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막내야♡.
세아는 세 자매의 큰딸이었어.
첫째인 세아는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둘째는 씩씩하고 명랑해
집안은 늘 웃음소리가 가득했지.
화목하고 따뜻한 딸 부잣집.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었어.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어.
막내딸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기 때문이야.
아무리 약을 먹여도,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작은 몸은 점점 힘을 잃어갔지.
세아가 다섯 살 무렵,
언제나 방긋 웃던 막내는
끝내 눈을 감고 하늘나라로 떠나버렸어.
집안은 깊은 슬픔에 잠겼지.
둘째는 아직 어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몰랐지만,
세아는 또렷하게 기억했어.
사라져 버린 막내의 손길,
그리고 그 빈자리가 남긴 공허함까지.
그날 이후 세아는
작은 인형 하나를 손에서 놓지 않았어.
해지고 낡았지만, 세아에게 그 인형은
떠나간 막내 동생 그 자체였어.
“이건 내 동생이야.
내가 꼭 지켜줄 거야.”
세아는 인형을 품에 안고 잠들었고,
놀이터에도, 마당에도 늘 함께했어.
하지만 엄마는 그 사정을 몰랐어.
낡은 인형만 고집하는 세아가
안쓰럽고 걱정스러워
몇 번이고 몰래 버리려 했지.
그러던 어느 날 세아가 집에 돌아왔을 때,
인형이 보이지 않았어.
방 안을 뒤지고,
마당 구석구석을 헤매도 인형은 없었지.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어.
“세아야, 이제 그 인형은 필요 없어.
그만 잊어야 해.”
그 순간 세아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어.
“엄마는…
내 동생을 버린 거야.”
눈물이 쏟아졌어.
세아는 이불속에 파묻혀
인형 이름을 부르며 울었어.
“돌아와…
제발, 돌아와…”
그렇게 울다 울다 지쳐,
세아는 흐느낌 속에 잠이 들어버렸지.
눈을 뜨자,
세아는 낯선 숲 속에 서 있었어.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숲 한가운데,
불꽃처럼 붉게 빛나는 꽃이 반짝이고 있었지.
사루비아꽃이었어.
세아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꽃에 다가가 속삭였어.
“내 인형 돌려줘… 제발,
내 동생을 돌려줘…”
그러자 사루비아꽃이 활짝 열리며
눈부신 빛의 길이 펼쳐졌어.
그 길 끝에는 작은 정령 리아와 은빛 드레스를 입은 소녀 마렌이 세아를 기다리고 있었어.
마렌은 세아를 따뜻하게 안아주었어.
“왜 그렇게 서럽게 울고 있니, 세아야?”
세아는 흐느끼며 대답했어.
“나는… 내 동생을 지켜야 해.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니까…
내가 꼭 지켜야 해.”
그때 리아가
사루비아꽃을 가리키며 속삭였어.
“세아야, 이것 좀 봐.”
꽃잎 속에서는 막내가
환하게 웃으며 뛰놀고 있었어.
꽃의 나라에서 막내는
행복하게 살고 있었던 거야.
“언니, 나는 여기서 행복해.
걱정하지 마. 이제 울지 않아도 돼.”
세아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지만,
이번엔 따뜻한 눈물이었어.
그리고 사루비아꽃은 또 다른 모습을 비춰주었어.
엄마가 창가에 앉아
막내의 작은 모자를 손에 쥔 채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
둘째가 마당에서 꽃을 꺾어
작은 돌 위에 올려두며 속삭이는 장면.
“이건 막내한테 주는 꽃이야.”
세아는 놀라 속삭였어.
“나만 기억하는 줄 알았는데…
엄마도, 둘째도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었구나.”
마렌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
“사랑은 잊히는 게 아니란다.
다만, 사람마다
기억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지.”
눈부신 빛이 번지며 숲이 사라지고,
세아는 천천히 눈을 떴어.
다시 자신의 방, 익숙한 천장이 보였지.
옆방에서는 엄마가 숨죽여 울고 있었고,
창가에는 막내의 모자가 놓여 있었어.
둘째는 마당에서 꽃을 모아 돌 위에 올려두고 있었지.
세아는 창문 너머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따뜻해졌어.
“나 혼자만 지켜온 게 아니었구나.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있었어.”
세아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어.
“동생아,
넌 사라지지 않았어.
우리 마음속에 언제나 살아 있어.”
그 순간, 세아의 마음에는 따스한 빛이 피어올랐어.
인형이 없어도 괜찮았어.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이제야 알았으니까.
우리는 살아가며 크고 작은 상실을 겪습니다.
프로이트가 말한 것처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자리에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부재가 완전히 지워지는 일은 결코 없지요.
그 빈자리는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마음 깊은 곳에서 흔적처럼 울리고 있습니다.
라캉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찾는 것은 언제나 잃어버린 대상이다.”
세아가 집착했던 인형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부재한 동생을 향한 그리움이자, 결코 다시 채울 수 없는 빈자리의 표식이었지요.
하지만 이야기의 끝에서 세아는 알게 됩니다.
사랑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피어난다는 것을.
그리움은 결핍이 아니라,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요.
이제 세아의 눈물은 더 이상 서러운 눈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애도의 완성, 그리고 라캉이 말한 결핍과 욕망의 화해를 상징합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르게 존재하는 사랑.
그 깨달음 속에서 세아는 비로소 웃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