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만나는 아이, 하린
하린이는 친구들과 조금 달랐어.
발작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뛰는 것도, 운동장에 나가는 것도 조심해야 했어.
어느 날, 반 아이들이 뛰어놀다가 하린을 보며 수군거렸어.
“저기 또 조용히 있는 애.”
“갑자기 쓰러지는 애라며?”
“무서워…
우리 옆에 앉게 하지 마.”
하린은 가슴이 꽉 조여왔어.
그 말들이 칼처럼 마음을 찔렀거든.
하린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속삭였어.
“나는…
그냥 조금 다른 것뿐인데…”
하지만 그 ‘다름’은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어.
그날 하린은 혼자 점심을 먹었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조금 울었어.
며칠 뒤,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이었어.
하린은 비가 갠 뒤 축축한 골목길을 걷고 있었지.
그때 갑자기, 빛이 번쩍하고 사라지는 것처럼 시야가 흔들렸어.
“안 돼…
여기서 쓰러지면…”
하린은 벽에 기대려 했지만 힘이 풀렸어.
그리고 그대로 땅으로—
쿵!
넘어지면서 무릎이 크게 까졌고,
바닥의 작은 돌에 이마도 스쳤어.
몸이 떨리고 숨이 가빴고,
주변 소리는 멀어져 갔어.
하린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생각뿐이었지.
“누가 보면
또… 놀릴 텐데…”
“부끄러워…
너무 부끄러워…”
어둠이 밀려오듯 눈이 감기려던 순간—
아주 멀리서 엄마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렸어.
"하린아, 너는 잠시
숲의 요정을 만나러 가는 거야."
"놀라지 마,
잠시야, 아주 잠시."
엄마는 하린에게 늘 그렇게 말씀하셨지.
그러나 하린이는 요정을 만난 일이 없어.
바로 그때였어.
차가운 땅바닥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서서히 솟아올랐어.
수백 송이의 데이지 꽃들이
하린을 감싸듯 솟아오르더니
마치 하얀 베개처럼 그녀를 받쳐주었어.
쓰러지는 충격이 사라지고,
꽃들이 서로 포개어 작은 침대가 되었지.
꽃잎들이 속삭였어.
“괜찮아, 아프지 않게 해 줄게.”
“우리가 받아줄게, 하린아.”
“네가 다치는 걸 원치 않아…”
따뜻한 기운이 몸에 퍼지면서
하린은 눈을 감았고—
그 순간, 바람이 살랑이며 길을 열기 시작했어.
눈을 뜨자, 은빛 숲 속.
부드러운 바람이 춤을 추고 있었어.
“안녕, 하린아.”
바람이 모여 하나의 모습이 되었어.
바람의 요정, 마렌이었지.
하린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어.
“저… 왜 자꾸 쓰러져요…
다들 이상하다고 하고…
저는… 너무 무서워요.”
마렌은 부드럽게 하린의 어깨에 바람의 손길을 얹었어.
“하린아, 너는 이상한 게 아니야.
어떤 아이는 눈으로 세상을 보고,
어떤 아이는 귀로 듣고,
그리고 너는 마음으로 사는 아이란다.”
달빛이 은은히 내려오더니
빛의 요정 리아가 나타났어.
그녀는 하린의 무릎에 손을 얹고
따뜻한 빛으로 상처를 어루만졌지.
“아이는 모두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만나.
네가 겪는 발작은 고장이 아니라,
너만의 세상에
문이 열리는 순간이야.”
하린은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
“그런데…
친구들은 왜 저를 이상하다고 하죠?
리아는 미소 지었어.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할 때
때때로 무서워하고, 놀리기도 해.
그건 너 때문이 아니라,
아직 어려서
‘다르다’는 걸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녀는 말했어.
“하린아. 우리가,
숲의 요정이 도와줄게.
네가 힘들어할 때마다
데이지는 널 안아줄 거야.
너는 혼자가 아니란다.”
눈을 떴을 때,
하린은 데이지 꽃침대 위에 누워 있었어.
바람이 살짝 불었고,
데이지 꽃잎 하나가 하린의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지.
하린은 천천히 일어나며 속삭였어.
“고마워요…
이제 무섭지 않아.”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서
하린이는 또 쓰러졌고,
그다음 날 그다음 날에도,
잠시 숲의 요정을 만나고 왔어.
친구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지만—
이젠 달랐어.
하린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어.
확실하게 웃었지.
“괜찮아. 나는…
너희와 조금 다를 뿐이야.
내가 어떤 아이인지 아니까.
나는 괜찮아”
그 순간,
교실 창밖 데이지 꽃들이
햇살 속에서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어.
넘어지는 순간마다 피어오르던 데이지,
그 꽃들이 알려준 건.
“다르게 빛나는 것도, 너만의 아름다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