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동화> 도라지 꽃의 노래

은서의 다른 음

by 이다연


은서는 노래를 좋아해.
하지만 노래를 부를 수 없어.

아니, 노래뿐만이 아니야.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할 때도,
친구에게 “안녕”이라고 말할 때도—

목소리가 자꾸 떨리고,
말끝이 풀리고,
단어가 혀에 걸려서 나오질 않아.


그러면 친구들은 속삭여.

“말을 왜 저렇게 해?”
“이상해…”
“저러니까 말을 잘 안 하나 봐.”

은서는 대답할 수 없어.
말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목소리는 더 떨리고,
얼굴은 더 뜨거워지고,
마음은 더 작아지거든.


어느 날 음악 시간이었어.
모두 함께 합창 연습을 하는 날이었지.

선생님이 피아노를 치며 말했어.

“자, 시작해 볼까?”

아이들의 목소리가 교실에 퍼졌어.
고르고 반듯한 음들이 햇살처럼 이어졌어.


그런데—

은서의 목소리만
조금 늦고,
조금 높고,
조금은 엉뚱하게 흘러갔어.


은서는 몰랐어.
자기가 음치라는 것도,
자기 노래가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도.


그저
자기 마음대로,
열심히 부르고 있었을 뿐이야.

“솔~ 라~ 시~ 도~”

그러자 어딘가에서 킥, 하고 웃음이 터졌어.

“쟤 혼자 딴 노래 불러.”
“은서 음치야?”

피아노 소리가 멈췄고

교실은 갑자기 조용해졌어.


은서는 그제야 웃음이
자기에게 향해 있다는 걸 알았어.

목 안쪽이 콱 막히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어.

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교실 밖으로 뛰쳐나왔어.


운동장을 지나

더 멀리, 더 멀리—

눈물이 앞을 가려서
어디까지 왔는지도 몰랐어.

은서는 숲 속에 주저앉아 울었어.

“나는 왜 이럴까…
왜 다들 나를 이상하다고 할까…”


그때—

숲 가장 깊은 곳에서
하얗고 작은 꽃 하나가
혼자 피어 있는 게 보였어.

“너도… 혼자네…”

그 순간,
풀잎 사이에서 작은 발소리가 들렸어.


초록빛 두건을 쓴 아이,
마렌이었어.

“그 꽃은 산도라지야.”

은서는 코끝을 훌쩍이며 물었어.

“외로운 꽃이에요?”

마렌은 고개를 저었어.

“아니.
아주 귀한 꽃이야.
아무 데서나 피지 않아.
아무나 볼 수 없거든.”
"그런데, 너는 왜 울고 있어?"

마렌이 은서의 퉁퉁 부은 눈을 보며 물었어.


은서는 산도라지를 한참 바라봤어.

“노래가…
제 노래가 이상하대요…
전 다른 아이들과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요.”

마렌은 조용히 말했어.

“다른 건,
이상한 게 아니라
드문 거야.”


그때 바람이 불었어.
보랏빛 향기가
은서의 코끝을 스쳤어.

어디선가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어.

“은서야.”

은서가 고개를 들자
바람이 천천히 모였다 흩어지며
보랏빛 드레스를 입은 요정이 나타났어.

꽃의 요정, 리아였지.


리아는 은서의 손을 잡고
숲 속 깊은 곳으로 데려갔어.

“잘 들어봐.”

그 순간
숲이 소리로 가득 찼어.

짹짹,
푸르륵,
끼륵,
짹—삐—

모두 다른 소리.
하나도 같은 소리는 없었어.


“숲의 노래는
같은 음을 맞추는 합창이 아니라
서로 다른 소리가
함께 살아가는 노래야.”

리아는 은서의 가슴 위에 손을 올렸어.

“은서의 노래도,
은서만의 소리야.”

그날 밤,
은서는 처음으로
자기 노래가 조금 덜 미워졌어.


그리고 다음 날.

또 발표 시간이 되었어.

선생님이 은서의 이름을 불렀지.

“은서야.”

은서는 천천히 일어섰어.

가슴은 떨리고, 손은 차가워졌어.


그 순간—

어디선가 책상 위로 바람이 스쳤고

부드러운 라벤더 향기가 스며들어 왔어.

왠지 편안한 마음에

은서는 아주 작게 속삭였어.

“괜찮아…
떨릴 수도 있어.
그래도… 할 수 있어.”

처음엔 떨렸고, 몇 번 말이 꼬였지만—

은서는 멈추지 않았어.

교실은 조용했고 발표가 끝났을 때

선생님이 미소 지으며 말했어.

“은서야, 고마워.
정말 용기 있는 목소리였어.”


놀라운 건
은서가 완벽하게 발표했다는 게 아니었어.

은서가 도망치지 않았다는 거였지.


그날 밤, 은서는

창문을 열고 은은한 바람을 맞았어.

하루 종일 굳어 있던 마음이 서서히 풀리는 것 같았지.

“마렌, 리아… 고마워요.”

은서의 낮은 목소리가 밤하늘로 가만히 번져갔어.


그러자 바람이 살짝 흔들리며 어디선가 속삭임이 들렸어.

“도라지 꽃은 외롭게 홀로 핀 꽃이 아니라,
불안한 마음을 가만히 안아주는 꽃이란다.”

은서는 눈을 감았어.


숲에서 들었던 새들의 소리,

리아의 손길, 마렌의 따뜻한 눈빛이 천천히 마음속을 채웠어.

그리고, 아주 작은 숨을 내쉬며 은서는 조용히 웃었어.

“이제 알아요.
나는… 나대로 괜찮아요.”


그 순간, 밤하늘 어딘가에서

작은 별 하나가 보랏빛으로 반짝였어.

아주 작아서 눈 크게 뜨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별.


하지만 은서는 알 수 있었어.

그 별이,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떨리는 목소리도, 흔들리는 마음도, 여전히 함께일 테지만—


이제 은서는 도망치지 않을 거야.

자기만의 속도로, 자기만의 음으로,

자기만의 빛으로 조용히 걸어갈 거니까.

보랏빛 별은 은서의 창가 위에서 아주 오래,

아주 따뜻하게 깜빡이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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