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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 꽃, 물방울 우체국

해나의 하늘 편지, 엄마 사랑해.

by 이다연



해나는 감정을 잘 숨기는 아이였어.
울고 싶어도 참았고,
속상해도 말하지 않았어.

“괜찮아.”
“안 울어.”
“나 힘들지 않아.”


해나는 늘 이렇게 말했어.

왜냐면—

엄마가 오래 아팠기 때문이야.
해나는 엄마가 더 슬퍼질까 봐
자신의 마음을 꼭꼭 감춰두었어.

하지만 어느 날,
엄마는 하늘의 별이 되어 떠났지.

그날, 해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그렇게 울고, 그날부터 해나는
아무 감정도 없는 아이처럼 살았어.
웃지도, 울지도 않고...
마치 마음이 해나를 거부하는 것처럼 말이지.


어느 장마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
장맛비가 갑자기 퍼붓기 시작했어.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우산을 들고

찾아와 꼬옥 안아주고 데려갔지.


우산이 없던 해나는

그냥 걸었어.
어디까지 가는지도 모르고
비에 젖은 채로 천천히 말이야.

그런데 낯선 빛이 발끝에 스며들었어.


숲이야.

여름 숲은 꽃으로 가득했고,

아름다웠어.

‘똑—똑—’

빗방울들이 모여
작은 문을 만들었지.

그리고 그 문이 열리자
작은 간판이 물빛에 흔들렸어.


〈빗방울 우체국〉

해나는 눈을 깜빡였어.

비로 만든 작은 건물,
물방울 의자,
무지갯빛 책상 위에 놓인 꽃잎 봉투.

그리고 투명한 모습의 마렌이

우체부의 모습으로 해나에게 인사했어.

“안녕, 해나야.
빗방울 우체국에 온 걸 환영해.”
“내… 이름을 알아요?”

우체부 마렌은 부드럽게 웃었어.

“감정을 오래 숨긴 아이들은
여기로 오는 길을 찾게 되지.”

해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꽃잎 봉투에 마음을 담아

마렌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어.

"요정, 리아 님.
해나가 왔어요.
해나에게 선물을 주세요.
이제, 그때가 왔어요."


아름답고 투명한 두 날개를 살며시 접고,

파란 눈의 요정 리아가 가만히 내려앉았어.


요정 리아가 꽃잎 봉투 하나를 내밀었어.

보랏빛 라일락 잎,
따뜻한 장미 잎,
부드러운 벚꽃 잎—
해나는 가장 단단해 보이는 하얀 백합 꽃잎을 골랐어.

“무엇이든 적어도 좋단다.
여기선 누구도 다그치지 않아.”

해나는 조용히 펜을 들었어.
그리고 꽃잎 편지지에 천천히 글을 적기 시작했어.

“엄마,
나 사실 많이 무서웠어.
아픈 엄마 옆에서 울면
엄마가 더 아플까 봐 참고 또 참았어.

하지만…
이제는 말하고 싶어.
나… 엄마 보고 싶어.
사랑해 엄마.”


봉투 위에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지만
마렌 우체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저 살며시 봉투를 닫아주며 말했어.

“이 편지는…
어디로 보낼까요?”


잠시 머뭇거리던 해나는
조용히 속삭였어.

“돌아오지 않는 곳으로요.”

우체부는 고개를 끄덕였어.

“그곳에 도착하면,
네 마음도 조금 가벼워질 거야.”

백합 꽃잎 편지는

빗방울 안에 담겨
하늘로 천천히 떠올랐어.
마치 엄마에게 흘러가는 작은 강물처럼.


우체국 밖으로 나와서

비가 조금 그쳤을 때
해나는 우체국 밖으로 걸어 나왔어.

앞머리에 걸린 빗방울이
작은 무지개를 만들었어.


그러자,
멀리서 들리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바람을 타고 속삭였지.

“해나야,
감정을 말하는 건 약함이 아니란다.
그건… 사랑을 전하는 방법이야.”


해나는 걸음을 멈췄어.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어.

“엄마… 듣고 있지?”


집으로 돌아온

그날 밤,
해나는 처음으로 마음을 꺼내놓았어.

“아빠… 나, 무서웠어.
엄마 아플 때도… 떠났을 때도…”

아빠도 해나도 입술을 꼭 깨물었어.
그리고 아빠는 해나를 꼭 안아 주었지.

“해나야,
말해줘서 고마워.
우리…
엄마가 보고싶으면,
앞으로는 같이 울자.”

해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눈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이번엔 참지 않았어.


며칠 뒤,
비가 내리던 오후,
창문에 빗방울 하나가 내려앉았어.

오늘도 해나에겐 우산이 없었지만,

해나는 빗방울의 속삭임을 들었어.

“너의 편지는…
하늘에 잘 도착했단다.”

해나는 미소 지었어.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작은 문 하나가 열리는 것을 느꼈지.

“감정을 말로 꺼내는 건
약함이 아니라,
마음을 건네는,
가장 용감한 사랑의 방식이야.”

해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어.

"사랑해,엄마.,
...엄마,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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