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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의 여자, 칸트와 공자가 본 신의 모습

by 주니스

저의 어릴 때 꿈은 시인이자 천문학자였지만, 지금의 꿈은 5개 언어를 섞어서 만든 동화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5개 언어란 동서양 철학과 종교, 현대과학을 뜻하고, 이 5개 언어를 통합하고 연결하여 남녀노소 어린왕자와 같이 누구나 읽을수 있는 동화책을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이번에 제 꿈을 이룰 첫 번째 단추인 브런치 작가에 선정되었습니다.
금요일날 작가 응모를 하였는데 3일만인 오늘 합격 통보서가 날라와서 너무 기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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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작가가 된 것은 나의 꿈을 응원해 주신 여러분들이 저에게 안겨준 놀라운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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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드릴 첫 번째 동화책은 서양 철학책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을 비롯한 비판 3형제와 공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렵지만 반드시 넘어야 할 산, 칸트의 철학세계를 동화책처럼(?) 한번 읽어보시죠!^^

https://youtu.be/nlAM3w0n2n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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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 칸트! 공자와 비교한다면?

‘모든 서양철학은 칸트로 흘러들어가고 칸트로부터 흘러나왔다!’칸트가 위대한 철학자인 이유와 공자와 함께 바로본 신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www.youtube.com


<창밖의 여자, 칸트와 공자가 본 신의 모습!>

‘모든 철학은 칸트로 흘러들어갔고 칸트로부터 흘러나왔다’라도 말할만큼
칸트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이자 서양철학사에 큰 획을 그은 위대한 철학자입니다.

칸트는 평생 자신이 산 지역을 벗어나지 않았고 밤 10시에 잠이 들었다가 5시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매일 오후 3시 정각에는 산책을 시작하여서 동네 사람들은 칸트를 보고 시계를 맞추었다고 합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이라는 유명한 비판 3형제 책을 집필하였고 첫 번째 책인 순수이성비판은 12년만의 긴 장고 끝에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원판도 어렵지만 해설판이 더 어렵다는 순수이성비판은 도대체 어떤 책일까요?
천동설에서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전환’이라고 칸트 스스로가 말할만큼 이 책은 인간 사고의 획기적인 전환을 처음 가져온 책입니다.

이 책의 요점인 ‘코페르니쿠스적 의식의 전환’이란 지구 위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지구라는 세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처럼 내가 이름을 불러줄때만 꽃이 의미가 있듯이, 네비게이션에서 내가 보는 시야만큼만 보이듯이, 내가 이해하고 상상하는 만큼만 세상은 보이게 됩니다.
마치 여러분 앞의 방문을 열고 나가기 전까지는 방문 밖 세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수도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방문밖 세상을 칸트는 ‘물자체’라고 하였고 내 머리 속 세상을 ‘선험적 자아’라고 하였습니다. 물자체는 오직 신만이 알고 있는 세상을 뜻합니다.
이 신의 모습인 물자체를 칸트는 어떤 식으로 이해해 나갔을까요?

칸트가 말한 비판 3형제가 본 신의 모습은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라는 노래와 같습니다.
그리고 공자가 말한 군자의 삶과도 일치합니다.

공자가 말한 군자의 삶이란 나이 50이 되면 지천명,하늘의 뜻을 알게 되고, 60이 되면 이순,하늘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70이 되면 종심소욕불유구, 마음대로 행동해도 하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창밖 비 맞고 있는 여자의 모습, 즉 신의 모습인 물자체는 창문을 열기 전까지는 알수 없습니다. 신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기는 하지만 정확히는 알수 없는 공자의 50세 지천명과 같습니다.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창문을 여는 순간 여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자의 모습은 정언명령, 즉 신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공자의 60세 이순과 같습니다.
판단력 비판에서는 창문 앞으로 다가가서 비 맞고 그 여자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놀랍게도 신은 바로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공자가 말한 70세 종심소욕불유구와 같습니다.

지천명을 훌쩍 넘어 이순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나는 창밖의 여자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지, 공자가 말한 군자처럼 하늘의 소리를 들을줄 알고, 내 마음대로 행동해도 하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군자의 삶을 살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불원복, 이 군자의 길을 잠시 벗어나더라도 원래대로 이 길 위로 돌아와야 함은 알고 있고, 이 길 위에서 살다가 이 길 위에서 죽어야 행복하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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