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 꽃, 달지 않아도 사랑이야

E.P.6 사랑해, 도윤아

by 이다연


지윤은 고기와 햄, 튀긴 음식만 좋아해.

채소는 보기만 해도 고개를 돌리고,
엄마가 끓여준 국에는 숟가락도 대지 않아.

“이건 싫어.”
“에잇, 맛없어.”
“왜 맨날 이런 것만 먹어야 해?”


엄마는 말없이 웃었어.

지윤은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거든.
그래서 엄마는 늘
몸에 좋은 것, 덜 자극적인 것,
아이를 오래 지켜줄 음식을 먹이고 싶었어.


하지만 지윤은 모르지,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지.


지윤은 또래 아이들보다 몸집이 컸어.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었지.

그래서 종종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았어.

“지윤이, 쟤 또 먹고 있어.”
“저렇게 먹다가
코끼리처럼 커질 거야. 뚱뚱해.”
“다른 건 안 먹고 고기만 먹는다던데?”

지윤은 들리지 않는 척했지만
가슴은 자꾸 조여 왔어.


그러다 어느 날,

“나도… 싫은데…
자꾸만 먹고 싶다고.
왜 나만 이런데…”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소리를 지르며

펑펑 울어버렸어.


눈물이 바닥에 떨어질 때,
누군가 조용히 곁에 다가왔어.

“배가 고픈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일 때도 있어.”

고개를 들자
초록빛 옷을 입은 아이가 서 있었어.

마렌이었어.


마렌은 지윤에게
“괜찮아”라고
“살 빼야 해”라고 하지 않았어.

그저 도윤 옆에 앉아서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 주었지.

“네 몸은
사랑을 거부하고 있는 게 아니야.
아직,
사랑을 알아보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야.”


지윤은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어.


그때, 작은 빛이 바람처럼 내려왔어.

투명한 날개를 가진 요정, 리아였어.


리아는 작은 흰 꽃을 가리켰어.

“이 꽃을 아니?”

그 꽃은 산과 들에서 피는
도라지꽃이었어.


리아가 조용히 이야기를 들려주었어.

“도라지는
처음엔 아주 써.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피하지.
하지만, 몸이 가장 약해졌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꽃이기도 해.”

그리고 정원에 핀

작은 도라지 꽃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어.

“도라지는
사랑받기 위해 달지 않기로 선택했어.
사랑을 지켜주기 위해
쓴맛을 남겼거든.”
"자, 봐.
며칠 전 너의 모습이야."

하얀 도라지 꽃술이 천천히 열리며

침대에 누워 끙끙 앓고 있는 지윤의 모습이 보였어.


지윤은 심한 감기에 걸렸어.
목이 너무 아파
말도 잘 나오지 않았지.

엄마는 도라지를 달인 물을 내왔어.

쓴 냄새가 났어.

“싫어…”

지윤은 고개를 저었어.


그런데, 엄마의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어.

“조금만…
조금만 마셔볼래?”

그 순간, 지윤은 처음으로
쓴 맛이 아니라 엄마의 마음을 보았어.


지윤은 눈을 감고
도라지 물을 한 모금 마셨어.

쓰고, 따끔했어.

하지만, 이상하게도 목이 조금 편해졌어.


그날 밤, 열이 내렸고,
며칠 지나자 기침도 잦아들었지.


지윤은 그제야 알았어.

엄마가 먹으라던 음식들은

자기를 바꾸려는 게 아니라

지켜주려는 마음이었다는 걸.


그날 이후, 지윤은 조금씩
엄마가 권하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어.

처음엔 한 숟갈, 그다음엔 두 숟갈.


몸은 가벼워졌고 얼굴빛도 달라졌어.

아이들이 지윤이를 흉을 보는 말도

어느새 줄어들었지.


어느 날 밤, 살며시 지윤의 창에 내려앉은
마렌과 리아는
정원에 핀 도라지꽃을 바라보았어.


리아가 말했어.

“이 꽃은 자기 소임을 다했어.”

도라지꽃은 조용히 빛이 되어
잃어버린 정원으로 돌아갔어.


정원 한편에 쓴맛을 품은 꽃이
새롭게 피어났어.

그 꽃은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어.

“사랑은
항상 달지는 않아.
하지만
반드시 너를 살게 해.”


잃어버린 정원은
오늘도
아이 하나의 회복으로
조금 더 빛나고 있었어.


마렌과 리아는 그들의 정원이 그리웠어.

언제쯤 돌아갈 수 있을까?


에필로그

— 돌아갈 수 없는 이유


도라지꽃이 빛이 되어 사라진 뒤에도
정원에는 한동안 쓴맛의 온기가 남았어.

마렌과 리아는 그 자리에 한참을 머물렀지.


꽃 하나가 돌아갈 때마다
정원은 조금씩 되살아났지만,
아직 문은 열리지 않았어.


“조금 더 남아 있어야 할 것 같아.”

마렌은 대답하지 않았어.
대신,
아까까지 지윤이 잠들어 있던 창을 바라보았지.


인간의 마음은
꽃처럼 한 번에 피지 않는다는 걸
마렌은 알고 있었어.

아픔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 마음의 자리가
곧바로 채워지는 건 아니니까.


인간의 배고픔이
몸에서 시작되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
사랑이 달지 않아서
오히려 오래 남는다는 것을
마렌은 이제 조금 알 것 같았어.


리아는 그런 마렌을 보며 조용히 웃었어.

“괜찮아.
꽃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건
우리가 아직 필요한 곳이 있다는 뜻이니까.”


정원은 멀리 있었고,
그리움은 점점 선명해졌지만
둘은 서두르지 않았어.


불에 탄 모든 꽃이 돌아와야
정원은 다시 열리고,
모든 마음을 들여다봐야
마렌은 온전한 요정이 되니까.


그날 밤, 마렌과 리아는
그들의 정원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어.

아직은 인간 곁에 있어야 했거든.


잃어버린 정원은 기다림 속에서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었고,

마렌과 리아의 그리움도
그만큼 깊어지고 있었어.


E.P.6《도라지 꽃, 달지 않아도 사랑이야》 《사랑해, 도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