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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모시꽃과 달빛 송편

“마음을 빚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송편”

by 이다연



깊은 산속, 바람이 솔솔 부는 작은 초가집.
그곳엔 할머니와 손녀 예솔이 단둘이 살고 있었어요.

아침이면 닭이 먼저 인사를 하고,
밤이 되면 개울물이 자장가를 불러주었지요.

비록 가진 건 많지 않았지만,
서로의 품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어요.


어느 맑은 아침,
예솔은 장독대 옆으로 나가

풀잎을 꺾어 할머니에게 건넸어요.

“할머니,
이 풀냄새 맡아보세요. 꼭 봄 같아요.”

할머니는 웃으며 예솔의 머리를 쓰다듬었지요.

“그래, 풀향기는 봄인데
마음은 벌써 가을이구나.”

그때 바람이 살랑 불어와 코스모스가 흔들렸어요.
예솔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물었지요.

“가을이 오면,
추석도 오는 거죠?”
“그렇지. 우리 예솔이도
달님을 기다릴 줄 아네.”

그날 이후 예솔은 밤마다 달을 바라보며 속삭였어요.

“달님, 얼른 오세요.
추석이 기다려져요.”


며칠 뒤, 집 앞에 떠돌이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어요. 하얀 털이 잔뜩 엉켜 있었지만, 눈빛이 따뜻한 아이였지요.

예솔은 조심스레 다가가 말했어요.

“할머니,
우리 이 아이랑 같이 살면 안 돼요?”
“얘야,
우리가 먹을 쌀도 모자라잖니…”


할머니는 걱정스러웠지만, 결국 남은 밥 한 숟갈을 덜어 강아지에게 주었어요. 그날부터 강아지 꽁지는 떠나지 않았고, 예솔이네 집엔 또 하나의 가족이 생겼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추석이 다가왔어요.

마을에는 전 부치는 냄새와 웃음소리가 가득했고, 아이들은 새 저고리를 입고 뛰어다녔지요.


가게마다 향긋한 냄새가 풍겼지만,

예솔의 집은 조용하기만 했어요.

“예솔아… 미안하다.
추석인데 쌀 한 줌밖에 없구나.”


할머니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어요.

예솔은 밝게 웃으며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죠.

“괜찮아요, 할머니.
우리 집엔 꽁지도 있고,
달님도 있잖아요.”

할머니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미소를 지었답니다.


그날 밤, 둥근달이 유난히 또렷하게 떠올랐어요.
예솔은 마당에 나와 두 손을 모았지요.

“달님,
할머니가 너무 슬퍼요.
저희도 추석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 주세요. 제발요”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환히 비추었어요.

그때 예솔의 눈가에 반짝이는 눈물이 맺히자, 그 빛이 조용히 숲 속으로 흘러들었답니다.


숲은 고요했어요.
나뭇잎 사이로 달빛이 부드럽게 흘러내리며
작은 새벽이슬을 깨웠지요.

그때, 바람 한 줄기가 숲을 스쳤어요.


풀잎들이 낮게 흔들리고,
그 사이에서 희미한 빛이 피어올랐어요.

그 빛은 점점 모양을 이루더니—
보랏빛 머리카락이 달빛에 물든 마렌이 나타났어요.


달빛을 닮은 눈동자와, 꽃잎 같은 드레스 위로, 머리를 빗을 때마다, 그 빗살 끝에서 별빛이 후드득 떨어져 숲 속 공기 위에 흩날렸어요.

“예솔의 마음이
달빛에 닿았구나.”

마렌은 조용히 속삭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그녀의 손끝에서 달빛이 한 줄기 내려앉고,
그 빛을 따라 요정 리아가 나타났지요.

“리아,
인간의 순수한 마음을 도와줘야 해요.”

리아는 은빛 날개를 펴고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리고 두 요정은 손을 맞잡아 달빛을 모았어요.
그 빛이 서서히 둥근 씨앗으로 변해 반짝였어요.

“이건 모시꽃 씨앗이야.
달의 기적이 깃든 꽃이지.”


예솔이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마당에는 은빛 씨앗이 반짝이고 있었어요.


그 씨앗을 손에 쥐고 마당에 뿌리자,
땅에서 초록 줄기가 솟아오르고 보랏빛 꽃들이 활짝 피었어요.

“이건 모시꽃…!”

놀라움과 기쁨으로 예솔의 눈이 번쩍 뜨였죠.


예솔은 잎 하나하나를 따서 반죽에 섞었어요.

그리고 할머니의 고운 눈을 닮은 송편을 빚기 시작했답니다.


예솔은 자신을 바라보던 할머니의 슬픈 눈을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송편을 찜통에 넣자 향긋한 풀내음이 번지고,
집 안 가득 모시 향기가 퍼졌어요.

“예솔아, 이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송편이구나.”

할머니의 눈가에 기쁜 눈물이 맺혔어요.


그날 밤, 두 사람은 달을 바라보며
모시송편을 나누어 먹었지요.

“할머니,
이건 달님이 주신 선물이래요.”
"그래, 그래. 예솔아~
너무 맛있구나."


행복한 미소를 짓는 할머니를 보며,

예솔은 생각했어요.

‘가난해도, 마음은 달빛처럼 따뜻할 수 있구나.’


달빛이 둘의 어깨를 감싸고, 꽁지에게도 내려앉았어요.
숲 속에서는 마렌과 리아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죠.


그리고 매년 추석이 되면 그 집 마당에는 모시꽃이 피어났답니다.

“그 꽃은 언제나 사랑의 향기로
달빛 같은 추석을 맞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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