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동화> 능소화, 담위에서 피는 꽃

능소화는 담을 넘지 않아요

by 이다연



준호는 물건을 잘 빌리는 아이였어.

연필도, 지우개도, 색연필도
필요하면 그냥 가져왔지.

“조금만 쓸게.”

준호는 늘 그렇게 말했어.


그런데 준호가 가져간 물건들은
가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어.

“내 연필 못 봤어?”

친구가 물으면 준호는 고개를 갸웃했어.

“어? 난 잠깐 썼는데…”


준호는 몰랐어.
그게 친구를 속상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친구 사이니까,
교실에 있는 물건이니까
괜찮은 줄 알았거든.


어느 날,
민지가 아주 아끼는 색연필을 잃어버렸어.

주황색 상자에 들어 있는
반짝이는 색연필이었지.

민지는 눈물이 날 것 같았어.

“그건…
엄마가 주신 내 생일 선물이었어.”


교실이 조용해졌어.

그때 누군가 말했어.

“준호 필통에 비슷한 거 있던데.”

준호의 필통 안에는
민지의 색연필이 있었어.


아이들이 웅성거렸어.

“준호가 가져갔나 봐…”
“훔친 거야?”
“도둑이야?”

준호는 얼굴이 빨개졌어.

“아니야!”
“난 그냥 쓴 거야!”
“훔친 게 아니라…
잠깐 가져가 쓴거라구!”

준호는 정말 억울했어.


집에 돌아가는 길,
준호는 골목에서 멈췄어.

담벼락 위에
주황빛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거든.


능소화였어.

덩쿨이 담을 타고 올라가
환하게 웃고 있는 꽃.

“와… 예쁘다.”

그때 초록빛 두건을 쓴 아이가
준호 옆에 섰어.

인간의 마음을 읽는 마렌이었지.


마렌은 담을 가리키며 말했어.

“능소화는
담 위에 있을 때 제일 예뻐.”

“저 꽃, 예쁘지?”
“그런데 왜 예쁜 줄 알아?”
“담이 있어서
어디까지 자라야 하는지 알거든.”


준호가 물었어.

“그럼 담이 없으면?”

마렌은 고개를 저었어.

“그럼 꽃이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려.”
“그땐 예쁘지 않고
사람을 불편하게 해.”


그때 바람이 불었어.

보랏빛 옷을 입은 요정,
리아가 담 위에 나타났지.

리아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꽃의 요정.

그녀는 진심으로 아이를 사랑하지.


요정 리아는 준호의 손을 잡고 말했어.

“준호야,
네가 가져간 건
연필이 아니라…”
“선을 넘은 거야.”


준호는 조용히 꽃을 바라봤어.

“선을 넘으면
물건보다 먼저
마음이 다쳐.”
“말하지 않고 가져가면
그건 담을 넘는 거고.”


리아가 담벼락을 가볍게 두드리자
담 위에 빛이 흐르듯
가느다란 선이 보였어.


“빌리는 건
이 선을 지키는 거야.”


“하지만 말하지 않고 가져가는 건
이 선을 지워버리는 거고.”

준호는 능소화를 바라봤어.


담 위에 있을 때는
그렇게 환하던 꽃이,
담을 넘으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것 같았어.


그제야 준호는 알았어.

‘내가 가져간 건
연필이 아니라…
친구의 마음이었구나.’


다음 날,
준호는 필통을 들고 교실에 섰어.

“이거… 돌려줄게.”

그리고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말했어.

“미안해.”


민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색연필을 받아 들었어.

“다음엔…
꼭 말해줘.”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어.


그날 이후,

준호는 먼저 물어봤어.

“이거 써도 돼?”
“싫으면 말해줘.”

“안 돼”라는 말도
그대로 받아들였지.


교실 창밖에는
오늘도 능소화가 피었어.

담 위에서만,
자기 자리를 지키며.

넘지 않아서 예쁘고,
지켜서 자랄 수 있는 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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