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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해당화, 사랑을 물고간 고양이

엄마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by 이다연



바닷바람이 부는 작은 마을,
그곳에 밥투정이 심한 소녀가 살았어요.
이름은 하루.
엄마는 매번 이렇게 말했지요.

“하루야,
밥을 먹어야 힘이 생기지.”

하지만 하루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어요.

“맨날 밥, 밥, 밥이야!
난 이제 밥이 싫어!”

엄마의 한숨이 부엌 창문 사이로 흘러나올 때,
하루는 슬리퍼를 신고 문을 박차고 나갔어요.

“몰라요!
나 밥 안 먹을래!”

햇살은 따뜻했지만,

하루의 발걸음은 심술이 묻어 있었어요.
모래바람이 불고,

파도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지요.


그때였어요.
골목 모퉁이에서, 커다란 물체를 물고 힘겹게 걷는 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어요.

“저게 뭐야…?”

하루는 눈을 크게 떴어요.


고양이가 물고 있는 건,
자기 키만큼이나 큰 광어였어요.

‘고양이가 고기를 먹나 봐야지~’
호기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어요.


고양이는 털이 젖어 있었고,
꼬리는 바닥에 끌릴 만큼 축 처져 있었어요.
몇 걸음 걷다 멈추고, 숨을 고르며 다시 걷기를 반복했어요.

“힘들겠다…”

하루는 저도 모르게 고양이의 뒤를 밟기 시작했어요.


고양이는 바닷가 바위섬 쪽으로 향했어요.
날카로운 바위틈 사이로 발을 디딜 때마다
광어가 덜컥거렸고,

파도는 발목까지 밀려들었어요.

하루는 두 팔을 벌려 균형을 잡으며 뒤따랐지요.

“저러다 넘어지면 어쩌지…”

걱정이 스며들자, 짜증은 사라지고

마음이 조용해졌어요.


그리고 어느 순간,
고양이는 해당화가 만발한 숲 앞에 멈춰 섰어요.
붉은 꽃잎이 바람결에 흩날리며 바다 냄새에 섞여 달콤한 향기를 내뿜었지요.

하루는 넋을 잃고 중얼거렸어요.

“이게 뭐야…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그때, 해당화 숲 어딘가에서

바람처럼 낮은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 고양이는
아기들을 먹이러 가는 길이란다.”


하루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어요.

“누… 누구세요?”
“나는 해당화 요정이야.
저 고양이는 새끼들에게 밥을 먹이려고
자신보다 큰 고기를 물고 온 거란다.”
“저렇게 힘든데… 왜 혼자서?”
“사랑은 그런 거란다, 하루야.
먹이고, 기다리고, 또 버티는 일.”

요정의 말에 하루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고양이는 다시 바위 사이를 지나,
숲 안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덤불이 흔들리더니,
커다란 회색 고양이 세 마리가 나타났어요.

“야, 그거 내놔.
우리도 배고프다고!”
“그래, 다 같이 나눠 먹자~”

엄마 고양이는 몸을 웅크리며 광어를 감쌌어요.
하지만 너무 힘이 없었지요.


하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저러다 빼앗기면…

아기 고양이들이 굶겠지…’

하루는 두 손을 모았어요.

“제발… 누가…
저 고양이를 도와주세요. 제발요.”

순간, 숲 속에 별빛 같은 은빛이 번졌어요.


숲 속에서 마렌이 바람결에 나타나 속삭였지요.

“리아 님,
이 작은 마음이 큰 사랑이 되게 해 주세요.”
“진심의 기도는 언제나 닿는단다.
작은 빛이 되어 누군가를 지키지.”

요정 리아가 부드러운 손끝으로 빛을 퍼뜨리자,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먹이를 빼앗으려 노려보던 회색 고양이들의 눈빛이 차츰 누그러졌어요.

“됐어, 그냥 가자…”

고양이들은 조용히 숲을 빠져나갔어요.


엄마 고양이는 숨을 헐떡이며
다시 광어를 물고 천천히 걸었어요.
바위 뒤, 풀잎 사이에서
작은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고개를 내밀었지요.

“야옹! 야옹!”
“엄마 왔다! 엄마 냄새가 나!”

엄마 고양이는 광어를 내려놓고
그 옆에 누워 꼬리를 감았어요.


아가 고양이들이 덤벼들어 배불리 먹는 동안,
그 눈빛엔 평화와 미소가 깃들었지요.

하루는 나뭇가지 뒤에서 그 장면을 지켜봤어요.

“엄마도…
매일 이런 마음이었을까.”

작게 중얼거린 하루의 볼에
조용히 바람이 스쳤어요.


바알갛게 물든 바닷가를 지나

하루는 집으로 돌아왔어요.

하루의 발걸음에는 파도보다 따뜻한 리듬이 담겨 있었죠.


엄마의 부엌엔 따뜻한 조갯국 냄새가 퍼졌어요.

엄마가 말했지요.

“오늘은 우리 공주가 좋아하는
바지락조갯국이야.
하루야, 이제 밥 먹을래?”

하루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네, 먹을래요.
배가 아~ 주 많이 고파요.”

엄마가 웃었고, 하루도 따라 웃었어요.


창문 밖으로 어둠이 내렸고,

해당화 한 송이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지요.

하루는 아주 맛있게 밥을 먹었답니다.

세상에서 엄마의 밥이 제일 맛났기 때문이에요.


ADD...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이 많아요.
그 사랑은 때로 밥 한 그릇,
또는 힘겹게 물고 가는 한 마리의 광어일지도 몰라요.
사랑은 먹이는 일,
그리고 그 마음을 알아보는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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