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소리와 목련꽃 나무
소리와 목련꽃 나무
학교 운동장 한쪽에는
매년 봄이면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목련나무가 서 있어.
아이들은 그 나무를 잘 보지 않았지.
공이 굴러가다 부딪히는 곳,
잠깐 그늘이 생기는 곳쯤으로만 알았어.
하지만 소리는 달랐어.
소리는 매일 그 나무 앞에 섰어.
혼자서.
“나… 나는…
오늘은… 그게…”
소리가 말을 시작하면
말은 자꾸 중간에서 멈췄어.
입 밖으로 나오다 말고
길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친구들은 물었어.
“뭐라고?”
“다시 말해 봐.”
“아, 됐어.”
그럴 때마다 소리는 고개를 숙였어.
그러다 어느 날부터
사람 앞에서 말을 하지 않게 되었어.
모두에게 웃음꺼리가 되고 싶지 않았거든.
그래서 소리는
목련나무에게만 말하기로 했어.
“나무야…
나, 나는 말이… 느려.”
목련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웃지도 않았고,
돌아보지도 않았지.
그냥 가만히 서서
소리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어.
소리는 그게 좋았어.
말이 끊겨도
누군가 떠나지 않는 느낌이었거든.
그래서 소리는
매일 같은 자리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자기 말을 나무에게 들려주었어.
그날도 소리는 친구들에게 상처 받고
나무 아래에서 울고 있었지.
말하지 못한 말들이
눈물이 되어 뚝뚝 떨어졌어.
그때,
누군가 조용히 다가왔어.
“그 나무는
아주 오래전부터
말을 기다리는 법을 알고 있단다.”
소리가 고개를 들었을 때
꽃잎 같은 초록빛을 두른 아이가 서 있었어.
마렌이었어.
마렌은
“괜찮아”라고 말하지 않았어.
“천천히 해”라고도 하지 않았어.
그냥 소리 옆에 서서
같이 목련나무를 바라보았지.
그리고 말했어.
“네 말은 틀린 적 없어.
아직… 꽃이 되지 않았을 뿐이야.”
그 순간 목련나무 가지 끝에 있던
봉오리 하나가 반짝 빛이 났어.
그때
투명한 날개를 접은 요정,
리아가 나타나
꽃에게 속삭였지.
“이 아이에게 말을 가르치지 말아줘.
대신, 기다리는 시간의 법을 알려줘.”
목련꽃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대신 봉오리인 채로
그 자리에 오래 머물렀지.
소리는 그 나무 아래에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시작했어.
“…나는…
친구들이… 못 알아들어도…
말하고 싶어.”
이번에는 아무도 말을 끊지 않았어.
마렌도,
나무도,
꽃도.
그날,
목련꽃은 피지 않았어.
하지만 소리는 처음으로 끝까지 말했어.
며칠 뒤 목련꽃이 활짝 피었어.
그리고 할 일을 다 한 꽃은 빛이 되어
잃어버린 정원으로 돌아갔지.
정원에는
서두르지 않는 꽃 하나,
인간의 마음을 들어주는 마음 하나가
빛으로 더해졌어.
소리는 지금도 말을 더듬어.
하지만 이제는 알아.
말은 빨리 나오는 게 아니라
기다리면 된다는 걸.
그리고 자기 말도
언젠가는 꽃처럼
피어날 수 있다는 걸.
멀리서 마렌은 정원을 바라봤어.
꽃 한 송이,
마음 하나.
잃어버린 정원은
오늘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어.
E.P.5《목련, 기다림이 꽃이 되다》 《소리와 목련꽃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