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사랑해요~!
은재는 매일 저녁,
할머니 방에서 들리던 노래를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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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작은 내 별, 소중한 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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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목소리는 포근하고 따뜻했어.
은재는 노래가 끝날 때마다 할머니 품에 안겼지.
그때마다 할머니는 은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어.
“에델바이스는
가장 높은 곳에서 피는 꽃이란다.
참 소중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꽃이지.”
은재는 할머니의 이야기 속 에델바이스가 언젠가 꼭 만나고 싶은 꿈같은 꽃이었어.
“저기…
너는… 누구니?”
가끔, 할머니의 눈이
마치 안갯속을 헤매는 것처럼 흔들렸어.
은재는 그때마다 웃으며 대답하곤 했지.
“할머니,
나야. 은재.”
하지만, 할머니의 표정에 어린 공포와 혼란.
그걸 보는 은재의 가슴은 천천히 무너져 내렸어.
치매라는 이름의 바람이 할머니를 조금씩, 아주 천천히 데려가고 있었기 때문이야.
어느 날 저녁,
베란다에서 작은 화분 하나가 빛이 났어.
하얗고 작은 꽃봉오리.
“할머니가 말하던…
그 에델바이스?”
은재가 반기며 손을 뻗으려는 순간,
꽃잎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고,
은재는 희미한 목소리를 들었지.
“나는 떠나지 않아.
머무르며 피어나는 꽃이지.”
놀란 은재는 주변을 둘러보았어.
“누… 누구세요?”
꽃은 고요하지만, 분명하게 말했어.
“사람의 마음이 멀어질 때,
우리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단다.”
그리고 에델바이스는 살며시 속삭였어.
“기억이 흐려져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아.”
은재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어.
그냥 바람소리라고 생각했지.
여름이 지나고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은재는
현관 신발장이 비어 있는 걸 발견했어.
할머니 신발이… 보이지 않아.
“할머니…?”
집은 조용했어.
평소라면 들리던 TV 소리도 없었어.
은재는 벌떡 뛰쳐나갔어.
가족들은 경찰에 신고했고,
마을 사람들까지 손전등을 들고 숲을 뒤지기 시작했지.
그날따라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어.
은재의 손은 점점 얼어갔지만
할머니를 찾지 않고 다시 돌아갈 수 없었어.
밤이 깊어지고,
하늘에 별들이 하나둘 떠오르자
은재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
“할머니…
저를 잊어도 괜찮아요.
하지만 제발, 어디 가지 마요…”
은재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두 손을 모으고,
숲을 향해 기도하기 시작했어.
“숲의 요정님…
제발, 할머니를 찾아주세요
우리 불쌍한 할머니를요. 제발요.”
바람이 누구의 간절한 마음을 만나면,
마렌은 그곳에 나타나지.
그 순간,
바람이 은재의 손등을 스쳤어.
“진심의 바람은 길을 만들어.”
은재는 눈을 크게 떴어.
“혹시… 마렌 님?”
바람이 은은하게 모여 하나의 형체가 되었어.
“할머니를…
찾아주세요.”
은재의 간절함에 마렌이 고개를 끄덕였어.
“길을 열 수는 있지만, 빛이 필요해.
리아 님만이 숲을 열 수 있어.”
마렌이 조용히 눈을 감자,
달빛이 가늘게 떨렸고
하얀빛이 은재 앞에 내려앉았어.
빛의 요정 리아가 작은 날개를 접고
아름다운 눈망울로 은재를 보며 말했어.
“기억은 사라져도,
사랑이 길을 알고 있어.”
리아는 에델바이스 꽃잎 하나를 들어
달빛을 모아 바람에 실었어.
꽃잎은 별빛처럼 반짝이며 길이 되었지.
은재는 마렌과 리아를 따라 달렸어.
작은 언덕에 도착했을 때,
터질 것 같았던 은재의 숨은 멈추었어.
달빛 아래—
하얀 에델바이스 한 송이가 피었고,
그 앞에…
할머니가 조용히 잠들어 있었지.
은재는 달려가 할머니를 꼬옥 안았어.
“할머니!!!”
할머니는 희미하게 눈을 떴어.
“은재야. 우리 은재…
너는… 내 에델바이스였구나…”
그 말은 할머니의 날숨과 함께
바람에 실려 은재의 가슴 깊은 곳에 남았어.
며칠 후,
가족은 할머니를
에델바이스가 피어 있던 그 언덕에 묻어드렸어.
은재는 작은 꽃 한 송이를 심으며 속삭였지.
“할머니,
기억이 사라져도 괜찮아요.
저는 할머니를 오래오래 기억할게요.”
바람이 불었고,
에델바이스 씨앗 하나가 하늘로 날아올랐어.
숲, 어디선가 마렌의 목소리가 들렸지.
“사랑은 사라지지 않아.
형태가 변할 뿐이야.”
은재는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어.
“할머니… 사랑해요.”
바람 속에서,
할머니의 노래가 들리는 듯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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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
―
떠나는 것이 끝이 아니었지.
"기억은 사랑이었고,
사랑은… 은재 마음속에 계속되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