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잡아라>
실존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솔벨로의 오늘을 잡아라! 이 소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솔벨로는 실존주의 문학가로 ‘오늘을 잡아라’ 이 소설을 통해서 비합리적이고 무의미한 삶 속에서 어떻게 합리성과 의미를 찾아야 할지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오늘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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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프랑수아즈 사강이 1959년에 발표한 고전 연애소설입니다.
그 당시 프랑스인들은 '브람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브람스 연주회에 상대를 초대할 때는 꼭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물어봐야 했다고 해요.
책에서는 새로운 남자친구 시몽이 여자주인공 폴에게 보내는 편지 속 한구절로 나옵니다.
작가 사강이 ’좋아하세요‘ 다음에 물음표가 아닌 점 세 개(...)를 찍은 이유는 상대의 물음보다 나의 대답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는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퇴계 이황은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선비의 하루)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이렇게 시작하라고 말합니다.
'수탉이 울기 시작하면 눈을 뜨고 세수를 하고 의관을 단정히 하고 책을 앞에 두고 앉는다. 공자가 자리에 있고 안회와 증자가 앞뒤에 있는 것처럼 묻고 대답한다.‘
‘오늘을 잡아라’는 노벨문학상, 퓰리쳐상을 수상한 실존주의 작가인 솔 벨로의 대표적인 소설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대학을 중퇴하고 꿈꾸던 배우의 길을 갔지만 실패하게 되고, 직장에서도 낙하산 인사에 실망해서 스스로 퇴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선택했던 결혼생활에서도 실패해서 버겁게 양육비를 부담하게 되고, 도움을 줄 것 같았던 아버지에게도 외면당합니다.
‘오늘을 잡아라’는 말을 한 어느 사기꾼에게 전재산을 탕진당하게 되고, 마지막에 그 사기꾼을 쫓다가 우연히 어느 노인의 장례식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 흘리면서 마음의 안식을 찾게 된다는 스토리입니다.
20세기 소설의 거인, 예술적 원숙, 최대의 연대기 작가 등 칭찬과 찬양이 가득한 책의 겉표지와는 달리 책속 내용은 ‘찌질한 한 중년남자의 운 없는 하루’처럼 묘사되어서 어쩌면 조금 실망스러울수도 있는 책입니다.
그런데도 왜 이 책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이 책이 실존주의를 은유적으로 탁월하게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실존주의란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세상의 답이 나올 것 같았던 근대사회를 벗어나서 탈이성적인 포스트모던, 현대철학의 시작을 뜻합니다.
이성을 통한 탐구로 인류는 한없이 행복해지고 문명은 끝없이 발달할 것 같았지만, 이성을 이용한 나치즘,원자폭탄의 발명 등으로 인해 인류의 대학살을 경험하면서 이성보다는 나 자신의 실존이 더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실존이란 무엇이고 실존주의란 무엇일까요?
실존주의 대표적 철학자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로 유명합니다.
모든 사물과 동물은 본질이 있지만 인간만은 본질이 없습니다.
컵은 물 마시기 위한 본질, 사자는 토끼를 잡아먹는다는 본질, 토끼는 풀만 먹고 사자에게 잡아 먹힌다는 본질이 있지만 인간은 아무 이유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본질없는 존재입니다.
즉 인간만이 내가 왜 태어났는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이 실존주의 사상입니다.
사자나 토끼가 실존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 스스로를 성찰할 수 없고, 단지 인간이 그 동물의 본질을 규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몸의 철학, 실존주의 철학, 현대 철학의 시작점입니다.
이 소설 곳곳에는 열심히 살려고 애쓰지만 늘 실패를 맛보는 주인공이 겪는 비합리적 사회,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을 통해 본질 없이 실존만 하는 인간 내면의 깊은 상실감을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오늘을 살아라’라는 이 소설의 주제를 주인공 스스로가 아닌 사기꾼의 입을 통해서 듣는다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실존하는 인간은 이유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피투) 스스로 살아가는 이유와 본질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존재입니다(기투).
누구도 나의 삶을 대신해 주지 않고 나 스스로 능동적으로 삶을 행복하게 만들 때만이 나의 실존은 더욱 의미가 있어집니다.
이렇게 나의 삶을 스스로 행복하게 만드는 아모르파티를 할때만이 비로소 이 책의 주제인 ‘오늘을 살아라’, 카르페디엠을 할수 있게 됩니다.
세 번째 이유는 마지막에 타인의 죽음을 보면서 한없이 울게 되고 그로 인해 마음의 안식을 얻게 된다는 결말 때문입니다.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선구해서 미리 달려가서 볼 때 우리는 삶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니까 살아있을 때 현실을 열심히 살아라는 뜻이 아니라 죽음과 삶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석가모니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후 '나는 이제 더 이상 윤회하지 않고 열반에 들었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살아 있을때는 찌꺼기가 남아있는 유여열반, 죽은 이후에는 찌꺼기가 없어진 무여열반이란 것은 삶과 죽음을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면 해탈하여 열반이라는 깨달음을 얻을수 있다는 뜻입니다.
반야심경에서는 조견오온개공, 나의 몸과 마음이 무상하게 흘러감을 깨달으면, 도일체고액, 모든 괴로움을 넘어설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몸과 마음은 인연따라 나타났다가 사라지므로, 이것을 깨달으면 죽음과 삶이 하나임을 알게 되어 괴롭지 않게 되고, 현실에서도 더욱 자유롭게 열심히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천국이 어디 있나요?'라고 묻는 제자의 질문에 '천국은 이미 네 마음 속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하느님 아버지를 한번만 보여 달라는 제자의 부탁에도 '나를 보는 것이 곧 아버지를 보는것이다라'는 말로 죽음 이후의 천국과 아버지의 세상을 예수님처럼 지금 현재 만들어 보라고 은유적으로 강조하셨습니다.
이 소설의 주제 3가지는 비합리적 세상을 살더라도 나의 실존이 본질보다 더 중요하다는 실존주의 사상, 그리고 오늘을 살수 있는 힘은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죽음을 잘 이해할 때 지금 이순간 나의 삶이 행복해질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메멘토모리, 죽음이 삶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되면, 아모르파티, 살아있을때도 나의 운명을 사랑스럽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고, 카르페 디엠, 그 능력이 있으면 지금 이순간, 언제 어디서라도, 남이 아닌 나 스스로 오늘을 잡을수 있는 진정한 실존주의 인간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