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선이 꼬여버린 사무실의 오후"
사무실의 공기는,
오늘도 묘하게 전쟁 같다.
커피 냄새는 진하지만,
분위기는 늘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그 중심엔 톰이 있다.
그리고…
늘 그 옆엔 나, 제리 같은 내가 있다.
톰은 고지식하다 못해 돌보다 단단한 사람이다.
회의 중엔 늘 정답만을 고집하고,
(자기 말이 정답이다.)
심지어 일머리를 이야기하고자 하면,
'여자가 뭘 알아’
라는 베이스 음악을 깔고 산다.
입은 빠르고 눈치는 없으며,
한마디로 분위기 파괴의 장인이다.
그 덕분에 단 번에 계약서 작성의 길을
돌아 돌아 2년여를 끌고 있는 계약 앞에 있다.
그날도 그랬다.
“그건 제 의견과 다르네요.”
그 한마디로 폭탄이 터졌다.
이후 톰의 입에서는
감정의 폭죽이 쉴 새 없이 터졌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나올 필요 없잖아요?”
“감정적인 건 누군데요?!”
…그리고
회의실은 순식간에 냉동창고가 됐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대체 저 인간, 인간이 될까?’
그날 퇴근길,
나의 하소연을 늘 받아주는 천사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나 오늘 또 톰이랑 싸웠어.”
“그 남자,
전생에 규칙표였을 거야.”
“ㅋㅋㅋ 진짜 맞아.”
언니는 내 하소연을 끝까지 들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너, 요즘
싸움 좀 길게 간다?”
“에이, 너무 힘들어 언니.
나랑 톰은 물과 기름이야.”
언니가 나의 전화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난 이 순간을 못 견딜 것이다.
실컷 뒷담화 타임을 마치고,
'그래도… 커피도 물과 기름이 만나야 향기가 나잖아.'
그 생각이 스치자 나도 모르게 웃었다.
언니의 포지션은 단연 ‘평화 유지자 감정 구급대원’이다.
그녀는 우리 팀의 ‘에스프레소 같은 천사’다.
어느 날이었다.
점심 직후, 회사 전화벨이 울렸다.
톰이 받았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점점… 수상하게 변했다.
“예… 예, 그게… 네,
그건… 잠시만요.”
(잠시만이 3분째였다.)
그는 뭔가를 설명하려 애썼지만, 이미 방향을 잃은 듯했다.
“아, 그러니까… 네,
그건 저희가 아닌데…
아, 잠깐만요,
우리 제리 씨가 더 잘 아는데…”
전화기를 손으로 가리고 나를 부른다.
“제리 씨, 이거 그거 맞아요?
그… 뭐더라…
그때 회의 때 얘기한… 그… 뭐였죠?”
“톰 씨, 지금 통화 중이에요?”
“예, 근데 이게 좀 헷갈려서요.
잠깐만요, 사장님.
지금 담당자랑 확인 중입니다.”
그의 말은 점점 꼬여가고 있었다.
나는 답답해서 노트북을 돌려 보여줬다.
“이거요, 이거! 두 번째 안!”
“아, 그거요! 예, 사장님
그건 두 번째… 아니, 세 번째 안입니다!
아, 잠깐만요. 다시요!”
나는 속으로 외쳤다.
“저 인간,
왜 본인 말에
본인이 헷갈리냐고!!”
결국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폭발했다.
“톰 씨, 제발!
제발 좀 확인하고 말해요!”
“아니, 그게요!
제리 씨가…!”
“내가 뭐요?! 내가 언제요?!”
회의실의 공기가 순간 멈췄다.
커피잔이 덜컥 흔들리며 톰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나오지 마세요!”
“감정적인 건 누군데요?!
지금 회의하자는 거예요,
감정 싸움하자는 거예요?!”
그리고…
"나는 이래서 여자랑 일 못 해요.
여자는 감정이 앞서서 앞 뒤를 못 가리니까."
(누가 일을 저지르고 누구 탓을 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좋아요. 다시는
톰 같은 사람과는 일 못하겠네요.”
“그래요? 저도요!”
톰은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다시는 회사에 나타나지 마세요!”
“좋아요! 안 나타날게요!”
문이 ‘쾅’ 닫혔고, 회의실엔 커피 향만 남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언제부턴가 톰이 달라졌다.
회의 중에도 내 말을 중간에 끊지 않았고,
가끔은 내 의견을 먼저 물었다.
심지어 내가 화가 난 걸 눈치채면
“혹시…
내가 말투가 좀 거칠었어요?”
라며 사과까지 했다.
처음엔 기적을 의심했다.
“톰이, 사과를…?”
천사표 언니는 미소 지었다.
“봐, 내가 뭐랬어.
커피 향이 나기 시작했잖아.”
점심시간, 나를 찾아온 언니와 단둘이 앉아
작은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말했다.
“언니, 요즘 톰이 좀 철이 든 것 같지 않아?”
“이야~ 이제 인정하네.”
“아니 요즘 쫌,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고…”
“그게 철이 든 거야, 제리야.”
우린 웃었다.
그 웃음 속엔 지난 2년간의 티격태격이
묘하게 따뜻한 추억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에필로그
톰은 여전히 고지식하지만,
말끝마다 배려 한 숟갈을 얹을 줄 안다.
나는 여전히 직설적이지만,
한 번쯤은 멈추고 생각하는 여유를 배웠다.
우린 여전히 톰과 제리처럼 싸우고,
천사표 언니는 여전히 커피를 사이에 두고 중재한다.
그런데 문득 깨닫는다.
이 유쾌한 전쟁 속에도
서로의 엣지가 조금씩 다듬어지고 있다는 걸.
고지식한 톰도, 직설적인 나도,
결국은 일터라는 무대 위에서
서로의 결을 맞춰가며 성장하고 있었다.
"고독해서 그래.
그리고 함께 일해서, 더 그래."
오늘도 우리는 사무실 속 톰과 제리로 산다.
2년여의 긴 전쟁 끝에,
이제는 그 계약서에 사인만 남았다.
감성 에세이, 일상, 고독
― EP.18《고독해서 그래》: 《톰과 제리, 그리고 천사표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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