묵으로 표현하던 그런 것들인지라 도무지 거부감이 없다. 일본에서 건너왔기에 거부감을 가져야 하는데도 거부감이 없이 오히려 우리의 감정과 호흡에 일치한다.

두 번째는 새(鳥)인데 밤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면서 고향을 그리던 우리네 조상들이 눈보라 휘날리는 만주에서 조국의 독립과 민중의 평안한 삶을 찾고자 슬픈 망명 생활을 할 때 날아가는 저 기러기를 보면서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다음은 달(月)이다. 화투에도 달이 크게 나와 있다. 크고 멋진 달은 추석을 생각나게 한다. 배고픈 그 시절에도 추석 명절에는 배불리 먹을 수 있었기에 그나마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이웃들의 가을이었기에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마지막으로 풍(風)이다. 풍은 가을을 의미하며 또한 단풍이다.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계절인데도 관가의 무지막지한 수탈에 민중들은 겨우살이 걱정에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 것인가. 그러기에 화투는 우리 민족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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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나 모나코는 도박이 불법이 아니다. 또 우리나라의 경마, 경륜, 경정, 로또복권 등 우리 주변에는 합법화된 도박이 넘쳐나고 있다. 도박은 노동과 합리적인 경영을 생략하고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이익을 획득하려 한다. 그것이 도박이 사회적 비난을 받는 이유이다. 도박은 불확실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필연과 확실성을 추구하지만, 인간의 삶은 어차피 우연과 불확실성이다. 이것이 도박의 세계관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도박장을 개설하여 먹고사는 인간도 물론 있었다. 집에 투전꾼을 모으고 돈을 대주며 이자를 거두거나 방값, 기름값, 밥값 등의 명목으로 돈을 뜯는 자가 있었으니, 일찍이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도박장을 설치하고 노름판을 주관한 자는 형률에는 비록 죄가 같을지라도 이는 원흉이니 그 벌이 마땅히 배가 무거워야 한다."라며 가혹한 처벌을 요구한 것을 보아, 그 시절에도 전문적인 도박장이 있었던 모양이다.

조선 시대 양반사회에서도 도박은 성행했었다. 열하일기에도 밤에 역관, 비장들이 투전판을 벌여 돈을 따고 좋아하는 장면이 묘사되어있다. 양반사회에서의 투전의 유행은 놀라울 정도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재상, 명사들과 승지 및 옥당 관원들도 이것으로 소일하니 다른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소나 돼지 치는 자들의 놀이가 조정에까지 밀려 올라왔으니 역시 한심한 일이다."라고 개탄하기도 하였다.

그래서일까. 작금의 고급 공무원의 카지노 도박이 그렇고 그런 조상들의 유전자를 타고난 것을 우리가 모두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조선조의 양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이념과 금욕적 자기 절제가 생활화된 청렴한 양반의 모습이었다. 조그마한 오막살이집에서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베개한 그런 청렴한 모습의 양반이 아니라 도박에 미쳐, 밤이고 낮이고 본성을 잃어버리고 넋이 나간 채로 봉두난발에다 눈이 시뻘게져, 귀신 꼴이 되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가 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는 투전은 "마음을 망가뜨리고 재산을 탕진하여 부모와 종족의 걱정거리가 되는 것" 이며 "아전이 포흠을 지고 군교가 부정을 저지르는" 빌미가 된다고 하였다.

지방관들은 부끄러움도 모른 채 동헌에 앉아 저리나 책객들과 투전, 골패에 골몰했다고 기록되어있다. 그 시대에도 도박은 그리도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도박은 불확실성을 바탕으로 작동하는 게임이다. 몇몇 변수로 결과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도박은 성립될 수 없다. 실제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서 도박의 성행은 사회 자체의 불확실성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도박 공화국이다. 그런데 왜 도박을 불법화하는 것일까? 과연 도박 자체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수익이 많은 장사는 정부가 하겠다는 심보이며 오로지 도박을 독점하기 위한 수법에 불과하다는 모양으로 비추기 때문이다. 정부가 패를 잡는 로또는 합법이고 가난한 서민이 패를 잡는 고스톱은 불법이라고 한다. 가난한 서민들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추천하는 도박인 증권은 또 얼마나 많은 거지를 만들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금방이라도 돈이 될 것 같아 쏟아부었다가 막차 타고 몽땅 날리는 중산층이 그 얼마 인가, 그리고 서민층, 그다음은 빈민층으로 전락하고 마침내는 거지 일가가 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로또복권, 경마, 경륜, 경정, 증권 등등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도박이 설치고 있다. 혹은 레저라는 이름으로 도박을 부추기는 사회가 우리의 사회이니 말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지금처럼 도박이 설치는 시대는 없는 것 같다. 도박은 모든 것이 불확실성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에 대한 또 다른 이해의 방식이다.

- 김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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