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동화> 패랭이 꽃, 가시 없는 꽃의 '용기'

여기까지야!

by 이다연

민석이의 반에는
아주 개구진 아이가 한 명 있어.

그 아이는 웃을 때마다
눈이 반짝이고,
항상 장난을 먼저 시작하지.


하지만 그 장난은
조금 이상했어.

친구들의 목을 꼭 쥐어보거나,
팔을 세게 붙잡거나,
밀쳐 넘어뜨리곤 했거든.


“아야!”

아이들이 소리치면
그 아이는 깔깔 웃었어.

마치 아픔이 어떤 느낌인지 모르는 것처럼.

아이들은 선생님께 말했지만
선생님은 처음엔 고개를 저었어.

“그냥 장난이야.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마.”

그러고는 덧붙였지.

“그래도…
다음부턴 그러지 말라고 할게.”


하지만 ‘다음’은 오지 않았어.
장난은 계속됐거든.

부모님께 말씀드리기엔
괜히 일이 커질까 봐
아이들은 입을 다물었지.

혹시 그 아이가

더 심하게 괴롭힐까 봐—
그게 더 무서웠을지도 몰라.

민석이는 그 장난을 여러 번 겪었어.

오늘도, 수업이 끝난 뒤 학교를 나서던 길에—

그 아이가 또 민석이의 뒤로 와 목을 조르듯 팔을 둘렀어.

숨이 턱 막히고, 눈앞이 아찔해졌어.

“그만해… 무서워…”

하지만 그 아이는
깔깔 웃으며 손을 놓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사라졌어.


민석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어.

“왜 나는 바보처럼…
아무 말도 못 하지…”

그때— 민석이의 발치에서

작은 분홍빛 꽃들이 고개를 들었어.

숲 가장자리,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곳에
패랭이꽃들이 피어 있었지.

바람이 스치자 꽃잎이 살짝 떨렸어.

그리고 그 순간, 민석이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어.

“왜 가만히 있었어?”

고개를 들자 초록빛 두건을 쓴 소녀가 서 있었어.

마렌이었지.

“왜 당하기만 해?”

마렌이 물었어.


민석이는 고개를 떨궜어.

“더 괴롭힘을 당할까 봐
무서워서…
더 아플까 봐…”

마렌은 잠시 패랭이꽃을 바라보더니 말했어.

“이 꽃은 가시가 없어 보여도
함부로 밟히지 않아.”
“선을 넘으면 그건 장난이 아니야.”
“알려줘야 해.”
“그게 너를 지키는 거야.”

민석이는 눈물을 훔치며 속삭였어.

“그래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때, 은은한 보랏빛 향기가 숲에 퍼졌어.

바람이 모여 보랏빛 드레스를 입은 요정이 나타났지.

리아였어.

리아는 마렌을 보며 조용히 고개를 저었어.

“아프게 되돌려주는 건 답이 아니야.”

마렌이 입술을 깨물었어.

“그럼 그냥 계속 당하라는 거야?”


리아는 민석이를 바라봤어.
눈빛이 따뜻했어.

“아니. 멈추게 해야 해.”
“다만,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이게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하는 방법이 있어.”


리아가 손을 들자 패랭이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희미한 빛을 내기 시작했어.

“꽃들아, 도와줘.”
“민석이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다음 날.

그 아이가 또 학교 근처 숲길에서
민석이에게 다가왔을 때,

민석이는 도망가지 않았어.

소리도 지르지 않았고, 손을 휘두르지도 않았어.

그저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지.

“그만해.”


그 순간, 패랭이꽃 향기가 아이의 코끝을 스쳤어.

분홍빛 꽃들이 바람처럼 일어서며
아이의 손목을 살짝 감쌌어.

세게 묶는 게 아니라,
“멈춰” 하고 알려주는 정도로.

아이의 손이 멎었어.

“어…?”


아이의 얼굴이 굳었어. 눈동자가 흔들렸지.

바로 그때였어.

아이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어.

숨이 막히는 게 아니라,
마음이 갑자기 겁을 먹는 느낌—


‘내가 지금까지 했던 장난이
남에게는 이런 느낌이었구나’

그 아이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

“이게… 이렇게 무서운 거였어?”

그 아이의 목소리가 작아졌어.

“몰랐어…”
“정말 몰랐어.”
“나는 그냥…
웃긴 장난인 줄만 알았어.”


민석이가 숨죽여 말했어.

“웃기지 않았어. 절대로.”
“너무 무서웠어.”

아이의 눈이 더 크게 흔들렸어.

그리고 아이는 고개를 숙였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잠시 후, 아이는 한마디를 더 꺼냈어.

“나… 앞으로는 어떤 상황이든지
손대기 전에 물어볼게.”
“상대가 싫다 하면 멈출게.”


그 말이 끝나자 패랭이꽃들이
조용히 뒤로 물러났어.

길이 다시 열렸지.

그날 이후 학교는 조금씩 달라졌어.

선생님도 뒤늦게 아이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었어.

그리고 칠판에 짧은 규칙을 적었지.

‘몸으로 하는 장난 금지’
‘싫다고 하면 즉시 멈추기’
‘도움이 필요하면 어른에게 말하기’


아이들은 그 문장을 보며 안심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 개구진 아이도
예전처럼 함부로 손을 대지 않았어.

가끔 장난치고 싶어질 때마다 먼저 물었지.

“이거 해도 돼?”
“싫으면 말해.”


민석이는 알게 되었어.

용기란 때리는 것도, 참는 것도 아니라는 걸.

선을 분명히 말하는 것, 그리고
도망가지 않는 것이라는 걸.

숲 가장자리에는

오늘도 패랭이꽃이 밝게 피어 있었어.

밟히지 않기 위해 가시를 세우는 꽃이 아니라,

“여기까지야.”
라고 말할 줄 아는 꽃처럼.


그날 밤 민석이는 창문을 열고
숲을 향해 속삭였어.

“고마워요.”

바람에 실린 목소리가 대답했어.

“아픔을 알게 하는 건
벌이 아니라 배움이란다.”


패랭이꽃은 오늘도

숲에서 조용히 제 몫을 다하며 피어 있었어.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하지만— 아무도 선을 넘지 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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