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을 삼킨 나무
가을바람이 노랗게 익어 가는 오후였어.
소년 재윤은 마당에 서 있는 오래된 나무 아래에서 놀고 있었지.
그러다 우연히, 나무의 껍질 속에서 반짝이는 쇳조각을 발견했어.
“어? 이게 뭐지?”
손가락이 닿자, 차갑고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어.
그 순간 재윤의 눈은 이상하게 반짝였어.
“그건… 총알이야.”
재윤은 놀라 뒤돌아봤어.
하지만 사람은 없었지.
대신, 나무 아래에서 흰 국화 한 송이가 흔들리고 있었어.
“누.. 누구세요?”
“나는 국화야.
이 나무와 함께 전쟁을 겪었지.”
국화꽃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어.
“그 총알은 옛날에,
네 할아버지가 맞은 총알과 같은 총알이란다.”
“할아버지가…
총을 맞았다고요?”
“그래.
네 할아버지는
나라를 지키던 군인이었지.
그해 겨울,
우리는 밤마다
총성과 비명을 들었단다.
나무는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지.
하지만 너의 할아버지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걸어갔어.
그리고...
이 나무가 총을 한 번 맞고,
네 할아버지가 또 한 번 맞았지.”
재윤의 눈이 커졌어.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총알을 빼지 않고
평생을 살아냈단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나무껍질 사이로 국화 향이 번졌어.
재윤의 마음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차올랐어.
하지만 동시에 마음이 아팠어.
"할아버지는 매일 이렇게
많은 약을 드시니까
밥을 안 드셔도 배가 부르겠다."
재윤의 말에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시며
재윤의 머리를 쓰다듬으셨지.
“할아버지 보고 싶다…”
그 말을 들은 국화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어.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면,
요정들이 네 기도를 들을지도 몰라.”
재윤은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어.
“할아버지를…
한 번만,
꼭 한번만 만나고 싶어요.”
그 순간, 나무 위로 은빛 빛이 번졌어.
바람이 스칠 때마다,
어딘가에서 작은 종소리 같은 미세한 울림이 들렸지.
재윤은 그것이 바람인지, 누군가의 숨결인지 알 수 없었어.
그리고 달빛의 요정 리아,
바람의 요정 마렌이 모습을 드러냈지.
리아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어.
“진심의 기도는 길을 만들지요.”
마렌은 재윤의 손을 감싸며 말했어.
“이제 마음을 따라가 봐.”
그리고 따스한 바람이 불었어.
세상이 조용해졌고, 재윤은 눈을 떴어.
재윤은 낯선 숲에 서 있었어.
국화 향이 가득했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고 있었지.
그때—
멀리서, 군복을 입고 모자를 쓴 한 사람이 걸어왔어.
“재윤아.”
소년의 눈이 흔들렸어.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미소 지으며 재윤의 머리를 쓰다듬었어.
“많이 컸구나.”
“왜 울려고 하니?”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재윤의 목소리가 떨렸어.
“저…
그 나무에서 총알을 봤어요.
할아버지는 아프지도 않았어요?”
할아버지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어.
“아프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
하지만 내가 지킨 건…
바로 지금 네 앞에 있는 평화란다.”
재윤은 눈물을 꾹 참다가—
큰소리로 외쳤어.
“할아버지!
우리나라를 지켜줘서 고마워요.
저도 할아버지를 지켜드릴래요!”
할아버지의 눈가가 젖었어.
“기억해 주면…
지키는 거란다.”
푸른빛이 스치고,
재윤은 다시 나무 아래에 서 있었어.
국화는 슬쩍 눈물을 훔치며 말했어.
“기억해 주는 사랑은
사라지지 않아.”
재윤은 나무를 가만히 껴안았어.
그리고 속삭였어.
“할아버지,
사랑해요.”
국화꽃이 바람에 흔들렸어.
꽃잎 하나가 떨어져 재윤의 손바닥에 내려앉았어.
어떤 사랑은
말하지 못한 채 사라지고,
어떤 고마움은
너무 늦게 찾아오기도 합니다.
재윤은 알게 되었습니다.
기억하는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이 나라를 지켰다는 것을요.
"기억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