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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튤립, 진심의 꽃이 되다

태윤이의 봄

by 이다연



봄이 막 시작된 어느 마을에,
작은 가방을 메고 천천히 걷는 아이가 있었어.
그 아이의 이름은 태윤이었지.

“태윤아,
학교 가기 싫은 건 아니지?”

엄마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어.

“괜찮아요, 엄마.
이제 친구들도 좀 생겼어요.”

태윤은 웃었지만, 그 웃음은 조금 힘이 없었어.

현관 앞에서 신발끈을 고쳐 매며 태윤이 말했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라.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아빠는 늘 그렇게 말해주었어.


햇살이 따뜻했지만,
태윤의 발걸음은 왠지 모르게 무거웠어.


새로 전학 온 아이는 늘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 마련이지.
태윤도 그랬어.
낯선 말투, 조금 다른 옷차림, 그리고 서툰 표정.

“야, 사투리로 또 해봐!”
“그거 완전 웃기고 촌스럽다~!”

아이들은 장난처럼 웃었지만,
그 웃음은 화살처럼 태윤의 마음에 꽂혔어.


반장 수아는 태윤을 놀리는 아이들이 신경이 쓰였어.
매 번 당하는 태윤이 안쓰러웠지.


수아는 나쁜 아이가 아니었어.

사실 태윤이 전학 온 후,

수아는 밤마다 태윤의 눈빛이 떠올랐어.

그 눈빛이 자꾸 마음속을 찔렀지.
다만, 다른 친구들이 웃을 때 같이 웃지 않으면
자기도 따돌림을 받을까 봐 두려웠던 거야.


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말을 꺼낼수록, 비웃음은 더 커졌으니까.


며칠 뒤, 선생님이 봄꽃 관찰 숙제를 내주셨어.
태윤은 들판을 오가며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밤늦게까지 글씨를 다듬었어.

왜냐면, 태윤의 그리운 고향의 모습이었거든.

“이건 정말 잘했다.”

엄마의 칭찬에 좋아서 얼굴이 빨개졌지.


다음 날, 태윤은 들뜬 마음으로 숙제를 들고 학교에 갔어.

“태윤아, 숙제는?”
“했는데요…
분명 여기 있었는데…”
“거짓말은 나빠요..
아직 안 했구나.”

정성껏 만든 그 숙제가 사라져 버린 거야.

당황하며 아무리 찾아도 숙제는 없었어.


교실 안은 순식간에 웃음으로 가득 찼어.
그 웃음소리에 태윤의 얼굴은 점점 하얘졌지.

그리고 그때,
수아는 모든 걸 알고 있었어.
친구들이 장난 삼아 태윤의 숙제를 꽁꽁 숨긴 걸.
하지만…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수업이 끝나자마자,
태윤은 운동장을 뛰쳐나갔어.
작은 발걸음이 흙먼지를 일으켰고,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어.


마을 뒤편, 조용한 숲 속.

그곳엔 붉은 튤립 한 송이가 피어 있었어.
햇살이 꽃잎 위에 반짝이며 내려앉았지.

“너는…
왜 그렇게 예쁘게 피어 있니…”

태윤이 혼잣말을 하자,
튤립이 살짝 흔들리며 속삭였어.

“너도 예쁜 말을 가지고 있잖아.”
“내 말? 다들 촌스럽대.”
“아니야. 네 말엔 따뜻한 흙냄새가 나.
고향의 냄새, 진심의 향기 말이야.”


태윤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

“그래도…
아무도 안 들어줘.”

튤립이 조용히 대답했어.

“괜찮아. 말은 마음이야.
꾹꾹 숨기면 아프지만,
꺼내면 따뜻해져.”


해가 지고,
아직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태윤을 찾아 엄마와 아빠가 손전등을 들고 마을을 뛰어다녔어.

“태윤아! 태윤아!”

목소리엔 두려움이 잔뜩 묻어 있었지.


그 소식을 들은 수아는 울음을 터뜨렸어.

“내가 그때 말했어야 했는데…”

수아가 밤길을 달리며 두 손을 꼭 모았어.

"태윤아,
태유 나아~~~~~!"
“제발, 태윤이가
무사히 돌아오게 해 주세요…”

그 순간, 바람이 멎고
별빛이 수아의 손끝에 내려앉았어.


숲 너머에서 부드러운 빛이 번졌어.

그 빛 속에서 마렌이 나타났고,
뒤를 따라 리아가 별빛을 타고 내려왔지.

“리아, 들었죠?

마렌이 속삭였어.

진심의 기도는
언제나 하늘에 닿는단다.”

리아는 달빛 구슬을 들어 올렸어.

“달빛이여,
길 잃은 아이의 마음을 비추어라.”

은빛 빛줄기가 숲길을 환히 밝혔고,
그 빛이 닿은 곳마다 튤립들이 부드럽게 흔들렸어.


새벽녘,
수아는 숲 속에서 태윤을 찾았어.
그는 나무 아래에서 울다 잠든 채로 있었지.

“태윤아…”

수아는 조심스레 다가가 말했어.

“미안해.
아이들이 숙제 숨긴 거…
사실 나 다 봤어.
근데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했어.”

태윤은 조용히 고개를 들었어.

“정말… 네가?”
“응. 미안해.
용서해 줄래?”


바람이 살짝 불고,
두 아이 사이에 있던 튤립이 반짝였어.

“진심은 말로 전할 때 꽃이 된단다.”

숲으로부터 그 말이 들리자,
붉은 튤립 옆에 하얀 튤립이 피어났어.
그건 용서의 하만색이었어.


며칠 뒤,
아이들이 숲으로 놀러 갔어.
그곳엔 형형색색의 튤립이 가득 피어 있었어.

“우린 서로 말로 상처 줬지만…
이젠 말로 친구가 될 수 있어.”

수아가 말하자, 태윤이 환하게 웃었어.


멀리서 마렌이 속삭였어.

“이번엔,
말이 사람을 구했네요.”

리아가 미소를 지었어.

“그래요. 진심은 언제나
누군가의 마음에 꽃을 피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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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세상엔 눈에 보이지 않는 말들이 있어요.
어떤 말은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또 어떤 말은 그 상처를 다정히 감싸요.
당신의 말이 오늘 누군가에게
따뜻한 꽃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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