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아, 같이 먹으면 더 맛있어
지율이는 무엇이든 가지런히 두는 아이였어.
연필은 길이대로, 색연필은 색깔 순서대로,
인형들도 자기 자리에서 절대 움직이면 안 됐지.
“이건 내 거야. 아무도 만지면 안 돼.”
엄마가 정리하려 하자
지율이는 손을 탁 막았어.
“엄마도 안 돼.
내가 정리한 건 내가 만질 거야.”
지율이의 방은 늘 완벽했지만,
그 안에는
아무도 들어갈 자리가 없었어.
어느 날이었어.
비가 오던 저녁이었지.
지율이는 내일이 소풍인데,
비가 와서 마음이 불편했어.
엄마는 지율이가 좋아하는
알록달록 과일 도시락을 정성껏 싸고 있었지.
지율이는 그걸 보며 말했어.
“내일 소풍이니까 아무도 건드리면 안 돼.”
“이건 내 거니까.”
엄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어.
“그래, 지율이 거지.”
그날 밤,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어.
문 앞에는
윗집에 사는 어린 동생이 서 있었어.
엄마가 갑자기 병원에 가게 되어
저녁을 못 먹었다는 거야.
엄마는 잠깐 망설이다가
식탁 위에 놓인 도시락을 천천히 들었어.
지율이의 도시락이었어.
지율이는 놀라서 말했어.
“엄마! 그거 내 거야!”
엄마는 지율이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어.
“응, 맞아. 지율이 거야.”
그리고는
그 도시락을 동생에게 건넸어.
“배고프지? 이거 먹어.”
동생은 두 손으로 도시락을 꼭 잡았어.
눈이 반짝였어.
지율이는 아무 말도 못 했어.
엄마는 자기 것을 가져간 게 아니라,
지율이를 위해 싸 둔 것을
아무 망설임 없이 내어주고 있었거든.
화가 나서 엉엉 울면서,
지율이 방에 들어와 방문을 걸었어.
늦은 밤,
지율이는 울다가 자기 방에 앉아
정리된 연필들을 바라봤어.
그렇게 가지런한데…
왠지 마음은 하나도 가지런하지 않았어.
그때,
초록빛 그림자가 방 한편에 내려앉았어.
마렌이었어.
마렌은 지율이의 정리 상자를 바라보며 말했어.
“지율아, 너는 질서를 아주 잘 지키는구나.”
지율이는 조금 뿌듯해져서 고개를 끄덕였어.
“응. 내 건 내 자리에 있어야 해.”
마렌은 조용히 물었어.
“그럼…
사랑은 어디 자리에 두고 있니?”
지율이는 대답하지 못했지.
마렌이 다시 말했어.
“질서는 물건을 편안하게 해 주지만,
사랑은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줘.”
“너의 상자에는 질서가 가득한데,
사랑이 들어갈 자리는 남아 있니?”
지율이의 손이 조금씩 떨렸어.
그때 창가에 작은 빛이 내려왔어.
투명한 날개를 가진 요정, 리아였어.
리아는 창문 옆에 놓인 빈 화분을 가리켰어.
“지율아, 이 꽃을 볼래?”
화분 위로
붉은 꽃이 조용히 피어났어.
동백꽃이었어.
리아가 속삭였어.
“동백꽃은
꽃잎을 하나씩 떼어내지 않아.”
“피어 있을 때,
그 모습 그대로 통째로 떨어지지.”
“아낌없이 내어주는 꽃이란다.”
지율이는 동백꽃을 오래 바라봤어.
자기 것을 내어주는 모습이
엄마와 닮아 있었거든.
다음 날 아침,
지율이는 도시락 통을 열었어.
텅 비어 있었지만,
왠지 마음은 가득 찬 느낌이었어.
지율이는 조용히 말했어.
“엄마… 오늘은
내가 도시락 같이 나눠 먹어도 돼?”
엄마는 놀라서 물었어.
“정말 괜찮아?”
지율이는 고개를 끄덕였어.
“내 거지만…
같이 먹으면 더 맛있을 것 같아.”
그 순간,
창가의 동백꽃이
조용히 빛을 내기 시작했지.
리아가 미소 지었어.
“이 꽃은 소임을 다했어.”
동백꽃은 붉은빛이 되어
잃어버린 정원으로 돌아갔어.
밤이 되었어.
지율이는 오늘 처음으로
연필 하나를 친구에게 빌려주었어.
상자가 조금 흐트러졌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더 가지런해졌어.
창가에서
마렌과 리아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어.
마렌이 조용히 말했어.
“인간의 마음은
질서를 넘어설 때 더 넓어지는 것 같아.”
리아는 하늘을 올려다봤어.
별똥별이 하나 떨어지고 있었거든.
“우리의 정원은
인간들이 서로를 위해
자기 것을 조금씩 내어줄 때마다
한 송이씩 채워져 가고 있어.”
마렌이 덧붙였어.
“우리는 언젠가
그 정원으로 돌아가겠지.”
“하지만 그때까지,
인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
리아가 마지막으로 속삭였어.
"사랑은
네 것과 내 것을 나누는 순간
더 커진단다."
“그리고…
너희가 서로를 위해 내어 준 마음들이
우리의 잃어버린 정원을
조금씩 되찾게 해 준다는 것도.”
별똥별이
두 요정의 머리 위로 조용히 흘러갔어.
그 빛 속에서,
지율이의 방은
어제보다 조금 더 넓어져 있었어.
E.P.8. <동백꽃, 사랑을 배우다> <지율아, 같이 먹으면 더 맛있어>