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이 아니어도, 다르게 피어나는 아이
해인이는 언제부터인지
작아지는 연습을 하고 있어.
언니는 뭐든 잘했기 때문이야.
달리기도 1등, 시험도 100점,
친구도 많고 발표도 멋지게 했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사람들은 자주 이렇게 말했어.
“해인이도
언니처럼 하면 좋을 텐데.”
“왜 언니는 잘하는데
너는 그만큼 못하니?”
정말 속상했어.
해인에게는 작은 못처럼 마음에 콕콕 박혔지.
언니가 잘하는 건 좋은 일인데,
왜 그럴 때마다 자신이 더 작아지는 기분이 드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
해인이는 글쓰기가 특히 어려웠어.
생각은 많은데 글로 쓰려 하면 마음이 꽉 막힌 것처럼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거든.
어느 날, 선생님이 숙제로 “가족에게 감사하는 글”을 써오라고 하셨어.
공책을 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고 손이 떨렸지.
그 모습을 본 언니가 다가와 말했어.
“내가 조금 도와줄까?”
그리고 결국, 해인이 대신 글을 써주었어.
“네 이름으로 내면 돼.
아무도 모를 거야”
마음에 걸렸지만 괜찮겠지,그냥 넘겨버렸어.
며칠 후, 학교 방송이 울렸어.
“이번 전교 글쓰기 대회 대상은
3학년 2반, 해인 학생입니다!”
교실은 난리가 났고,
생전 처음으로 교장선생님께 칭찬을 받았지
하지만 기쁨보다 가슴이 아프도록 뛰었어.
“이건 내가 한 게 아닌데…”
칭찬이 쏟아질수록
숨이 막히고 눈물이 차올랐어.
교장실을 나온 해인이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학교를 뛰쳐나갔어.
“나는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어…
이건 다 언니의 글인데…”
집으로 돌아갈 수도,
누구의 얼굴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야.
그냥 뛰고 또 뛰다가
바람과 나뭇잎 사이로 초록빛 문이 열린 사이로
해인이는 그냥 휩쓸려 들어갔어.
그곳은 클로버 숲이었어.
끝없이 펼쳐진 초록의 바다.
해인이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숨도 이어지지 않을 만큼 펑펑 울었지.
그 순간,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길가의 풀숲이 흔들렸어.
초록빛이 반짝하며
하나의 문이 열렸고—
눈물범벅의 해인이 앞에
바람이 서서히 모여들어
누군가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지.
바람의 요정, 마렌.
“해인아…
슬픈 울음에 인간의 마음이 담겨 있을 때
나는 그곳에 나타난단다.
마렌이 다정하게 손을 잡아 이끌었어.
눈을 뜨자, 낯선 숲이 펼쳐졌지.
햇살이 금빛으로 내려앉고
숲 전체가 끝도 없이 펼쳐진 클로버의 바다가 너무 아름다웠어.
해인이가 조심스레 손을 뻗었어.
“혹시… 네 잎 클로버를 찾을 수 있을까…
행운의 네 잎을 찾으면 나도 특별 해질 텐데…”
그때 어디선가
반짝하고 빛이 튀었어.
한 송이의 네 잎 클로버가
라일락빛 작은 별처럼 반짝이며
해인이 앞에 나타난 거야.
해인이는 가슴이 벅차올랐어.
“찾았다! 네 잎 클로버.
이제 특별해질 수 있어!”
그런데 네 잎 클로버는
아주 부드럽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지.
“해인아, 나는…
네가 생각하는 ‘행운의 증표’가 아니란다.”
해인이는 멈칫했어.
“그럼 넌 누구야?”
네 잎 클로버는 따스하게 웃었어.
“난 단지…
다르게 피어난 클로버일 뿐이야.”
그 말에 해인이는 어리둥절했지.
그때 주변의 수많은 세 잎 클로버들이
마치 파도처럼 흔들리며 속삭였어.
“우리는 부족해서
세 잎으로 피어난 게 아니야.”
“더 특별해지려고
네 잎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야.”
“우리는… 그냥
우리가 좋아하는 모습대로 피어난 거야.”
바람이 숲을 스쳤고
세 잎들과 네 잎들이 함께 흔들렸어.
누가 더 초록인지,
누가 더 예쁜지 구분도 할 수 없을 만큼.
그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지.
그때 숲의 요정 리아가
고운 바람을 타고 내려와 클로버 위에 앉았어.
리아의 손에 이끌려
네 잎 클로버가 살며시 해인의 손에 포개졌지.
“해인아,
넌 충분히 사랑받을 아이야.
특별해야 사랑받는 게 아니란다.”
요정 리아가 말했어.
“평범하면 어때?
평범한 것 안에도
마음, 웃음,
너만의 색깔이 있잖니.”
“세 잎도 네 잎도, 비교하지 않고
함께 피어난다는 것만 기억하면 돼.”
해인의 눈에 눈물이 맺혔지만
아프지 않은 눈물이었어.
부드럽고 따뜻한 눈물이었지.
다음 날. 그다음 날도,
언니는 여전히 잘했고
사람들은 또 칭찬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해인은 더 이상 작아지지 않았어.
언니 곁에서 작게 고개를 숙이던 아이가 아니라—
음악과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
친구의 기분을 잘 알아주는 아이,
웃으면 주변이 환해지는 아이였지.
그리고 천천히,
속삭이듯 스스로에게 말했어.
“나는… 나여서 괜찮아.”
그 순간
교실 창밖의 운동장자락에서
세 잎과 네 잎 클로버들이
햇살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
해인이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어.
그리고 처음으로 고백했지.
“나는… 언니처럼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나의 모습으로 사랑받고 싶었던 거였어.”
해인이가 씩씩하게 웃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 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어.
"사랑해, 해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