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가을 편지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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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바람이 한 송이씩 피어날 때 나는 그 이름을 불렀습니다. 흔들리며도 꺾이지 않는 꽃잎처럼, 당신의 목소리는 바람 속에서도 지지 않았습니다. 햇살이 기운 들녘에 누군가의 미소가 흩어지고, 지나간 계절이 다시 돌아와 꽃으로 서 있는 걸 보았습니다. 저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가을은 피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라는 것을. 오늘도 코스모스는 내 안에서 자라납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당신의 이름이 흔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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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한 송이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리며 내 어깨에 입을 맞췄습니다. 그건, 당신이 떠난 뒤, 처음으로 찾아온 가을이었습니다. 햇살은 옅고 공기는 맑았지만, 내 안의 시간은 여전히 여름의 온도에 머물러 있었지요. 꽃잎 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당신의 이름이 흩어졌습니다. 그 이름들이 들판을 덮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나는 그대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제 나는 압니다. 사랑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절이 되어 다시 피어나는 것임을. 오늘도 코스모스는 피어나고 당신은 바람이 되어 내 곁을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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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은 유리처럼 맑고 그 속에서 코스모스가 바람의 결을 따라 흔들립니다. 누가 그 꽃잎을 이렇게 얇게 빚었을까요. 바람이 스치면 금세라도 사라질 듯, 그러면서도 끝내 피어나는, 한때의 마음처럼. 햇살은 꽃의 어깨 위에서 서성이며 오래된 약속을 되뇌고 바람은 그 약속을 흩뜨려 하늘 끝까지 데려갑니다. 나는 그 바람을 따라 걷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의 노래가 당신의 목소리와 닮아 있어서, 잠시 눈을 감으면 들판 가득 흔들리는 코스모스가 당신의 얼굴이 됩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꽃은 더 가볍게, 더 아름답게 흔들립니다. 이별이 그렇게 피어나는 계절이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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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이 길이었습니다. 당신은 코스모스 앞에서 웃었고, 나는 그 웃음 뒤로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꽃잎이 바람에 흩어질 때마다 당신의 머리칼도 흔들렸지요. 햇살이 그 머리카락 사이를 지나 내 어깨에 머물렀습니다. 오래 전의 그 빛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계절이 바뀌어도 가을은 늘 당신의 목소리로 피어납니다. 이제는 혼자 걷는 길, 그러나 길가의 코스모스들은 여전히 당신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꽃잎 하나가 내 손끝에 닿을 때 나는 잠시, 그때의 우리를 다시 살아봅니다. 바람은 모든 것을 데려가지만 코스모스는 매년 돌아와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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